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199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홍세화가 한국 사회에 전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것은 바로 프랑스 사회와의 비교를 통한 우리 사회에 대한 냉철하고도 엄중한 비판과 반성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화두를 앞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갈 젊은이들과 함께 고민해보려고 한다. 젊은이들의 철저한 반성과 비판을 출발점으로 삼아 우리 사회의 찬란한 미래를 꿈꾸고 싶은 것이다.

그의 눈을 통해 본 프랑스 사회는 분명 우리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던져 줄 그 무언가를 갖고 있다. '똘레랑스(관용)'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자신과 다른 사람, 다른 사상과 주의와 색깔과 모습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이다. 이러한 똘레랑스가 지배하는 프랑스 사회는 아주 다양한 모습의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옷차림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는 자신만의 개성과 특징을 가진 모습으로, 정치적으로는 극우에서 극좌의 좌표축 사이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무수한 점들에 놓인 사람들로 나타난다. 이는 정부를 구성하는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수상과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우파와 좌파의 합작으로 구성되어 국사를 진행하면서도 견제와 갈등 속에서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또한 당대에 사회주의 권의 몰락으로 시장의 논리와 이윤논리가 전세계적으로 거대한 물결로 소용돌이치는 현실속에서도 프랑스 사회는 '사회정의'가 이것에 우선한다는 논리를 간직할 수 있는 사회임을 지적한다. 미국과 영국의 비이성적이고 힘의 논리에 근거한 패권주의와 세계화의 압박 속에서도 이 사회의 양심들은 그것이 틀렸음을 외칠 수 있는 그런 사회임을 보여 준다. 1995년에 있었던 철도 노동자 파업의 사례는 얼마나 신선한 충격이자 희망있는 대안인가?

물론 이런 프랑스 사회도 제국주의적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반성해야 할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들도 실재하고 있으며 비합리적이고 부조리한 모습들도 역시 내재하고 있음을 그는 말한다. 하지만 강국의 패권과 다국적 기업의 이윤추구논리만이 최고의 미덕이라고 외쳐대는 거대한 소음속에서 그래도 사회정의와 관용을 나직히 말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그 사회에서 배워야 하지 않는가?

그는 프랑스 사회의 이러한 특징들로부터 우리 사회를 비추어보고 우리 사회가 반성하고 고쳐야 할 것을 제시함으로써 두 사회와의 만남을 주선한다. 기업인들의 비리와 정부 고위 관료와 정치인들의 부정부패, 언론인들의 기회주의성과 언론 정신의 부재, 국민의식의 저급성을 꼬집어 드러내며 객관적인 시각으로 프랑스 사회와의 비교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똘레랑스 보다 우월한 우리의 미덕인 '중용'과 '외유내강'의 덕목으로 극복할 것을 주장한다.

세계화라는 물결 속에서 서구의 것만 좋다고 무조건 받아들여 자신의 더욱 소중한 미덕을 잃는 우를 범하지 말고 우리의 것으로 우리답게 현 사회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정의와 관용이 살아 있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야 말로 우리 나라가 꿈꿀 수 있고 꿈꾸어야만 하는 미래이며 망명의 땅에서 그가 애타고 사무치도록 그리던 그런 사회가 아닌가? 그 사회로 열차를 타고 유럽을 건너 중국대륙과 시베리아를 지나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어 그리고 그리던 조국으로 돌아오는 그런 꿈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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