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듣는다 - 정재찬의 시 에세이
정재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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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란 무엇일까? 시란 어려운 은유와 상징을 써가며 알 수 없는 문맥으로 게다가 또 어떤 리듬과 운율이 살아야 하고 그러면서 사람들의 마음 깊숙히 다가가 울림이 있어야 하고 등 등..... 시란 참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시란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라고 생각된다. 이런 어려운 시를 좀 더 대중들이 친숙하게 인간이 가진 보편적인 감정과 정서로 풀어낸 책이라 해야 할까? 시가 매력적인 이유는 인간의 사유보다는 더욱 깊은 마음의 지층을 건드리기 때문일 것이다.

 

  시가 대상으로 하는 것도 여러 가지다. 누구나 꿈꾸는 설레임의 사랑... 누구나 언젠가 그런 사랑을 해보지 않았을까? 한 순간 눈망울에 맺힌 순간적이지만 운명적인 그대와 그녀의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잊어버릴 수 있는 일이란 것은 특별한 인생의 경험이다.

 

  터키 해변에 밀려온 시리아의 난민 아이 쿠르디. 그의 죽음의 모습 자체도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은 울림을 남겨 놓는다.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지만 그 삶의 마지막 모습 그 자체가 시가 된다. 죽은 시체의 침묵은 수많은 말보다 더욱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쿠르디의 운명을 가진 아이가 어디 한 둘이겠는가. 하지만 쿠르디는 인류사회에 대해 큰 메시지를 남겼으니 그의 죽음이 헛된 것만은 아니리라. 세상에 헛된 죽음은 없다지만 사회적 인간적 관점으로 들여다 본 곳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기에 쿠르디의 삶과 죽음이 더욱 특별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진정으로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아니 나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때로 시는 이에 대해 묻는다. 상대방의 말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문맥을 살핀다는 작업 너머의 일이다. 때로는 그 사람의 감정을 살피는 일이기도 하고 때로는 그 사람의 삶의 흔적을 더듬는 일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그 삶 속에 펼쳐져 있는 그 시대와 정신을 살피는 일이기도 하다. 자신의 외로움의 끝에서 내는 자신의 본래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 응어리진 그늘을 햇볕 속에 말리는 일이기도 하고 또 시대가 강제한 억압과 한을 풀어놓는 일이기도 하다.

 

  산업화의 과정에서 '이촌향도'라 불리우는 급격한 사회변동과 인구이동 속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가족들과 분리되고 해체되어 고향을 노래했을 것인가? 삶의 생존을 위하여 몸부림치던 삶 속에 그리워하던 가족과 어머니에 대한 마음은 얼마나 절절했을 것인가? 나는 등려군의 노래를 좋아하곤 했다. 중국 수 억의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흘러들어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워했을 때 그 마음을 노래 하나로 달래주었던 가수. 아주 작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정과 에너지가 허공을 가득 채웠던 등려군의 가슴아리고 부드러운 노랫말에 귀기울이다 보면 절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 시대의 아픔과 그 시대의 절망을 시가 어루만져주지 못한다면 시의 생명성은 사라질 것이다.

 

  수많은 예술은 인간의 감정과 더 깊은 무의식을 건드린다. 그 마음이 어디로 생겨나고 어디로 돌아가는지 살필 수 있을 때 우리는 다양한 예술과 더불어 노닐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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