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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걷는다 1 - 아나톨리아 횡단 ㅣ 나는 걷는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임수현 옮김 / 효형출판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모든 여행은 나의 알려지지 않은 보여지지 않는 면과의 만남이다. 더구나 그것이 혼자서 가는 여행일 때에는 자신의 내면과의 만남이 더욱 뚜렷해진다. 이 책은 30년동안 기자생활을 해온 프랑스 은퇴기자가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지위와 문화적 환경을 모두 던져버리고 오로지 벌거벗은 자신과의 만남을 위해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1066일에 걸쳐 이스탄불에서 시안까지 이르는 실크로드의 길을 교통수단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두 발로 직접 걸어서 완성한 여행기이다.
사진도 한 장 없는 그러면서도 한 권에 4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세 권의 책이 전혀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히는 것에는 사회적 위업이나 자신의 명예 또는 멋진 기행문을 적기 위한 욕심없이 오로지 순수한 자신의 내면을 통해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아보려고 하는 의지에서 시작된 여행이었고 그것으로 매 순간 순간 맞닥뜨린 어려운 일들을 이겨내는 모습이 아주 감동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강한 의지가 없다면 손도끼를 든 미친 사람과의 동행에서도, 발이 곪아 터져 한 걸음 한 걸음이 고통인 육체적 여정도, 배낭 속의 보물을 탐낸 부족민들의 탐욕과 외부인에 대한 차별도 이겨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뒷편에 위치한 터키라는 나라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이 앞부분에 좀 더 자세한 역사적 개관까지 곁들였더라면 읽는 재미와 이해가 더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더구나 생소한 지명과 알 수 없는 여정에 대한 방향감각을 덧붙이는 자세한 지도까지 곁들였다면 읽는 이로서는 더욱 그 깊은 감동이 전해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비잔틴제국의 영화가 깃들인 이스탄불에서 만리장성이 놓인 시안에 이르기까지의 실크로드는 미지의 세상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그 또 다른 세상으로 이어지는 길을 걸으며 자신의 몸으로 온전히 마주친 세상은 여행자의 마음 속에서도 반영되면서 쌓이고 쌓여간다. 그것은 외부세계의 풍경과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그 낯선 풍경 속에 놓여진 자신의 또 다른 여러 가지 모습이기도 하다. 극해에 있는 빙하처럼 일상의 톱니바퀴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여러 가지 모습과 그 여러 가지 모습이 나온 또 하나의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실크로드는 자신의 내면으로 난 오솔길이다. 그 오솔길은 자신이 직접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내어야 할 삶의 과제이며 어떤 교통수단에 의해서도 다가갈 수 없는 미지의 영토이다. 저자가 부득이하게 차를 타고 온 길을 다음 날 억척스럽게 되돌아가서 자신의 두 발로 온전히 걸어가려고 한 것은 자신이 의도한 그 여행이 바로 자기 스스로가 온전히 느껴야만 하는 내면으로 난 길을 걷기 위함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