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쥐스킨즈의 이 책은 너무나도 흥미롭다. 책이 얇은 편이라 호흡을 크게 한번 흐읍~ 하고 단번에 읽어 내려갔다. 조나단 노엘은 어느 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영영 사라져버렸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도 어디론가 떠나 버리고 군대에서 돌아오자 동생마저 어디론가 가버리고 혼자 남게 된다. 결혼해서 넉 달만에 아내는 누군가의 아이를 낳고 과일장수와 눈이 맞아 줄행랑쳐버리자 노엘은 인간에 대한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가지게 되고 그 상처를 낳게 한 세상에 대해서도 마음을 닫아 버린다.

그는 오로지 인간과 세상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기 자신만의 안식처이자 확실한 휴식처를 찾게 되고 그것은 어느 파리의 건물 6층에 위치한 24번이라는 번호가 붙여진 조그만 방으로 현실성을 획득하게 된다. 이 방에서만큼은 그는 고통스럽고 역겨운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완전히 보호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비로소 그 방을 완전히 영원히 소유하고자 한다.

나이 오십이 다되도록 오로지 이것 하나만을 이루기 위해 그리고 거기에서 행복을 느끼며 그 꿈에 가까워지던 어느 날 그는 예기치 못한 하나의 침입자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비둘기인 것이다. 이제까지 완전하다고 생각되었고 가장 편안하고 세상의 모든 것들로부터 보호되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 이곳마저도 이 한 침입자에 의해 일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린 것이다. 노엘이라는 한 인간에게서 이젠 세상은 그 어느 곳도, 심지어 자신의 가장 아늑했던 이 공간마저도 자신이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그런 곳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니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우선 이 곳으로부터 영원히 떠나는 것이며, 또한 세상을 완전히 버림으로써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 즉 죽음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가 잡은 어느 여관의 작은 방에 대한 관이라는 비유와 다음날 아침 눈을 떠서 들려오는 천둥소리에 세상은 모두 종말을 고해 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도 그의 생의 의지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의 일에 대한 기계적이고도 자동적인 대응 역시 인간과 세상에 대한 기계적이고도 자동적인 그래서 최소한의 대응과 같은 맥락인 것이다. 세상에 대한 그의 '익명성'은 노엘식 세상살이의 기본 틀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익명성'에 대한 자기정당화로써 피라미드적인 상징성을 자신에게 부여하는 내용은 상당히 흥미로왔다.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로서 모른 사람과 세상에 대해 완전히 닫아버린 고립된 노엘의 존재는 어쩌면 아주 극단적인 모습이기는 하지만 기계화되고 자동화되고 획일적인 현대사회에서 우리들이 가진 자화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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