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레프 톨스토이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03년 5월
평점 :
절판


인생의 각 단계에서 우리는 늘 행복함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자신의 삶의 중요한 지표가 될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톨스토이의 조금 색다른 이 소설은 두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며 진실한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것이 색다른 이유는 톨스토이의 다른 작품에서 늘상 다루고 있던 종교적인 삶을 떠나서 그리고 사회적 차별과 부조리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떠나서도 아주 사소하면서도 사회를 이루는 기본 단위인 가정에서 부부가 이루어가는 삶의 행복을 그야말로 우리 삶의 행복의 전형으로서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관습이 매일 우리의 삶을 고정된 형상으로 석화시켜가고, 우리의 정신은 자유로움을 상실하여 아무런 열정도 없는 평탄한 삶의 노예로 전락하고 있다는 느낌'은 아마 결혼생활이 중반기로 접어드는 세상의 모든 부부들에게서 발견되는 현상일 것이다. 나 스스로를 돌아보아도 이런 문제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한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세르게이 미하일리치의 아내가 된 마샤는 이런 일상적 삶의 관성에서 의식의 화석화를 경험하게 되고 자신의 새로운 삶의 활력소로서 사교무대를 찾게 되는 과정과 그 사교무대에서의 화려한 생활속에서 일시적 삶의 기쁨을 되찾게 된다.

하지만 시작은 끝의 존재를 드러내듯이 그녀는 쇠퇴하는 자신의 사교계에서의 위치와 그로 인한 삶의 또 다른 화석화에서 다시 가정을 찾게 되고 이미 가족에서 예전에 있었던 삶의 행복을 찾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그 모든 것을 자신의 결혼 초기 생활의 행복했던 시절들로 돌리고 싶으나 이미 그럴 수는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허무해한다.

그녀가 결혼 전 포크로브스코의 옛집에서 보내며 세르게이랑 나누는 후반부의 대화 속에서 그녀는 삶의 진실된 행복은 삶의 단계 각 각에서 자신의 마음속에서 발견해내어야 하는 보물과도 같은 것임을 알게 된다. '당신은 잎새와 풀이 비에 젖는 것을 보고 그것들이 부러웠지. 당신 자신이 풀이 되고, 잎새가 되고, 비가 되었으면 했을 거야,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을 즐기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야. 아름답고 발랄하고 행복해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야.' 이제는 삶의 각 단계에서 변화해가는 모습을 수용하고 그 곳에서 변화된 사랑과 삶의 행복을 찾아가는 것이라는 세르게이의 말은 삶의 관성에 타락한 우리들에게 삶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결혼한 지 일년이 다되어가는 나의 결혼생활에서도 사랑의 자리는 여전히 다른 모습으로 우리 서로에게 남겨져 있지만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랑은 모두 씻겨져가고 없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텅 비어있을 것 같은 그 자리엔 여전히 변화된, 가슴앓이하고 마음이 부풀어오르는 열정은 없어도 내 삶을 지탱해가는 평화로움과 행복함이, 사랑이 모습을 달리하며 웅크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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