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김지하의 5-6년간의 시적 작업의 중단과 국토 대순례를 통해 여러 명산대찰을 찾아 여행길에 오른 후에 나온 작품이다. 어느듯 60이 훌쩍 넘어버린 그의 오랜 공백기간 후에 내보인 이 시집은 그가 드디어 깨닫게 된 인생의 의미들이 글이란 옷을 입고 우리 앞에 나타난다. '아내에게'라는 외로움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고 그리고 자신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외로움이 아닌 외로움의 의미를 깨우친 것이라고 말한다. '나그네'에서는 '길 너머 저편에 아무것도 없다'고 하여 자신이 걸어온 인생의 외로움과 그로 인한 허무함을 말하는 듯 들린다. 하지만 '내 고향은 길 끝없는 하얀길'에서 이미 아무것도 없었던 인생의 길 그 자체가 의미있는 존재가 되며 이는 아무것도 없어보이는 '무'라는 것이 존재가 있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그 무엇이 되고 있는 듯하다. '길가에 한 송이 씀바귀 피었다'에서는 이러한 것이 더욱 확연해져서 저편에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 결국엔 씀바귀가 피었다로써 결국엔 존재의 빈 공간을 채워주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인 무의 본질에 대해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결국 그의 아무것도 없다는 꽃이 피다라는 말의 花開로서 무가 새로운 것이 있음이라는 깨달음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의 생명사상이 이젠 보다 인생의 의미에 다가가고 있고 따라서 더욱 깊은 성찰의 내용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 시집에 담긴 몇몇의 글들은 읽고 또 읽어도 의미가 새롭고 더욱 그 내용이 좋아짐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