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이 바뀌면서 성능도 더 좋아진 뉴 브리카. 그러나 방심은 금물.


그 놈의 크리마 때문에 


술, 담배를 하지 않는 내게 커피는 거의 유일한 기호식품이다. 심지어 콜라나 사이다같은 청량음료도 마다한다. 한창 마실 때는 하루에 세잔쯤 마셨다. 마니아들은 에게라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치사량이다. 지금도 두 잔 정도는 아침저녁으로 섭취한다. 마시는 종류는 조금씩 다르다. 주중에는 주로 베트남 인스턴트커피를 주말에는 네스프레스 캡슐을 애음한다. 이런 저런 시도를 하다 거의 굳어졌다. 


새해 들어 이 공식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우연히 한 신문에서 뉴 브리카 광고를 본 게 계기였다. 커피를 제대로 마셔보겠다고 고민하다 선택한 게 브리카였다. 값비싼 커피머신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무엇보다 크리마(모가 포트에 끓일 때 나오는 특유의 맛)가 신기해서다. 단점도 있다. 번거롭기 짝이 없다. 매번 커피를 만들 때마다 물을 넣고 뚜껑을 닫고 간 원두를 깔고 다시 밀폐해야 한다. 가끔씩 폭발하는 바람에 엎어지기도 일쑤다. 뒷처리는 더욱 고단하다. 총기 분해하듯이 일일이 해체해야 한다. 커피 찌꺼기 제거는 덤이다. 


저절로 이사 오고 나서 브리카와 멀어졌다. 일단 기계가 말을 듣지 않는다. 한동안 고생한 기억이 나서 영영 잊혀졌다고 생각했는데. 뉴 브리카는 압출 능력이 더 늘어났다고 한다. 곧 생명인 크리마가 잘 생긴다는 뜻이다. 하지만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펌프가 사라져 아쉬움이 컸다. 맛은 더 훌륭하다고 하는데. 고민하다가 아직은 펌프버튼이 살아있는 2019년형을 주문했다. 크기도 1, 2인용으로 줄여서. 4인용으로는 하도 자빠뜨린 악몽이 있어서. 덩달아 원두도 따로 주문했다. 한동안 단골이었던 가게는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자취를 감췄다. 왠지 내 탓인 것 같아 미안했다. 대신 강릉에 있는 원두전문점을 알게 되어 택배를 부탁드렸다. 


드디어 대망의 날이 밝았다. 익히 알고 있는 방법이었지만 두려움이 앞섰다. 또 잘못되는 게 아닐까? 아니나 다를까 테스트용 커피가 또 일을 저질렀다. 용암처럼 솟구치고 엎어지고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 원래 처음엔 그래 라며 위로하면서 물량을 줄이고 탬핑도 약하게 하며 살살 달래며 다시 올렸다. 다행히 이번엔 제대로였다. 앞으로 내 아침은 브리카와 함께 하겠구나, 라는 강한 가시감이 들었지만. 오늘 새 원두를 시험하다 또다시 콸콸, 아, 브리카의 길은 멀고도 험하구나. 손가락도 살짝 데어 아프다. 


* 이 글은 해당 업체를 포함한 어떠한 단체나 기관의 후원 없이 썼습니다. 직접 사서 이용해보고 정보차원에서 올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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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안부를 주고받지 못하던 사람에게 메일이 왔다. 근 7년 만이다. 반가우면서 죄송스러웠다. 일 때문에 살갑게 대했던 이들인데 업무를 마치자 어느새 관계가 느슨해져버렸다. 하루쯤 묵혔다가 답장을 했다. 내가 쓴 글도 보고 싶다고 하여 블러그에 올린 글도 첨부했다. 사진과 함께. 시차를 둔 이유는 크게 고쳐 썼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냥 보내려고 했으나 다시 읽어보니 어설픈 구석이 너무 많았다. 마치 아마추어가 감정과잉상태로 끄적인 느낌이었다. 묘사도 구체적이지 않고 전달하려고 하는 의미도 불분명했다. 결국 대여섯 번이나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그러다 깨닫는다. 내 글을 누가 읽는지 알게 되면 아무래도 더 신경이 쓰이는군나. 실제로 역사상 빼어난 글들은 모두 그랬다. 불특정 다수가 아닌 명확한 독자를 설정하고 바로 옆에 있는 듯 한 느낌으로 작성했다. 작가 중의 작가라는 헤밍웨이도 그랬고 단문의 미학을 극대화시킨 레이먼드 카버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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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장의 사진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시는가? 

때로는 단 한 장면이 모든 것을 말하기도 한다. 


죄송하지만 님도 너무 예민한 거 아님?


대학에 간다면 사회학을 전공하고 싶었다. 아니면 신문방송학. 삐딱한 마음이 있어서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비판적 생각이 꼭 필요한 분야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글짓기 시간에 질서를 지키자는 주제로 글을 쓰게 했다. 뻔하디 뻔 한 소재였지만 나는 왜 줄을 서야 하는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예를 들어 버스를 타기 위해 우르르 몰리는 것은 사람들 잘못이 아니라 제 시간에 정확하게 차가 들어온다는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시스템이 정착이 되었지만 내가 어릴 때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따라서 질서를 지키라고 할 게 아니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꽤 신박한 아이디어라고 여겼지만 선생님께 따로 불려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튼 스스로의 정체성을 일치감치 발견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불행하게도 내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점수에 맞추어 취업이 잘 될 것 같은 학과를 골랐다. 그럼에도 사회학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전공자 못지않게 관련 책을 읽고 수업을 들었다. 그 때 읽은 전공서적은 아직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졸업을 하고 이런 저런 일을 하면서 사회학과는 멀어졌다. 더 나아가 과연 사회학이 필요한 학문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말이 좋아 종합학문이지 사실은 다른 분야에서 중요하게 여지기 않아 버린 여집합이 아닌가라는. 사실 이 화두는 학부졸업논문 주제이기도 했다. 그 때 차용한 학자가 게오르그 짐멜이었다. 그는 주변사회학의 창시자였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그 이름을 우연히 라디오 방송에서 들었다. 교육방송에서 명강의를 편집하여 내보냈는데 그 중에 언급이 되었다.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서울대의 이재열 교수였다. 사회학의 핵심 요소로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을 깔끔하게 정리해주었다. 이를테면 짐멜의 2인 사회학과 3인 사회학 개념이다. 형제인 경우 자라면서 혼자 놀거나 같이 어울리는 방법밖에 없지만 3남매나 3형제의 경우 담합이 생긴다. 곧 둘이 짝을 지어 한 명을 따돌린다. 흥미로운 건 그 과정에서 왕따 당하는 아이는 사회성을 키운다. 그래야 살아남으니까. 아첨을 하든 붙임성 있게 굴든 사회에 살아가면서 필요한 기술을 자연스럽게 습득한다. 


문제는 한명의 자녀를 두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성인이 되어도 사회성이 떨어지는 어른이 늘어난다. 연세대학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학년 전원 기숙 캠퍼스를 운영하고 있다. 입학하면 무조건 송도에서 함께 일 년을 지내야 한다. 자연스레 형제자매애를 느끼게 하려는 배려다. 게다가 선배들의 압박이 없어 자율적인 의사결정도 가능하다. 또 이렇게 맺어진 인연은 남은 평생 끈끈하게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마치 노인이 되어도 훈련소 동기를 찾듯이. 더욱 재미있는 건 학생들도 좋아하지만 부모들의 반응이 폭발적이라는 사실, 외동아이들의 외로움도 달래고 사회에서 필요한 네트워크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리라.


사실 사회학은 본질적인 학문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스킬이다. 뭐라 딱 꼬집어 말하기 어렵지만 배워두면 편안한. 눈치가 대표적인 예이다. 경제학에서 눈치는 수치로 밝힐 수 없기에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지만 사회학에서는 암묵적 합의라는 개념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곧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지켜야 하는 묵시적 규율 같은.


사회학의 다양한 개념을 배워두면 쓸데없이 흥분하는 일이 줄어든다. 왜 저런 일이 일어나는지를 개인적, 구조적, 기능적으로 따져보며 필연성과 불가피성의 세상에 도달하게 된다. 2021년 1월 13일의 핫이슈는 이휘재 문정원 부부 집의 층간소음이었다. 구체적으로 아랫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 문정원씨의 인스타그램에 하소연 글을 남겼다. 문정원씨는 답글을 달았는데 그게 사단이 났다. 사과인 듯 사과 아닌 묘한 뉘앙스였다. 죄송하지만 님도 너무 예민한 거 아님. 당장 인터넷에 불이 붙었다. 과거 이휘재의 무매너가 다시 화제가 오르고 아이들과 집에서 운동화까지 신고 야구를 하는 사진이 도마에 올랐다. 사태는 쉽사리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자,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남의 일이라고 무시할 건가? 그럴 줄 알았다며 혀를 찰 건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댓글을 남겨 지지 혹은 비난을 할 것인가? 사회학자는 달리 행동한다.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났고 삽시간에 퍼져 당사자의 지위나 더 나아가 일자리까지 위협받게 되는 현상에 주목한다. 잘잘못을 따지는 게 아니라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일이 기사에 오르고 사건이 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을 그저 과시형 일기장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제동장치 없는 무한궤도임을. 당사자끼리 풀 문제가 한낱 호기심 도구 때문에 일파만파 퍼지게 되었다.


덧붙이는 말


이루다야말로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사조다. 인공지능이 딥러닝을 거쳐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는 설정이 공상과학이 아닌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 기회가 되면 제대로 다루어 볼 생각이다. 물론 이 때도 사회학의 키워드는 예리한 칼이 된다.  


사진 출처 : 문정원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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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부자집


“계단을 올라갔다. 폭이 넓은 나무 난간은 모서리를 둥그스름하게 다듬어 손에 닿은 감촉이 매끈매끈한 게 기분 좋았다. 계단참에서 이웃집의 커다란 단풍나무가 보였다. 그곳에서 꺾어져 이층으로 올라가자 조그마한 방이 나왔다.”_마쓰이에 마사시,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지난 주말 친척 집에 다녀왔다. 집안 어른의 생신이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모두 모이지는 못했고 직계만 5인 이하에 맞추어 방문했다. 방역이 완비된 바깥에서 식사를 하고 집에 다시 돌아왔다. 2층짜리 단독주택. 어느덧 요즘은 보기 드문 집이 되어버렸다. 어르신은 거동이 불편해 대신 집안을 둘러보며 정리정돈을 해드렸다. 세라도 놓아 생활비에 보태려고 2층은 따로 분리해놓았다. 최근에 지병이 악화되어 빈 채로 있다. 일단 발코니에 쌓인 눈부터 치우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보았다. 언제나 느끼지만 이층의 햇살만큼은 자부하는 집이다. 남향이고 주변에 거치적거리는 건물이 없는 덕이다. 방 2개, 가실 하나, 부엌은 옛날 집답게 따로 문이 달려있는 북향, 그리고 그 옆에 화장실. 집장사들이 지은 그저 그런 흔한 집이다. 그럼에도 왠지 정감이 가고 벌써 아쉽다. 길 건너편이 재개발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언제 이 집도 철거위기에 닥칠지 모를 일이다. 오래 사신 처지에서야 어서 빨리 새 집에 살고 싶은 욕구가 더 크겠지만. 


돌아와 마쓰이게 마사시의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을 다시 읽는다. 고급 맨션에 살던 중년의 편집장은 이혼을 계기로 지은 지 50여 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집에 들어가 살게 된다. 이것저것 귀찮은 일투성이지만 스스로도 안다. 이렇게 땀 흘려 손보고 살피는 것이야말로 지금 자신에게 큰 축복임을. 


*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인용하시려면 허락을 받고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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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오로 연주하는 드뷔시의 "달빛" 이 영화에 유일하게 숨통을 트여준다.


꿀벌과 천둥


한 나라에 대한 인상을 특정짓는 건 매우 위험하다. 여러 다양한 인간들이 어울려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가주의로 상징되는 이미지는 무시할 수 없다. 오랜 세월 쌓여온 무게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일본은 우리 이웃이면서도 대면대면하다. 침략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서로 어색한 관계가 유지되어 오다 최근 들어 극적인 반전을 겪고 있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오르며 일본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특히 케이 팝으로 표현되는 대중문화의 격차는 갈수록 더욱 벌어지고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나처럼 영화 <러브레터>를 보며 일본특유의 정적이면서도 서정적인 감성을 동경까지는 아니지만 약간의 선망을 가졌던 사람에게는 충격이다. 더욱 놀라운 건 나 또한 인정하게 되었다는 사실. <꿀벌과 천둥>은 이러한 변화에 쐐기를 박았다. 무대는 일본 지방의 한 콩쿠르. 여러 지원자가 모이지만 핵심인물은 네 명이다. 유망주이면서 에이스인 마사루, 한 때 천재소녀로 불렸지만 오랫동안 잊혀졌던 아야, 천재라는 말이 딱 어울리지만 왠지 정서가 불안한 진, 직장에 다니며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우는 아카시. 이 넷은 각자의 고민을 안고 대회에 임한다. 이때부터 하품이 나기 시작한다. 그들의 걱정에 전혀 공감이 되지 않고 겉돈다. 마치 실험영화에서나 볼법한 치기어린 장면들이 이어지다 느닷없는 해피엔딩을 맞는다. 개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뻔 한 연기에 신물이 난다. 고요히 가라앉는 일본이라는 배는 끝도 없이 추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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