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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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 중 위화의 이 소설을 접한 것은 '매혈기'라고 하는 색다른 제목이 주는 끌림이었다. 역시 넓고 넓은 중국 대륙은 우리가 가벼이 보아넘길 곳이 아니었다. 모처럼 눈물을 찍어가며 때로는 웃음소리를 크게 질러가며 이야기 속으로 흠뻑 빠져 책을 단숨에 읽어내렸기 때문이다.

허삼관이라고 하는 주인공은 아버지가 일찍 죽고 어머니는 딴 남자와 눈이 맞아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고 넷째 삼촌의 도움으로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가게 된다. 누에방직공장에서 일을 하다 우연히 피를 팔게 되고 그 피를 판 돈으로 그는 하옥란이라는 여자를 얻어 결혼을 하게 된다. 그가 다시 피를 팔게 된 것은 하소용의 아들로 의심되는 첫째 아들 일락이가 대장장이 아들의 머리통을 깨부수게 되면서이다. 피는 그에게 있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서민이 시련을 극복해가는 마지막 수단이자 힘없고 돈없고 벼슬없는 아무 보잘 것 없이 사는 이가 가지는 마지막 자기 존재의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피는 땀과 달리 자꾸만 팔게 되면 그 사람의 건강과 생명까지도 위태롭게 되며 결국엔 한 인간의 존재기반을 허물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귀중한 피를 그는 결국 문화대혁명의 과정에서 집안의 생계와 아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계속 팔아야만 하는 운명을 짊어지게 된다.

이렇게도 기구하고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는 그가 집을 나간 일락이에게 국수를 사주기 위해 업고가던 모습에서, 아내와 간통했던 하소용이를 살리기 위해 아들 일락이에게 사람먼저 살리자고 부탁하던 모습에서, 문화대혁명의 환란 속에서 세 아들 앞에서 아내의 부정은 자신의 부정과 같다고 하면서 옥란을 두둔하던 모습에서, 만성 간염으로 죽어가는 일락이를 구하기 위해 매혈여로를 거쳐 아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내 가슴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감동과 삶 그 자체에 대한 연민을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은 가진 것이 하나 없는 비참한 삶 속에서도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아넘기지 못하는 연민과 사랑이 바로 이 작품의 위대함을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그것을 너무 무겁고 어렵게만 읽히지 않도록 적절한 희극적 요소를 가미한 것은 어쩌면 실제로 우리 서민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무거운 운명의 굴레를 수용하며 극복해가는 삶의 지혜였을 것이며 그것을 이렇게도 날카롭고 정확하게 포착해내는 위화의 작가적 위대함의 산실이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내가 삶을 살아오며 느끼는 삶 그 자체의 애환과 그로 인한 연민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내가 미워하지만 미워할 수만은 없는 많은 사람들,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같아도 그들의 애절한 삶에서 내 마음도 슬퍼하며 한줄기 공감의 눈물을 뿌리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모습은 달라도 상징이라는 의미에 있어서는 똑같은 삶의 비극 속에 놓여진 인간 삶의 공통된 슬픔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누구나가 매혈을 하며 사는 인생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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