백가쟁명 - 유가.묵가.도가.법가
이중텐 지음, 심규호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에 나온 백가쟁명, 그 많은 학파와 논쟁은 어떤 현실에서 나왔고 또 어떤 삶의 이념을 지향했던가? 미국과의 대결 속에 새로운 시대의 패권 국가로 발돋움하는 중국의 현실과 그 미래에의 전망까지 제자백가사상이 담고 있다고 말해도 우격다짐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 본다. 송나라 나대경의 "학림옥로"란 책에 보면 [논어 반 권으로 천하를 다스린다]란 말이 있다. 이 말이 오랜 세월 세간에 널리 떠돌았던 것처럼 왜 그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유가와 도가는 살아남았을까? 또한 어떤 매력으로 현재의 우리들의 삶에도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그리고 어떤 비전으로 우리 인류의 미래에도 어떤 전망을 제시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역사가 흐른다는 것은 같은 사건의 반복일런지도 모른다.(세월이 흘러가도 해질녘 불어오는 바람이 태초에 불어오는 바람과 다르지 않듯이...) 제자백가 사상의 심오한 세상으로 발을 들여다 놓기 시작한다면 삶의 본질적인 면들은 삶의 역사적 모습의 차이와는 상관없이 늘 우리들 눈 앞에 존재해왔던 것은 아닌지...하고 생각하게 된다. 


   유가사상은 공자와 그의 제자들 그리고 공자 사후 100년도 훨씬 뒤에 태어난 맹자에 의해 계승되었다. 인의 사상에서 의, 예, 지, 신(지와 신을 예악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으로 표현된 핵심사상 속에 내 부모와 형제를 대하는 것처럼 친척을 대하고 이웃을 대하고 나아가 사회의 모든 사람들을 대하면 극기복례하여 세상의 흐트러진 질서를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유가의 태도는 군주의 입장에서 본 것이었다.  


  묵자는 보다 실천적이었다. 그는 천자, 제후, 대부, 사 그리고 서민들의 계급적 차별을 타파하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그렸다. 가난과 굶주림도 마다하지 않고 철저한 자신의 수양을 통해 그 모든 것을 행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을 꿈꾸었던 그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자신의 자유와 권리 추구에서 모두 평등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아무나 따라하기 힘든 실천이었다고 본다.


  도가사상은 양주의 극단적인 입장(털 한 올을 뽑아서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고 해도 그렇게 하지 않겠다.)에서 부터 노자와 장자로 이어지는 무위의 실천을 강조하기도 한 넓은 영역에 걸쳐 있다. 유가와 묵가가 결국엔 급변하는 사회에 참여하여 일정한 질서를 부여하려 했다면 도가 사상가들은 그런 노력들이 결국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라고 보았고 자연적인 질서로 회귀하자는 사상을 담아내었다.  


  법가 사상은 상앙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한비에 의해 완성되었다.  천자나 제후 등의 위정자들의 전제적인 통치에 반대하였고 법에 의한 통치를 주장하였다. 법가사상은 양면삼도설로서 형벌과 덕치를 함께 사용하려했고, 권세와 권술과 권능으로서 지휘력을 가져야 한다고 보았다. "세를 통해 위신을 세우고 술을 통해 신하를 부릴 수 있으며, 법을 통해 백성을 제어할 수 있다. 이것들이 바로 군주의 수중에 있는 지휘도다."라고 한다.  예악이 붕괴되고 이해타산에 따라 서로 먹고 먹히는 비정한 정치현실에서 위정자들은 어떻게 하면 제국의 달이 될 수 있을까 고민했고, 이 사상은 매우 유용했다. 진시황제는 법가사상에 매료되어 이웃나라를 침략해서 법가사상가 상앙을 데려오기도 할 정도였다.

   이렇듯 그 사상의 갈래와 특색은 달랐을지라도 이 사상들은 모두 급변하고 혼란스러워보이는 현실에 어떤 질서를 부여하기를 원했고 또 극도의 혼란과 전쟁 속에서 천하를 구하려는 마음으로 시작된 것이라 여겨진다. 그들의 사상이 얼마나 생명력을 가졌건 또 얼마나 현실설명력을 가졌건 그것은 뒤로하더라도 그 사상가들의 초심만은 어지러운 현세를 구원할 원대한 포부를 품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그런데 왜 춘추전국시대에는 이러한 백가쟁명이 나오게 되었을까? 이중텐 교수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 사상적으로는 인본주의를 확립하고 정치적으로는 덕치를 실현하며 제도적으로는 예악에 의한 교화를 실시했던 주나라는 성숙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섬세하고 뛰어난 제도와 문화가 있었기에 그 문화 속에서 백가쟁명의 사상이 꽃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점, 둘째, 주나라의 봉건제가 붕괴되고 사회가 급변하게 되면서 예가 파괴되고 악이 붕괴되면서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려고 하는 사회적 필요가 있었던 점, 셋째, 정치적으로 신분적으로 그리고 사상적으로 자유로운 존재였던 사인들의 활약을 든다.  


  중국민족의 지적 탐험의 총체적인 자산이고 그들의 문화유산이 되버린 백가쟁명은 인류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는 이정표의 역할도 하리라 생각한다. 읽는 이의 시야를 넓히면 백가쟁명은 인류의 지혜의 보고이자 문화유산이기에 급변하는 그러나 방향을 가늠할 수 없는 현실의 변화 속에서 선현들의 지혜로 우리들의 위치를 점검해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틀어서 보다 큰 수레 위에 우리 삶을 올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이중텐 교수는  추상적 승계와 합리지양이라는 계승방법을 권한다. 백가쟁명의 각 학파는 그것이 급변하는 현실에 따라 어떤 사회적 필요에 의해 제기되었고 또 그 현실을 극복해가는 돌파구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단순한 비교를 통해 어떤 것은 우수하고 어떤 것은 열등하다라고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유가사상은 이미 도가 사라져버린 다음 인과 의, 그리고 예악을 지키려 한다는 것에 자체적 한계를 가지고 있고 또한 군주의 입장에서 본 관점이라는 단점을 가지며 묵가는 이를 비판하여 전 계층의 평등을 주장하였지만 전 계층의 자유와 권리가 충돌할 경우 결국엔 상동이라는 의미로 다시 서열화된 해결을 주장한다. 결국은 독재나 전제정치의 출현이 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서열이 아니라 합리화된 법질서에 의해 통치하자는 법가 사상이 나오게 되나, 권세만 있고 도의는 없는 이해타산의 비정한 논리는 생명력이 그리 길지 않게 된다. 도가사상은 이 모든 내용을 되돌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또한 사회적 관계를 떠나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엔 사회적 해결을 바라고 그 제도와 사상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이 모든 사상은 그 각 각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의 구체적인 현실의 체험이 불가능한 후대의 우리들은 인간으로서의 보편적인 감정과 추상적인 체험을 통해 그 학파가 가진 고유한 장점을 습득하여 현실에 맞는 우리들의 모델을 찾아내면 된다. 또한 그 학파가 왜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고 대립하는 다른 학파의 치명적인 논리비판 속에 현실설득력을 잃어갔는지에 대해 문제점을 합리지양을 통해 역사적 교훈으로 갖자는 것이다. 법가 사상이 잔인하다고 해서 무조건 내칠 것이 아니라 시대적 상황의 요청에 따라 나온 법가사상이 가진 장점, 군주의 전제나 독재를 타파하고 합리화되고 제도화된 법에 의한 통치는 결국 색깔은 다르지만 근대에 와서 모든 입법국가가 취하게 되었다는 점은 눈여겨볼만 하지 않은가. 


  제자 백가에 대해 몇 권의 책을 읽어보았지만 노장사상과 유가사상 그리고 묵가와 도가에 대한 큰 밑그림을 그리고 방향을 잡아가게 하는 데 아주 그만인 책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원서로서는 난해하여 쉽게 접할 수 없는 내용을 소설책 읽듯이 술술 읽어낼 수 있게 하며 그를 통해 제자백가의 출현배경과 원인 그리고 사상의 핵심을 간략하지만 전체적인 시각에서 정리해내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된 책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도가사상에 대한 이 교수님의 평가가 썩 내키지는 않지만 전체적인 내용으로 볼 때 수작이라고 평가하기에 주저함이 없는 책이다. 

 

  오랜 세월을 통해 왜 어떤 사상은 바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유가사상은 수천년을 이어져 내려오며 분서갱유의 탄압 속에서도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면면히 그 생명을 이어왔을까? 왜 그처럼 강한 생명력과 영원한 매력으로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일까? 나는 책을 덮으며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인류의 보편적인 지혜와 진리를 담고 있으면서도 세상과 끊임없이 호흡하려 했고 또 세상의 급변속에서도 사상의 본류를 간직한 채 필요한 곳에 생명수의 지류를 대어주는 물과 같은 유연함이 아니었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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