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눈이 먼다는 것은 단순히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눈이 먼다는 것은 자신의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의미를 잃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자동차를 잃어버린 사람으로부터 자신의 집과 자신의 아내와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소유물이 자신인양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으로 알고 자신을 버리는 사람까지 눈 먼 세상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180도 뒤집어버린다. 빈부와 성별, 종교와 사회적 신분은 사라지고 눈먼자들의 도시에는 새로운 조직화와 새로운 사회적 서열이 생긴다.

기존에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했던 모든 소유물과 사회적관계의 파괴를 견디지 못하면 눈 먼 상태의 현실을 수용하며 살아가는 것은 힘들다. 눈 먼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우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바뀐 현실에 대한 수용의 자세이다. 따라서 눈 먼 세상에서는 보이는 세상에서의 물리적이고 현상적인 가치는 사라져버리고 이젠 보이지 않는 가치가 그들의 삶을 지탱시켜준다. 동병상련에 처한 사람들이 서로 위로해주고 공존을 위해 협력하는 마음의 변화가 바뀌어버린 현실에서 찾아낸 지혜이자 선물이 된다.

그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아마 더 이상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미쳐버리거나 자살하고 말 것이다. 오물덩어리에 둘러싸인 채 오물을 몸에 묻히고 숨쉬고 살아가야 하는 올릴것만 같은 불결함을 수용하는 것, 남편이 자신의 앞에서 다른 여자와 성관계를 맺는 장면, 자신의 부끄러운 생존의 빵을 얻기 위해 아내를 깡패들의 소굴로 보내 몸을 바치게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그것을 수용할 수 밖에 없다. 변화된 세상에선 무엇보다 변화된 삶의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이 전체의 삶의 지속에는 필요하니까.

사라마구의 눈먼자들의 도시가 우리들에게 주는 메타포는 많다. 그것은 인류공존의 문제(핵, 환경, 식량, 자원 등)가 목도해 있음에도 아랑곳없이 이기심과 탐욕을 채우려고만 하는 정지와 멈춤을 모르는 경제성장의 사회와 전쟁의 사회가 그러하다고 해석해볼 수 있다. 또는 자신의 진정한 본성에 관심없이 늘 물질적이고 현상적인 면에만 인생을 허비하고 사는 허무에 찬 이 시대의 방랑객들에게 과연 그대 삶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하고 물어오는 것 같기도 하다.

세상 어디를 둘러봐도 전쟁없는 사회, 학살없는 지역, 비극없는 곳이 없다. 늘 인간은 비극을 통해서만 정화되는 것인가? 눈먼자들의 도시에 다시 눈을 갖게 된 검은 안경을 쓴 여자가 대머리에다 한 눈은 없고 늙어버린 노인을 여전히 자신의 삶의 반려자로 선택하는 장면에서 그래도 눈먼세상이 우리 세상에 가져다 주는 교훈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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