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당당 질리 홉킨스 일공일삼 40
캐서린 패터슨 지음, 이다희 옮김 / 비룡소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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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책장에 쭉 꽂혀 있는 책들 가운데 마음이 내키는 것들을 골라 이리저리 뒤적이다 ‘그래, 오늘은 이걸로’라고 결정하고 간단하게 토스트와 커피로 끼니를 때우고 마란츠 오디오에 어제 골라놓았던 시디를 넣고 두세 시간 아무 생각 없이 책만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비록 상상이었지만 이런 상황에 있을 때 권할만한 책은 역시 아동서적이다. 일단 짧고 간결하다. 원서와 함께 읽어도 부담이 덜하다. 또한 교훈적이다. 나이가 들면 잔인하고 끔찍한 이야기보다 우여곡절은 있지만 끝은 해피한 게 당긴다. <위풍당당 질리 홉킨스>는 이 조건에 딱 맞다. 엄마가 있지만 위탁모에게 맡겨진 질리. 이 집 저 집을 옮겨 다니며 적응과 반항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사실 눈물 나는 이야기지만 캐서린은 두 눈 부릅뜨고 가감 없이 현실을 도려낸다. 이 소설의 필살기는 살아서 펄쩍펄쩍 뛰는 대사다. 어쩌면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하는지.


질리처럼 불행한 처지는 아니라도 어린 시절이 꼭 행복으로 치장되어 있는 건 아니다. 아픔과 괴로움, 그리고 씁쓸함이 누구에게나 배어 있다. 그럼에도 그 때를 즐거움으로 떠올리는 까닭은 언제나 계속될 것 같던 그 시대로 우리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너무도 진부해서 새로움이란 단 하나도 없을 것 같았던 과거가 못내 그리운 건 왜 일까?


옛날 옛적, 풀밭과 숲과 시내와

대지와 온갖 진부한 광경이

천상의 빛처럼 그리고 꿈처럼 성대하고 생생하게 치장한 것인 듯

여겨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옛날과 같지 않아서

밤이든 낮이든

어디로 고개를 돌려도


옛날에 보았던 것들을 더 이상 볼 수 없습니다.


_윌리엄 워즈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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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전달자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0
로이스 로리 지음,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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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은 결코 끝나지 않는단다


“조너스는 친구들이 아무 활력도 없는 생활에 아주 만족한다는 사실에 종종 이해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리고 친구들을 전혀 변화시킬 수 없는 자신에게 무척이나 화가 났다.”



좋은 글의 기준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정확한 문장, 풍부한 표현, 올바른 전달.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에는 한계가 있다. 아쉽게도 정답은 없다. 그냥 읽는 순간 바로 알 수 있다. 로이스 로리의 <기억 전달자>가 그렇다. 현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미래. 사회는 철저하게 계급으로 구분되어 있다. 열두 살이 되는 순간 남은 평생의 직업이 결정된다. 누군가는 엔지니어가 되고, 의사가 되고, 학자가 되고, 연예인이 되고, 산모가 된다. 그렇다. 아이를 낳는 전문 직업이 따로 있다. 일인당 딱 세 명씩. 이후에는 육체노동자로 살아가야 한다. 어째, 점점 으스스해진다. 그런데 웬일인지 사람들은 불만이 없다. 오히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걸 소명으로 받아들인다. 그 중에는 전지자도 있다. 단 한 명이다. 누군가의 운명을 결정해주는. 다른 일과 달리 이 직업은 몇 십 년 동안 공석일 때도 있다. 후임자가 마땅치 않거나 도중 탈락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조너스는 행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두려우면서도 내심 자랑스러운 기분으로 전임자로부터 기억을 전달받게 되는데.


이번 한 주 꽤 힘이 들었다. 우선 휴대전화기가 고장이 났다. 작년 이 맘때도 같은 일을 겪어 어찌어찌 새로 사서 써왔는데 그만. 혹시 하는 마음에 서비스센터에 가봤지만 예상대로 사망. 새 폰을 사야 하나 2G 보상을 기다릴까 하면서 이리저리 알아보느라 지쳤다. 더 힘든 일은 따로 있었다. 윈도우 10이 지멋대로 자동으로 업데이트되면서 지금까지 써왔던 글이나 기능들이 뒤죽박죽되어 버렸다. 그 와중에 이전 버전으로 돌아가려고 매일 두세 시간씩 노트북에 매달려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마디로 힘은 힘대로 빼고 성과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 <기버>를 읽게 되었다. 당초 원서를 먼저 보았는데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영어가 힘든 건 아닌데 파악하기가 알쏭달쏭했다. 번역 책을 보자 바로 이해가 되었다. 주인공은 아이였지만 내용은 철학적이었기 때문이다. 희한하게 페이지를 넘기면서 점점 심신이 안정되어 갔다. 딱히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몰입도가 높았던 것 같다. 곧 적어도 책을 읽는 동안은 일체의 잡념이 떠오르지 않았다. 빼어난 책이란 바로 이런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미루어왔던 휴대전화도 알아보고 무려 6개월여 만에 이발도 하고 동네 놀이터 그늘 등 없는 벤치에 앉아 나머지 절반을 마저 보았다. 오랜만에 행복한 토요일 저녁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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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 - [초특가판]
빈센트 미넬리 감독, 주디 갈란드 외 출연 / 유니원미디어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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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기준으로 1944년을 떠올린다면 아마도 까마득한 옛날이 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해에 태어난 사람은 2020년 현재 만 76세다. 그렇다면 그 때 만들어진 영화는 어떨까? <세인트루이스에서 만나요>는 주디 갈란드로 유명해진 영화다. 그의 목소리가 전부다, 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네 자매의 가족이 겪는 소소하지만 행복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사실 별 내용은 없다. 오로지 주디만 돋보인다. 그가 노래를 부를 때마다 주변은 삽시간에 정적에 쌓이는 기분이 들 정도다. 촬영장에서 성적 학대를 받고 노예처럼 끌려나와 연기를 했다는 속사정을 알고나면 왠지 처연해지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그의 목소리는 남아 여전히 불멸의 뮤지컬 영화로 살아남았다.

 

덧붙이는 말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의 배경은 1903년이다. 1940년대 만들어진 영화니 불과(?) 30년 전의이갸기를 소재로 삼아 관객을 끌어모았다. 놀라운 건 그 당시에도 수도물이 나오고 집안에 난방시설이 있다. 물론 부잣집이지만. 만약 전쟁통에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야말로 꿈의 공장이 따로없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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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e : The Music, Volume 1
여러 아티스트 (Various Artists) 노래 / 소니뮤직(SonyMusic)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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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90년대가 추억의 시대가 되었다. 영원할 것 같은 시간은 절대 없는 셈이다. 드라마 <글리>는 팝리메이크의 시작을 알렸다. 그 시절의 흐름을 반영하는 대중음악이 어느 순간 혼돈에 빠지자 귀에 쏙쏙 박히는 멜로디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글리는 이 틈을 순식간에 파고들었다. 어차피 팝은 차고 넘치고 어디를 쑤셔도 마르지 않은 샘과 같았기 때문이다. 줄거리는 상관없다. 적당한 시기와 질투, 왕관을 차지하기 위한 여정을 마치 스포츠 경기처럼 다루었다. 어찌보면 식상할 포멧을 깨부순건 노래다. 발군의 실력을 가진 가수배우들이 저마다의 성량을 뽐낸다. 이 음반은 글리의 위대한 여정이 출발했음을 알려준다. 돈 스톱 빌리빙을 듣는 순간 모두 직감했을 것이다. 물론 이후 나온 넘버들 또한 비슷비슷한 스타일이라 질려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단 하나의 글리 음반을 고르라면 단연코 볼륨 넘버원이다. 여기에 글리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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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st Side Story - O.S.T.
레너드 번스타인 (Leonard Bernstein) 작곡 / 소니뮤직(SonyMusic)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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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이면 정영일 선생은 텔레비전에 나와 연신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쓸어 올리며 이 영화는 절대 놓쳐서 안됩니다. 라며 반복해서 말하곤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꼭 봐야할 것 같은 절박감이 느껴졌다.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도 그 중 하나였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는 극장에서 여섯 번 이상 보았다고 고백한 것 같다. 평소 근엄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뮤지컬 영화에 그토록 열광했다니. 그러나 직접 영화를 보고 나면 그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여섯 번이 뭐냐? 한 스무번은 봐야지?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나 또한 이 영화에 탐닉하던 때가 있었다. 비디오로 나왔을 때 구입했고 디브이도도 샀고 오에스티니는 종류별로 구비했다. 이 음반은 브로드웨이 라인업이다. 곧 무대용 버전이다. 당연히 영화에서보다는 능력이 높고 게다가 번스타인의 연주곡까지 곁들어져 있어 소장차지도 크다. 그러나 영화의 아우라가 워낙 커서인지 무대용은 왠지 몰입이 어렵다. 특히 영화에서 마리아 역의 나탈리 우드가 워낙 빼어나서 인지 쉽게 감정전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표지는 끝내준다. 사실 이것때문에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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