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 병을 만든다
이반 일리히 지음, 박홍규 옮김 / 미토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일리히의 삶은 감동적이다. 그는 현대 의료산업의 압력과 강제를 거부하였다. 온전히 자신의 의지만으로 병을 대하고 그 병과 더불어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였다. 수잔 손택이 질병을 자신의 관점에서 받아들이고 자신이 걸린 질병을 낫게 하는 방법으로 여러 의사의 진단과 치료법을 듣고 여러 가지 다른 대안들을 모색하여 자신의 병에 대한 선택권하에서 치료하여 성공했다면 일리히는 모든 병원병을 자신의 온몸으로 거부하면서 그 병 자체와 온전히 대면하며 살다가 죽었다. 비록 그 둘의 외면적인 모습은 달랐지만 그들이 병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병원병을 거부하고 병을 대면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데에 있어 자신의 선택권이 가장 우선이었다는 데는 다름이 없다.

하지만 이러한 일리히의 감동적인 삶과는 별개로 이 책은 너무나도 문제투성이다. 글의 문맥을 잡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읽는 중간 중간에 여러번 책을 놓을 수 밖에 없는 난해한 문장들과 머리속에서 체계잡히지 않는 줄거리들, 그리고 무엇보다 일리히의 대쪽같고 강직한 그의 마음이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번역을 한다는 것은 자신이 원서로 접한 감동적이고 좋은 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한다. 단지 그것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나 자신의 경력을 쌓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그의 삶에 대해 자신이 감동하고 그의 사상에 대해 자신의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씌여져야 하기 때문이다. 역자의 경력으로 보아 이러저러한 변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경력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더구나 일리히의 삶에 대해 자신이 감동하여 그의 영전에 이 책을 바친다는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번역에 책임지지 못한 것에 대해 마음이 서글프다. 번역은 자신이 감동받은 타인의 삶을 자신의 것으로 내재화한 후 그것은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선 자신의 내재화가 되지 못한 작품은 그 자격미달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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