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인 삶 그르니에 선집 4
장 그르니에 지음, 김용기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늘 아침이면 또 다른 하루를 맞이하는 사실을 우리들의 관성에 젖은 퀭한 눈은 알지 못한다. 오늘 나의 식탁에 오르기 위해 무수한 시간을 땅속에서 자라나야 했던 채소 하나하나의 우여곡절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일상적인 삶은 그것이 습관이 되어버리면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시선 너머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 평범한 일상이 유지되기 위해 굴러가고 있는 무수히 많은 톱니들이 제각각 맞추어져 거대한 하나의 수레바퀴를 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일상은 그저 단순히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르니에는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영원성의 세계로 향하는 비밀의 문을 몇 가지의 소재를 통해서 그만의 섬세한 감각으로 찾아낸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부딪히는 수면과 독서, 정오, 자정, 여행, 산책 등의 개념 속을 치밀하게 파고 들어 피안의 세계로 향하는 틈을 찾아내고 그 틈을 통해 성과 속의 세상을 구분해내고 성의 세계로 향하는 문을 조심스레 열어젖힌다. 그리고 일상적인 사건 속에 내재한 절대적인 세상과 상대적인 세상의 단면들을 보여준다. 실재하는 세상이 어느 것인지에 대해서도 우린 여전히 알지못한다.

수면에서 깨어날 때 우린 단지 꿈속에서 체험한 생생한 현실이라 하더라도 깨어난 후의 이 세상의 코드와 다르다는 이유로해서 쉽게 부정해버린다. 하지만 꿈을 꾸며 도대체 나란 존재가 나의 의식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우리가 아닌가? 잠은 우리들 자신들의 근원으로의 회귀를 가장 확실하게 말해준다. 문제는 그 의식을 자신이 놓치지 않고 있는가이다.

고독과 침묵도 그러하며 우리 일상을 이루는 모든 언어적 상징들도 그러하다. 따라서 우리는 그 언어적 상징의 틈 어딘가에서 저 너머의 세계로 가는 비밀의 문을 찾아내야 한다. 빛은 이동하다가 막힌 벽에 다다르면 더이상 통과하지 못한다. 하지만 조그만 아주 조그마한 틈이라도 있다면 그 빛의 파동은 회절현상으로 틈을 매개로 서로 다른 두 세상의 경계를 통과하여 건너 세상에 또 다른 빛의 파동을 만들어낸다. 우리 일상의 삶 속에 아마 그런 피안의 세계가 만들어내는 회절현상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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