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여자 엠마뉘엘 베르네임 소설
엠마뉴엘 베른하임 지음 / 작가정신 / 1998년 6월
평점 :
절판


처와의 첫만남을 간직하고픈 열망은 내 낧은 책상서랍 속에 그녀와 처음 술을 마셨던 곳에서 가져 온 병뚜껑 두 개를 고스란히 간직하게 하였다. 나는 왜 그랬을까? 그 때 그 시간들을 그리고 그 시간들 속에서 내가 가졌던 설레임의 감정과 알 수 없는 우리의 미래에 거는 희망을 간직하기 위함이었던가? 여기 이 질문에 답을 주는 책 하나 있다. 현대 직업 여성의 섬세한 심리묘사를 간결하고도 절제된 언어로 잘 표현한 작품 '그의 여자'가 바로 그 책이다. 새롭고 독특한 문체로 쓰인 작품에 수상하는 메디치상 수상작인 이 책은 120여쪽은 길지 않은 책이다. 12여년 동안 그녀가 쓴 4편의 작품이 모두 100여쪽 남짓한 짧은 작품이지만 그 작품 속에는 간결하고도 짧은 문장이 그녀가 전달하고자 하는 취지를 통렬하고도 시원하게 풀어내고 있다.

동거남과 헤어진 직업의사 끌레르는 아내와 아이가 있다는 공사장 인부에게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그와 아주 절제된(늘 1시간 15분이라는 제한된 시간) 만남을 갖는다. 그 만남의 과정은 주중간 계속되다가 주말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럴때면 그녀는 그의 가족을 머릿속으로 구성하고 아내의 옷차림과 몸매 그리고 얼굴에서 성격부여까지 온갖 상상력으로 상황을 만들어나간다. 그와의 관계는 너무나 감각적이고 또한 욕망은 절대적이어서 그를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와의 만남이 남겼던 흔적을 광적으로 수집하는 것으로 대리만족을 삼게 된다. 티스푼 하나와 각설탕 4개, 장미꽃 열 두 송이와 응답기 테이프 그리고 그가 사용했던 많은 콘돔들....

어느 날 관계 후 그가 아직 미혼이었다고 사실을 밝히자 이 물건들을 이제 필요없어진다. 직접 소유하고픈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되니 대리만족물은 필요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 대리충족물을 휴지통에 버리고 비어있는 서랍에 이번에는 그녀의 환자가 떨어뜨리고 간 성냥이 다시 놓임으로써 그녀는 다시 소유할 수 없는 다른 남자에 대한 욕망을 키우기 시작한다는 암시는 현대 사회의 단절되고 고립된 외로운 독신여성의 내면을 마치 사진기를 들이대고 클로즈 업시켜 사랑이라는 것의 본질과 욕망이 어떻게 관계맺고 있는지를 자세하고 정밀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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