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서 잘못 쓰는 우리말을 지적하는 프로그램을 보면, 이 말은 사투리이니 쓰지 말고, 이건 잘못된 발음이니 저렇게 발음해야 하고... 하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데, 한번 살펴볼까?
갈매기살은 표준말이다. “돼지의 가로막 부위에 있는 살”을 뜻한다. 처음 이 말을 들으면 갈매기 고기인 줄 알기 십상이다. 원래는 횡경막과 간 사이를 막고 있는 살이라 하여 “간막이살” “가로막살”이라 했는데, 그 발음이 변해 갈매기살이 되었다 한다. 내 짐작으로는,
간막이살 → 간매기살 → 갈매기살
아니면
가로막살 → 가로막이살 → 갈막이살 → 갈매기살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갈매기살도 원래 “간막이살”이나 “가로막살”의 잘못된 발음 아니었겠는가? 잘못된 발음이 돌고 돌아 표준말로 된 것이다.
그리고 외국어의 일본식 발음이라 하여 잘못되었다고 하는 말도 있다. 얼마 전 국립국어원과 동아일보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 사이트(http://www.malteo.net/)에서, 영어 ‘플루크(fluke)’에서 유래한 フロック, 곧 후루꾸, 후로꾸, 뽀로꾸, 뽀록 등을 대체할 우리말을 공모한 적이 있다. 그런데 다른 경우는 그렇다 해도, “뽀록났다” 정도는 이미 우리말에 포섭되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사실 따지고 보면 “고구마”도 일본말에서 오지 않았나 말이다.
식민지 경험 탓에, 일본어는 풍요롭고도 아름다운 우리말을 많이 해쳤다. 그래서 뜻이 또렷이 전달되면서 발음도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되살리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세 이전 한국어에 중국어가 큰 영향을 미쳤듯이(“김치”도 침채沈菜라는 중국 한자어에서 온 말이다), 현대 한국어에 일본어가 큰 영향을 미친 것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이를테면 말끝에 다, 나, 까가 붙는 것, 그것도 일본어의 영향이다. 국어 시간에 배운 옛 글 중에 -다, -나, -까로 끝나는 말이 어디 있었는가? (혹시 제가 잘못 아는 거라면 지적해주세요.) -다, -나, -까로 끝나는 말투는 일제 강점기 현대 소설에 처음 등장한다. 하지만 오늘날 -다, -나, -까로 끝나지 않는 문장을 생각할 수 있을까? (간혹 “-오”나 “-요”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말은 외부의 영향을 받아, 또 세대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또 때로는 외래어의 발음이 원어에 충실하지 않다고 해서 틀렸다고도 한다. 사실 한 언어의 발음 체계는 다른 언어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원어에 가깝게 표기한다 해도 정확히 재현할 수는 없다. radio를 ‘뢰이디오우’라 쓰고 그대로 읽는다 해도, 억양과 혀놀림을 영어식으로 하지 않으면 우리말을 모르는 미국이나 영국 사람은 우리가 radio를 말하는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말을 쓰는 사람들끼리 일일이 뢰이디오우라고 쓰고 말하려면 얼마나 번거롭겠는가? 그래서 radio는 영어이고, 라디오는 한국말이다. 외래어는 외국 사람과 소통할 때 쓰는 말이 아니라, 한국말을 쓰는 사람들끼리 이야기할 때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Munchen(뮌헨)을 영어에서는 자기네 식대로 Munich(뮤닉)이라고 읽고 쓰듯이, ramp가 “남포”가 되고 tobacco가 “담배”가 되고 no touch가 “노다지”로 되었듯이, 나는 can을 말할 때 캔보다는 “깡통”이, gang을 말할 때 갱보다는 “깡패”가, partizan을 말할 때 파르티잔보다는 “빨치산”이라고 하는 편이 더 좋다. 외래어는 같은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들이 듣고 말하기 편하게, 해당 언어의 발음체계에 맞게 쓰면 그만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래서 carol을 왜 꼭 “캐럴”이라 써야 하는지(“캐롤”이 더 친숙한데), chocolate을 꼭 “초콜릿”이라고 해야 하는지(“초코렛”이 더 말하기 쉬운데)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말인데, 방송에서 “‘바래요’라 하지 말고 ‘바라요’라고 하세요.” “‘개발새발’이라고 하지 말고 ‘괴발개발’이라고 하세요.” 같은 소리나 하지 말고, 코미디나 쇼 프로그램에서 마구 쏟아내는, 한국말 같지 않은 말이나 잡아주면 좋겠다. 심지어 뉴스에서 아나운서들이 버젓이 말하는 “회의를 가지기로 했습니다.” 같은 말. 회의를 어떻게 가지냐 말이다. 회의는 하거나 열거나 개최하거나 하는 것이지,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have a meeting을 번역해서 그렇게 쓰는 모양인데, 그냥 모여서 의논하기로 했다고 하면 뜻도 분명하고 더 알아듣기도 쉬운데 왜 굳이 외국어를 번역해서 말할까? 그리고 이제는 보통 사람들도 다 쓰게 된 말, “업됐다.” 이제는 널리 쓰여 곧 국어사전에도 올라갈지 모르지만, 나는 처음 방송에서 연예인들이 그렇게 말하는 걸 듣고는 참 어색했다. 기분이 좋아졌어요, 흥분했어요, 들떴어요, 날아갈 것 같아요, 등등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을 up, 이 한마디로 끝내버린다. 글자로 쓸 때야 쉽지만, 말로 하기에는 발음도 별로 편치 않은데(업뙈따, 업뙈서, 업뙈써요 등등), 왜 굳이 저런 말을 쓸까? 저 순간을 표현할 수 있는 한국말 표현이 없어서?
글이 길어졌네. -.-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언어가 풍부하고 다양해지는 건 좋아 좋아, 단순화 표본화는 싫어 싫어. (그렇다고 맞춤법이나 외래어표기법이 필요없다 생각하는 건 아니다. 사람마다 발음이 조금씩 다르듯이 글도 다 다르게 쓴다면 글 읽는 사람끼리 소통하기 어려울 테니. 단지 사람마다 지방마다 다를 수 있는 사소한 발음 차이에 집착하지 말고, 그보다는 우리말에 대한 무관심 때문에 나타나는 더 큰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달라 이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