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의 돈오입도요문론 강설 - 선종의 정통사상을 이해하는 긴요한 보전
성철 지음 / 장경각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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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철 스님께서 돈오돈수의 입장에서 바른 깨우침의 글을 적은 것이다. 금강경의 가르침에서부터 비롯하여 마음에서 단박 깨우쳐서 다시는 혼매하지 않는 공부법에 대해 조사어록에서부터 스님 스스로의 경험으로 말미암은 풀이까지 정리해놓으신 글이다. 물론 당대 일각에서 스님의 이러한 돈도돈수의 입장을 반박하며 돈오점수법을 주장한 조계종 스님들도 많았으나 한국 조계종에 하나의 깨달음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그것이 한국 불교사상을 더 깊게 한 데에는 분명하다.

 

  사실 공부는 자신이 그 입장이 되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하루살이가 다음 날을 알 수 없다고 내일이 없는 것이 아니듯이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알 수 없다고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 역시 오류다. 그래서 금강경에서도 '여시아문'하고 시작하고 있는 이유를 생각하게 한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우리가 부처님의 깊은 경지의 마음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욱 정확한 표현이 되기 때문이다.

 

  '일체처무심'이 되면 그리하여 받아들이는 외부의 경계나 내부의 경계가 진실해지는데 그것이 되지 않는 모든 수용은 그것이 진리 아님을 알아서 끝없이 나아가야 하는 길이 된다. 화두법이 근기있고 수승한 인연가진 수도인에게는 일대사의 인연을 해결하는 방법이 되기도 하지만 일반근기의 사람들에게는 화두하는 법조차 어긋나는 경우가 흔하다는 생각이다. 온몸으로 화두를 든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체험해내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생과 사도 있고 잠과 모든 오온을 잊고 오로지 화두 하나에 세상이 담겨질 때에야 비로소 화두공부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모든 세상이 한 점 화두 속에 잠길 때에야 비로소 화두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공부법이 모든 대중에게 맞을 수 없음도 분명하다. 그래서 우선 나는 금강경의 가르침을 따라 '항복기심'하기로 한다. 올라오는 모든 생각을 부처님 전에 바쳐서 항복받고 또 대상의 경계에 따라 흩어지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거두어들여서 부처님 밝은 광명 속에 공양올리는 마음으로 생활해가면서 마음 속 분별을 하나 하나 닦아나가는 것이 나의 공부법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렇게 마음 쓰면서 이 책이든 저 책이든 읽으면서 올라오는 분별 바치고 밝은 지혜 향하는 마음이 내가 써야 할 마음임을 믿는다.

 

  그래서 어느 인연이 닿는 날 책 속 한 구절이나 자연 속 한 소리나 한 풍경 소리에 내 마음의 고향을 발견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또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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