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알 유희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29
헤르만 헤세 지음, 박환덕 옮김 / 범우사 / 199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헤세의 작품세계는 늘 성장해가는 개인의 자아의 성장에 관심을 두고 있다. 유리알 유희 역시 이러한 과정을 담고 있는 거대한 작품이다. 유리알 유희는 정신적 삶의 부활 및 보존을 중요한 목표로 삼는 하나의 종단에 관한 이야기이다. 유리알 유희란 삶의 무궁무진한 의미를 음악적으로 재생하고 명상과 사색에 잠겨 그 의미를 파악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유희를 통하여 이기적이고 타락한 개인의 정신과 불안하고 위태로운 현실의 세계에 맞서 도덕적인 순화와 정신적 정결함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헤세는 요제프 크네히트라는 한 인물의 성장과정을 통하여 완전하고도 진실한 깨달음은 도덕적이고 순결한 정신적 유희로 상징되는 카스탈리엔의 세계뿐만이 아니라 이와 대비되는 현실의 삶의 세계를 깊게 체험함으로써만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그의 생각에는 개인적으로는 집안의 기독교적인 분위기를 거부하고 신학교를 버리고 뛰쳐나온 자신의 성장과정에 대한 정당화이자 그 속에서의 자신의 깨달음이었고, 사회적으로는 1차 세계대전을 겪은 세상 사람들의 불안과 존재의 불확실성과 위태로운 상황의 반영이었을 것이다.

그렇다. 깨달음이란 어쩌면 현실의 모든 것들 - 아름다움과 경건함과 도덕성과 정신적 순결함뿐만이 아니라 미움과 시기심과 질투와 쾌락과 욕망과 죄와 벌 -을 개인이 가지고 있는 오감을 통하여 깊이 인식함으로써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미워하는 개인의 눈에 비친 그 모습이라기보다는 그 개인의 마음속에 있는 그 어떤 것이라는 말은 인간의 오감이 갖고 있는 그것 자체가 어떤 좋고 나쁨과 선악을 구분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대상을 인식하는 개인 자신의 의식일 따름이다. 따라서 자아의 의식을 깊이 성찰하고 반성하는 과정속에서 그것을 극복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유리알 명인인 요제프 크네히트가 느낀 문제의식은 정당한 것이며 바로 헤세 자신이 느낀 문제의식인 것이다. 선이라고 하는 것을 정확하고 깊이 인식하기 위해서는 악이라고 하는 것도 깊이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듯이 한 인간이 진정한 자아의 완성을 이루려고 한다면 정신적 순결함의 보호구역에서만 머물러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 점, 그래서 현실의 삶속에서 자신이 직접 체험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때에 비로소 절대적 진리이자 자아완성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헤세는 깨우쳤던 것이고 이 시대의 진정한 작가는 바로 이런 현실적 상황(전쟁후의 불안하고 불확실한 어두운 상황)속에 있을 때에만 비로소 그 가치가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그의 작품은 직접적으로 사회적 현실 비판과 정치적 의식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우회적으로 그런 것을 지적한다는 느낌을 나는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첫 인상에 뭔가 탐탁하지 않았던 이 작품의 결말(진정한 현실세계를 맛보기도 전에 데시뇨리의 아들 투루와의 사제관계가 정착되기도 전에 호수에서 죽는 결말)은 바로 요제프 크네히트가 현실세계의 직접적인 체험을 통하여 진정한 깨달음과 자아완성을 가질 수 있다는 태도, 그래서 그 체험에 언제든지 뛰어들 자세가 되었다는 준비로 이미 완성된 것임을 보여주면서, 실타래처럼 꼬여버린 나의 의문은 비로소 해결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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