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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와 거닌 날들
막심 고리키 지음, 한은경, 강완구 옮김 / 우물이있는집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40여 년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인간의 형식적인 틀에 얽매이지 않은 문학과 삶을 교우하는 정신적인 우정을 나누었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야스야나 뽈랴나의 그림같은 전원생활은 톨스토이로 하여금 이미 자연 속에 깃든 세상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신비와의 교감을 경험하게 했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하였다.
이 책은 톨스토이의 문학세계와 정신세계를 자세하게 보여주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고리끼를 통해 본 톨스토이의 인간성을 그의 적나라하고 저속한 언어적인 표현과 정직하고 비수같은 작품과 사람에 대한 평가, 그리고 농부와 민중의 삶에 대한 동경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있다. 하지만 톨스토이가 노년에 가졌던 정신적 대격변과 그로 인한 그의 사상의 중심을 비켜가기엔 고리끼도 심히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가장 높고 완전한 존재에 대한 그의 충고는 고리끼의 가슴 속 깊은 곳의 내면적 자아를 울렸던 것이 틀림없다. “자네는 침묵으로 여길 빠져나가진 않을 걸세. 그렇지 않을 거야.”라는 말에 그를 쳐다보며 고리끼는 “이 사람은 하느님 같아.”라고 한 그의 말에서 우리는 이 책 끝에 자리잡은 이 문장의 중요성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고리끼의 작품에 대한 통렬하고도 직설적인 비판과 때에 따라서는 독설적으로까지 보였던 톨스토이와의 대화는 훗날 돌이켜보며 새롭게 새겨야 할 의미가 있음을 고리끼는 인정한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본성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없이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온전한 체계를 갖춤이 어려울 것임을 톨스토이가 미리 예견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육체적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의 사상과 정신은 작품세계를 통해 더욱 견고하고 뚜렷하게 세상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듯이...그들의 40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우정과 교류는 서로에게 지워지지 않는 삶의 흔적을 남겨 놓았음을 나는 믿는다.
나를 스쳐지나간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은 나에게 자신만의 고유한 흔적을 남긴다. 하물며 내가 마음으로 만나며 마음을 향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나의 삶을 완전하게 하고 좀 더 넓게 세상을 사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될 것인가? 지금 문득 그들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