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김지하의 '화개'와 더불어 시단에서 주목되는 또 하나의 시집이 있는데 바로 이것이다. 한국 시단에서 그를 빼고서 시를 이야기하기엔 뭔가 허전한 신경림 시인의 이 시집은 그의 나이 60대 중반이후에 와서 조금은 더 자연스러워진 그의 언어미학을 접할 수 있는 동시에 그가 가진 삶의 무게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그런 책이다. 80년대의 사회운동의 분위기가 저물어가면서 90년대 들어와서 가볍고도 기술적인 시들이 난잡하게 쓰여지면서 그는 우리 시가 더욱 기교적이고 부자연스럽게 그리고 너무나 가볍게 흘러가고 있다고 경고한다. 역사성이나 현실성의 무게에 짓눌려 시답지 않은 시가 선동적 목적으로 쓰여진 것도 문제라고 한다면 그런 삶의 무게로부터 완전히 무관심해진, 그래서 대중의 저질적 욕구에 추종하는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시들에 대해서도 경계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체코의 작가이자 시인인 밀란쿤데라의 시 중 '시인이 된다는 것'이란 시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시인이 된다는 것은끝까지 가보는 것을 의미하지행동의 끝까지희망의 끝까지열정의 끝까지절망의 끝까지'그것은 시가 가진 삶의 신중함과 무게를 인식한 말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요즘 시들은 너무나도 가벼우면서 가식적인 기교가 섞인 글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지 시집을 손에 대는 일이 뜸해졌던 것 같다. 시적 언어란 것이 그 언어를 다루는 자의 삶을 투명하게 비추는 것이 아닐때 그 시는 대중을 감동시킬 수 없다. 비록 우리의 표면의식은 그 언어를 모두 이해하지는 못해도 진실하지 못하다면 우리 속의 참된 존재는 그것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신경림 시인의 말처럼 시는 나무와 같아서 그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들에겐 그 참모습을 드러내는 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