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서 울다
제럴드 L. 싯처 지음, 이현우 옮김 / 좋은씨앗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행복하고 단란한 한 가정에 별안간 닥친 사고는 그 가정을 완전히 파괴시켜 버린다. 그리고 살아남은 가족 구성원의 정체성과 자아마저 상실시킨다. 이러한 상실감 속에서 우리는 왜? 나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며 당혹스러워 한다. 급격하게 변해버린 그리고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현실앞에서 충격을 견디기 힘들어하고 때로는 그 상실이 한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황폐하게 하여 남은 생애를 무의미하게 보내게 하거나 남은 자의 삶을 단축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예고없는 불확실한 사고는 누구에게나 닥쳐온다. 다만, 인생의 길에서 일찍 만나느냐 늦게 만나느냐의 문제이고 급격히 죽음으로 치닫는가 아니면 천천히 다가가느냐의 문제일 따름이다.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의 죽음은 자신의 일부를 파괴시킨다. 자신과 관계맺고 있는 그 관계 자체를 파괴시킴으로써 자아를 파괴시킨다. 하지만 파괴 속에는 창조가 도사리고 있다. 파괴의 상실감에 아무런 것도 보지 못하게 되면 우리는 새로운 창조를 볼 수 없고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를 온전히 살아갈 수 없다. 인생의 길에 느닷없이 닥친 사고와 불행에 대해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다. 그리고 그 자유의지에 따라 이후의 삶에 의미부여하는 가치를 달리할 수 있다.

싯처는 상대편 운전자의 잘못으로 자신의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딸 세 명을 동시에 잃었다. 그에게 있어 자신을 존재하게 했던 정신적 관계망들을 완전히 해체시킨 이 사건은 그와 남은 자녀들의 삶을 불행속으로 던져 넣었다. 감당할 수 없는 그 상실감 속에서 날마다 눈물을 흘려야 했고 삶의 절망감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그 사고는 그로 하여금 점차 남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이전과는 전혀 달라진 그의 모습을 기대했고 또한 파괴된 관계망을 대체할 새로운 관계망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랑과 믿음이란 이름으로 그의 삶을 새롭게 만들어내고 있다.

그 상실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그의 영혼의 성장을 가져왔다. 그것은 그 사고를 일으켜 자신의 모든 것을 파괴해버린 상대편 운전자를 용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고, 그리고 자신의 이어지는 삶에 도움과 사랑을 준 사람들에게로 확대되어 갔다. 비록 죽은 자들은 자신의 삶의 의미를 다하고 갔지만 살아 남은 자들에겐 아직 남은 삶에 대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그를 지탱해주었다. 자녀들의 삶, 그리고 자신의 남은 삶은 그 처참하고도 수용하기 힘든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게 하였다. 이렇게 수용은 용서로 용서는 사랑으로 그 사랑은 저자의 영혼을 성장의 길로 돌아서게 하고 비로소 그는 자기 삶이 가진 전체적인 시각을 갖고 생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왜 나는 아닌가? 하는 물음 속에 나도 언젠가 맞아야 할, 아니 오늘일지도 모를 그 사고와 상실감에 대한 나름대로의 예비체험을 하게 하고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보는 계기가 된다. 과연 나는 그런 상황에서 신이 준 최고의 선물인 자유의지를 발휘해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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