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들 플라워
김선우 지음 / 예담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한국사회를 다시 한번 민주주의적 소통과 참여의 장으로 이끌었던 촛불집회. 그에 대한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좀 더 이상적인 형태의 촛불집회는 무엇이었을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소설가가 내렸다. 한국을 휩쓸고 간 촛불의 에너지는 어디로 사라졌으며 다시 무엇으로 태어날 것인가? 촛불 집회가 내린 영향은 무엇인가? 또 지금의 현실은 과연 어느 곳에 위치해있으며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이 학문이 아니라 소설적인 플롯을 통해서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새롭다.  

  전체와 소통하는 사람 

  캐나다 벤쿠버의 어느 시골에서 자라 15살이 되어 한국을 정신적 자립의 첫 여행지로 선택한 지오, 그녀는 정규적인 학교교육을 받지는 않지만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하루하루 나무의 잎이 자라는 것을 느끼고 동물의 마음과 교감한다. 7살이 된 어느 날 뇌의 정전사고를 겪고 난 후 그녀의 인식의 세계는 바뀌었다. 뇌의 세계에서 가슴의 세계로...그녀는 동식물과 교감하게 되었고 전체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된다. 그녀 뿐만이 아니다. 희영이도 연우도 개와 소통하는 인연으로 만난다. 그 소통의 비밀의 문은 '사랑'이다. 그 대상을 사랑하게 될 때에만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또 소통할 수 있다. 이지훈 기자에게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그에게 있는 내면적 장점을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는 홍씨 노인도 이런 면에서 전체와 소통하는 사람이다. 세상을 진보와 보수라는 틀로만 나누지 않고 진보와 보수가 제자리를 지키는 가운데 서로 교류하고 소통함을 통해 더욱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 또한 소를 통해 자신의 사랑을 확인하고 되찾고 싶어했던 숙자씨도 사과의 마음을 읽어주었던 최초의 사람들이었다.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쓰기에 따라 누구에게나 갖추어져 있는 이 마음. 그것을 일러 소통의 마음이요 전체의 마음이라 부르면 어떨까?  

  아픔은 영혼을 성장시킨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누구나 자신만의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의 삶을 실패하고 고국을 떠나 세계의 각지를 떠도는 가족을 가진 희영이의 상처가 있고, 아버지의 폭력적인 그늘 하에서 불행하게 살다 결국엔 남편을 죽이게 되는 엄마의 삶을 가진 수아의 상처가 있다. 보수 기자인 아버지의 삶과 자신에 대한 보수적인 가부장제를 거부하는 속에서도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는 민기의 아픔이 있는가하면 아주 어린 나이에 아이를 갖게 되어 그 아이를 출산하면서 동시에 어머니는 생명을 잃고 동갑의 아버지는 자살을 한다. 부모를 잃고 홀로 고아가 된 연우의 상처다. 하지만 이 깊은 상처를 가진 그들이 그 아픔 속에 머물지 않는다. 그 아픔을 타인들과의 관계를 통해 어루만지고 그 아픔을 속으로 녹여내면서 더욱 단단하게 성장해간다. 지오가 보기엔 한국의 청계천은 야생성을 읽어버린 하천이다. 원래 지형의 생겨먹은 대로 흐르는 물의 흐름이 아니다. 어쩌면 한국의 아이들은 바로 자연성을 잃어버린 문명 속에서의 삶의 흐름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 청계천을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은 이미 기형화되고 왜곡되어버린 물의 흐름이지만 그것은 나름대로 시멘트 틈새에서 생명을 피워내고 또 물고기들의 삶의 터전이 되어주며 그런대로 또 하나의 물의 흐름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젊은이들도 자신의 주어진 환경에서 제 각각의 삶의 꽃을 피워내는 스스로의 물줄기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안의 괴물을 어떻게 다룰까? 

  촛불집회가 반복되면서 사람들의 순수한 마음은 이제 반대의 폭력 속에 놓이게 된다. 정부는 교묘하고도 다양한 선전을 통해 그들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그것은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채 일방적인 통보로 세상에 배포된다. 촛불집회의 규모도 커지면서 점차 집회는 국가권력과의 대면 양상을 띠게 되고 국민들의 안전한 먹을 거리와 물가 서민들의 삶, 교육문제 등 생생한 현실문제들에 대한 토론과 소통의 장이 투쟁과 갈등의 장으로 변하게 된다. 주어진 역할 속에서 서로 담배와 먹을 것을 주고받으며 마음을 나누던 시민들과 전경들은 이제 물리적인 폭력과 대응 앞에서 마음을 닫고 적대시한다. 그러면서 우리들의 마음 속에 생겨났던 괴물...그것은 애초에 한국과 국민에 대한 사랑과 소통의 마음을 서서히 지배하며 삭트는 적대감과 서로에 대한 단절감이었다. 작가는 사회적인 갈등 속에 놓여진 개인의 마음과 심리의 변화를 통해 촛불집회의 성격이 어떻게 변화해가고 또 어떤 성격의 모임이 되는지도 보여주고 있었다. 놀랍다. 우리 안의 분노와 적대감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한편으로 이쪽과 저쪽의 싸움이 될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체의 세상과 소통하며 하나의 만남을 위한 소통이 될 수도 있었다.  

  더 넓어진 세상인식은? 

  안전한 먹거리를 위한 시민들의 정당한 요구를 민주주의적 해결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에서 나아가 육식의 입맛을 채워주기 위해 잔인하게 자라고 도축되는 소들의 영혼도 위로해주고 빌어주는 마음, 인간의 쾌락과 욕망 속에 버려진 세상의 굶주린 사람들과 황폐해져만 가는 지구,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우리들의 마음 속의 괴물이 더 이상 자라지 않고 그 에너지를 다시 생명을 살리고 지구를 살리는 에너지로 변화시키려는 의지...그것이 이 소설이 보여주는 더 넓어진 세상인식이다. 어쩌면 문제의 촛점을 흐리는 것으로 보일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 안에 들어온 것만을 문제라고 인식한다. 그러니 하나의 인식의 창 속에 가려진 많은 면들을 밝혀내는 것이야말로 글을 쓰는 사람들의 소명이 아닌가? 민주주의적 의사결정과 소통의 문제를 소에서 사회문제에서 인간의 마음 내면으로 옮겨다 놓고 또 그것을 사회 전체로 우주전체로 존재의 층위 전체로 옮겨다 놓는 것. 그것이 이 소설이 보여주는 새로운 면이라고 생각된다.  

  아직 희망은 남아 있다.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은 사회문제들, 그리고 촛불집회의 순수한 에너지와 그것을 분출했던 사람들은 결국 어디로 가는 것일까? 세상과 소통하고 동식물과 소통하고 사소한 일상 속에서 삶의 가장 중요한 의미를 추출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그 에너지와 마음은 사람지지 않고 축적된다. 젊지만 인생을 사는데 있어 결코 어리지만은 않은 지오와 민기 태현과 희영 연우와 수아들 우리 사회의 젊은 층들이 바로 그 희망이다. 다만 그들의 마음 속에 생겨서 자라나는 괴물의 존재를 잘 다스릴 수 있는 고삐를 쥔 자들 말이다. 밖으로는 세상과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고 안으로는 자신의 마음 속의 분노를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 당당한 시민들이 존재하는 한 그 사회의 희망은 늘 존재한다. 그 희망은 마치 촛불처럼 이 곳에서 저 곳으로 소리없이 옮겨가고 어느새 세상을 밝히는 횃불이 된다. 촛불은 그 빛의 반경이 작다. 널리 세상을 구하기 전에 우선 자신의 주위를 밝혀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는 성찰의 의미를 촛불은 갖고 있다. 자신의 마음이 밝혀진 후에야 비로소 주위를 넓혀 사회를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촛불의 지혜에서 배워야 한다. 그리하여 세상이 모두 하나의 꽃처럼 피어날 수 있다면 희망은 바로 그 한 송이의 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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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0 19: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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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1 1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동대문도서관 2010-07-27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동대문도서관 입니다^^
『근대의 책 읽기』 저자 천정환 교수님의 강좌 <독자, 그들의 대한민국 - 근현대 문학과 독자의 문화사>가 9월 7일부터 매주 화요일 7시에 동대문도서관에서 열립니다.
4주차 강의에서 김선우 작가의 <캔들 플라워>에 대해 다룹니다.

강의에 관한 더욱 자세한 사항은 아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http://blog.daum.net/ddmlib/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