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장소를 걷다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로컬리티 교양총서 4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지음 / 소명출판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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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부산 영도의 중리해변을 다녀왔다. 이전에 있는 자연스럽게 난 태종대로 향하는 산길과 해녀할머니들이 차린 난전이 사라지고 길도 막혀 버렸다. 제주도에서 삶을 찾아 온 이 곳에서 물길질로 걷어올린 싱싱한 해산물로 차린 좌판시장은 사라지고 그 자연스러운 중리 풍경도 사라져 버렸다. 더불어 머지 않아 노년의 해녀할머니들도 사라질 것이다. 내가 당골로 찾던 키다리 해녀 할머니는 작년부터 몸이 않좋아 못나오셨다. 사라져가는 부산의 풍경이고 또 사라져가는 향수의 풍경이다.

 

  부산의 전근대성과 근대성 그리고 현대성이 공존하는 공간, 부산은 역사적으로나 시대적으로나 상당히 입체적인 도시다. 산과 평야와 바다가 공존하는 지형적이고 자연적인 측면도 그러하고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그리고 한국전쟁과 피란민들의 삶 그리고 항구도시로서 개방과 문화적 교류가 섞여 흘러온 오래된 시간의 기억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매스컴과 소비지향의 맛과 볼거리를 소개하는 부산 홍보 영상이 아니라 부산을 사랑하고 부산을 품고 사는 내부자의 시선에서 부산의 장소와 역사를 애정있게 들여다보고자 한 시도가 바로 이 책이다.

 

  반 세기를 넘게 살아온 이 부산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겐 이 도시가 얼마나 삶의 고통이었고 애환이었고 또 희망이었을까? 일제강점기부터 고국으로 귀향하는 그들의 마음과 조국에서 새 삶을 펼치기 위한 희망을 안고 올랐던 관부연락선,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흥남부두에서 밀려오고 피란민으로 육로로 피난온 사람들이 생존하나의 문제로 이를 악물고 살았던 산복동네 판자촌, 식민의 다리인가 민족의 다리인가 보다 클로즈업 시선을 필요로 하는 영도대교, 미군의 원조와 물자 양공주의 탄생과 미군에 대한 부정적 시각 그리고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패권이 있던 미국 문화에 대한 동경이 공존했던 하야리아부대 이 모든 것들이 역사 속으로 묻혀 갔다.

 

  부산에 오면 새로 단장된 산복도로를 돌아야 하고 감천문화마을은 필수코스고 흰여울 마을, 영화의 거리를 보아야 하고 이재모 피자와 돼지국밥은 꼭 먹어야 한다. 또한 깡통시장과 씨앗호떡, 자갈치시장을 들러야 한다는 상품화되고 소비시선의 향유거리로 전락한 부산의 상품들 이면으로 그 속에서 삶을 향유했고 꿈을 꾸었고 절망했고 아파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의 기억과 역사를 되살려내지 못하면 부산은 그저 한낱 소비와 관광도시로 전락해버릴런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 책은 우리 부산의 역사와 과거만 쫓는 것은 아니다. 새로 개장된 송도 해수욕장과 광안대교, 영화의 전당의 의미와 현재적 의미를 되짚어보면서 부산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도 모색하게 한다. 한편 부산의 경제발전과정에서 분출된 조선방직주식회사 여공들의 데모와 10.26 부마항쟁과 그 대가로 재벌길들이기 차원에서 진행된 정권의 탄압으로 공중분해된 국제상사와 부산이라는 도시의 쇠퇴는 부산을 절망과 보수의 도시로 만들었다. 이 도시가 다시 진보와 변화하는 세상의 희망이 되기까지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 그리 멀지 않은 고리에는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원자력발전소를 끼고 불안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 위협을 넘어 희망도시 부산으로 가는 길을 모색한다. 프라이부르크처럼.....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야할 삶의 터전이고 삶의 바다인 부산에서 우리는 어떤 것을 기억하고 되살려내어야 하고 어떤 것을 수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출발점으로 읽어주면 좋겠다. 아직 더 애정의 눈으로 보아야 할 부산의 곳곳이 많음을 생각하며 부산의 정체성에 대해 시민 한 사람으로서 애정을 가지고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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