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탄생 - 한 아이의 유년기를 통해 보는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 과정
전인권 지음 / 푸른숲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저자의 탄생과 성장과정인 개인사를 통해 보여주는 한국사회의 가족에서의 가부장제의 성격과 그것이 사회구조로까지 확장되어가는 과정을 너무나도 명쾌하게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저자가 느끼고 스스로 형성된 그의 실패한 삶의 모습은 바로 그를 통해 비추어본 바로 나의 모습이기도 하고 또한 그것은 우리 사회 남성들의 보편적 모습이기도 하다.

가족내에서 아버지가 보여주는 인간관계는 수직적 관계로 표출되고 그것은 가족구성원 간의 권위주의적 지배복종관계를 낳고 결국엔 가족들간의 의사소통을 단절시킨다. 물론 어머니로 표상되는 수평적 관계라고 해서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의 의사소통관계는 다면적 얼굴을 가진 다중적 인간관계이고 이것 또한 진정한 의미의 의사소통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렇게 형성된 인간관계망 속에서 나는 점점 권위주의적 정체성을 가진 아이로 성장해가고 나 역시 그렇게 단절된 의사소통의 구조 속에서 단절된 성격의 소유자로 다면적이고 가면적 인간관계의 소유자로 자라게 된다. 이러한 가족관계는 한국사회의 권력의 정점에 위치한 개발독재의 논리를 정당화시키게 된다.

그래 좋다. 이렇게 자란 내가 실패한 남자의 전형이자 한국 사회의 가부장제 속에 자란 386세대이전의 보수세대라고 하자. 그럼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내 속에 깊이 자리잡은 동굴 속 황제를 그대로 내버려 둘것인가? 내가 아버지의 모습을 부정하면 할수록 나는 사실 더욱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왔다. 어느듯 훌쩍 자라버려 이젠 한 가정의 가장이 된 지금 나에게는 아버지에게서 보여졌던 그 모습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며 아연실색한다.

비록 한 가족사의 내부에 자리잡은 동굴 속 황제라는 괴물이 우리 사회의 전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자세하게 해명하지는 않았지만 저자는 그런 결과에 대해 이미 자신의 견해를 다 보였다. 따라서 아직 우리 사회에 깨끗이 근절되지 못한 사회의 부조리 속엔 어쩌면 나의 정체성 과정 속에 만들어진 그래서 나의 모습 내부에서 발견되어지는 그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이러한 의사소통구조의 단절과 권위주의를 뛰어넘기 위해서 우선 우리 내부에 존재한 동굴 속 황제 죽이기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