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왜 자연에서 자라야 하는가
게리 폴 나브한 외 지음, 김선영 옮김 / 그물코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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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은 참 불쌍하다. 그들은 10대가 되기도 전에 학교마친 후 학원을 두 서너개씩 다니며 늘 뭔가에 쫓기어 산다. 정작 그렇게 시간에 쫓기어 사는 하루가 행복하기는 커녕 고달퍼 보인다. 왜 우리들은 우리의 아이들을 자유롭게 내버려두지 못하는 것일까? 빈틈없이 돌아가는 톱니바퀴 속에 갇혀버려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는 탓일까 아니면 우리들의 구속을 아이들에게 똑같이 뒤집어 씌우려는 보상심리일까?

내가 만약 아이를 갖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아이를 기를까? 여느 부모처럼 6살만 되면 유치원부터 시작해서 규격화되고 피해갈 수 없는 제도교육의 틀속으로 아이를 밀어넣을까? 그것도 모자라 태권도, 컴퓨터 등 등의 학원등록을 하고 녹초가 되어 저녁무렵에야 집에 돌아오는 아이의 쳐진 어깨를 보며 격려해줄까? 좋은 자연적 환경에서 공부시키고자 하는 바램을 갖고 있더라도 그런 환경을 앞으로의 우리 사회에서 찾아낼 수 있을까?

자연주의자이자 생태주의자인 두 저자는 자연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생명체의 삶과 우주전체적 사고에 대해 강조한다. 사실 제도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아이들의 타고난 본래의 현실파악능력을 가로막고 과학과 합리성이라는 자연지배도구가 마치 인간을 자연의 지배자인양 가르치는 교육에 대해 거부감을 느낀다. 한번이라도 산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가 본 사람들은 알리라. 얼마나 숲이 사람의 마음을 평화롭고 안정되게 하는지...그리고 봄의 기운이 만연한 산에 발을 들이미는 자는 알리라 자연이 보여주는 무한한 생명창조력과 그 거대하고도 신비한 힘을...

아직 제도교육의 때가 묻지 않은 아이들이 사물, 생물과 대화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 우리는 그들의 세상에 대한 인식이 우리들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많이 아니까 아이들이란 모르고서 하는 거야 라는 생각을 버리고 그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 아이도 세상을 온전히 인식하고 그 인식하에서 반응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다만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과학과 교육의 틀 속에서 고정관념으로 세상을 대한다면 아이는 자신의 타고난 본성으로 세상을 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이 가진 생명과 동등한 생명체로서 모든 것을 대한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분화되고 구분되어진 사회 속에 살고 있다. 그 분화는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에서도 흔히 발견되고 그것은 세상을 기계적으로 구분되어진 모습으로만 분석되게 한다. 따라서 이러한 과학적인 인식은 세상과 우주에 대한 전체적인 사고를 가로막는다. 지구생명체로서 우주유기체로서 우리가 유기체의 일부분으로 작용하며 따라서 우리가 행하는 행위하나 마음먹는 마음 하나가 어떻게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모른다.
여전히 우리는 위대한 신비앞에 무력한 존재로 서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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