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 컷 [Short Cuts]
1996년일 것이다.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것은. 미국 소설가인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들을 엮어 영화로 만들었다는데, 그때만 해도 영화보다 원작을 먼저 보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집사재에서 나온 카버의 소설 전집 세 권,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 [숏 컷] [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해줘]를 덜컥 사고 말았다. 그 전해 여름에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푹 빠졌다 나왔기 때문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해설을 했다는 데 혹했다. 하지만 나의 20대는 카버의 소설을 이해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는지, 깊이 공감할 수 없어서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와 [숏 컷]만 읽고는 일단 접었다. 그사이에 영화는 상영이 끝났고, 나는 언젠가 비디오로 볼 생각만 했다.
그러다 어젯밤 10시 케이블의 MBC 무비 채널에서 영화 <숏 컷>을 하리란 걸 알았다. 무료 채널은 시간을 안 지키는 게 문제다. 10시 38분이나 되어서야 시작해, 자정 넘어 1시 47분에 끝났다. 중간에 두 번 광고가 나온 건 당연하고. 마지막 크레딧 화면은 과감히 잘라버리고. 무료 채널이니 그러려니 한다.
카버의 단편소설들, 무엇 무엇이 있었는지 다 까먹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조금씩 생각이 났다. 그리고 지난번에 이안님 리뷰를 읽었을 때처럼, 지금 카버의 책을 읽으면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연관이 없는 여러 단편을 굴비처럼 참 잘 엮어놓았구나 싶었는데, 마지막에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카버의 소설에 대체로 깊이 공감할 수 없었다고 했지만, 마음을 크게 울린 작품이 몇 개는 되었다. 그중 가장 좋았던 빵집 이야기(책에서 제목을 찾아보니 “사소하지만 도움이 되는 일”이다)가 흐지부지 처리된 것이다. 속이 다 상했다. 그리고 남의 집을 봐주는 이야기(제목이 “이웃사람”)도 그렇고. 역시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 그렇게 된다.
출연진이 호화 찬란한데, 지금 보니 제니퍼 제이슨 리도 나온다.
감독 각본 로버트 앨트먼 Robert Altman | 원작 레이먼드 카버 Raymond Carver
상영시간 187분 | 제작연도 199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