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앞부분, 불과 3장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나는 머리털이 삐죽 서는 느낌을 가졌다. 어찌하면 과연 자신의 은밀한 사생활을 아무런 부끄럼이나 거리낌없이 이렇듯 자세하고 노골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그녀의 대담함인지 무분별함인지를 구별하지 못한 궁금증이 온 뇌리를 감싸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마치 바닥에 있는 스펀지에 빨려 들어가는 물기가 된 것처럼 이 책에 깊숙이 몰입하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매춘부의 자서전적인 신세한탄이 아닌 몸이 가진 어떤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갖추고 있는 신체의 각 기관은 나름대로의 기능이 있는 것이고 신체의 각 구성요소들이 유기체처럼 신경조직과 혈관조직 등을 통해서 잘 연결된 것처럼 전신을 교류하며 전달되는 기운이 우리의 몸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신체 기관의 기능들은 자신의 몸으로 타인의 몸을 받아들이면서 깨우칠 수 있다는 기능주의적인 사고는 나에게 또 하나의 가르침을 주고 있다. 이 책을 구성하고 있는 네 가지의 단원(수, 공간, 내밀한 공간, 세부묘사)은 저자의 성에 대한 시행착오의 과정이자 몸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와 전체간의 유기체적인 관계를 파악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또한 자신의 자아가 형성되는 과정이며 부모와 그들의 배경으로부터 독립되어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가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그녀의 몸과 성행위에 대한 자세하고 미묘한 묘사와 객관적으로 서술하면서도 주관적인 감정을 충분히 드러낸 언어들은 마치 영감을 얻은 예술가의 손이 성에 대한 섬세하고도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도구처럼 느껴진다. 따라서 그녀가 가진 무수하게 많은 성교와 성행위 속에 늘 머물러 있던 그녀의 관찰자적인 자세는 난잡하고 불결할 정도로 많은 횟수와 대상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행위에 뭔가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어쩌면 난잡하고 불결한 존재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는 생각도 불현듯 나의 머리 속을 맴돈다. 이러한 것을 내가 책 속에서 읽어낼 수 있을 때쯤에 가서야 비로소 쭈뼛쭈뼛하게 섰던 내 머리칼이 자연스럽고 차분하게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