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 - 상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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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900페이지에 이르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 많은 분량의 글들이 하나 하나 모두 없어서는 안되는 필연적인 문장들간의 연결로 되어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기독교사회의 이단논쟁과 그로 인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희생은 마치 20세기의 이데올로기 대립속에서 희생된 무수히 많은 주검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수도원의 입구에 있는 문설주에 그려지고 새겨진 그림들과 수도원을 둘러싼 배경은 이 이야기의 내용들과 ,어떤 말로 정확히 표현하기 어렵지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장서관의 구조와 각 각의 방의 문 위에 표시된 글귀들과 상징들은 마치 이 수도원이 이 세상의 압축판이듯이, 어떤 세상의 압축판처럼 느껴졌다.

윌리암 수도사가 말한 가짜 그리스도는 다름 아닌 진리에 대한 지나친 사랑일 수 있다는 말은 바로 어떤 한 이론이나 사상에 대한 절대화가 무수한 사람들을 희생하게 만드는 악마의 모습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렇다. 특정이론이나 지식에 대한 절대화는 필연적으로 다른 사상이나 이론에 대한 배타적인 거부로 나타나며, 그 사상이나 이론을 갖는 사람들에게도 배타적일 수 밖에 없으므로, 이는 바로 다름 아닌 악마의 얼굴일 수 있다.

그런 악마의 얼굴을 가진 호르헤라는 인물을 통해 수도원이 종말을 맞이하듯이, 절대적인 사상의 옹호나 절대적인 패권국가의 등장으로 현실세계도 그 종말을 맞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끝끝내 이 책의 제목 '장미의 이름'에 대한 구체적인 의미에는 다가갈 수 없었다. 다만, '이름은, 언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존재하다가 그 존재하기를 그만둔 것까지도 드러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말에서 보여지듯이, 에코의 기호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생각으로 나를 기호학의 세계로 인도한다.

더불어 특정 시대를 살아가는 그 누구라도 세상에 대한 세밀한 관찰은 우연적이기는 해도, 보편적인 진리에 이를 수 있다는 이 책의 가르침은 아주 값진 교훈으로 나에게 남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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