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고 유익한 이 책에서 미심쩍은 점들.

87쪽
“엔간하다”를 “어여간하다”의 준말이라 했는데, 엔간하다는 “어연간하다”의 준말이다. 아마 오타인 듯.

109쪽
“하룻강아지”가 “하릅강아지”에서 온 말임을 설명하면서, 하릅강아지는 “한 살짜리 강아지, 곧 태어난 지 1년 된 강아지”라 했다. 그런데 한 살짜리 강아지와 태어난 지 1년 된 강아지는 다르다. 태어난 지 1년 된 강아지는 이제 한 돌이 지날 무렵, 막 두 살이 되려고 하는 강아지다. 한 살짜리 강아지는 “태어난 지 채 1년이 안 된 강아지”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사람의 경우에도 돌을 맞은 아기와 채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는 명백히 다르지 않으냔 말이다.

158쪽
고려의 어원을 ‘산고수려’라 한 데에 대해서는 http://www.aladin.co.kr/blog/mypaper/653237에 썼다.

181쪽
단말마(斷末魔)를 설명하면서 본뜻은 “혈(말마 : 산스크리트 marman)을 끊음, 곧 죽음이나 죽을 때”를 의미하고, 바뀐 뜻은 “숨이 끊어질 때 마지막으로 지르는 비명을 말한다.”고 했는데, 요즘에도 ‘단말마의 비명’ 하는 식으로 많이 쓰일 뿐이지 단말마란 말 자체가 “숨이 끊어질 때 지르는 비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202쪽
백병전을 설명하면서 “혼자 몸으로 자기 무기만을 가지고 싸우는 육박전”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설명하면 혼자만 싸우거나, 1 대 다수로 싸우는 것이란 느낌이 든다. 그러나 백병전은 “여럿이 1 대 1로 붙는 싸움”을 뜻한다. 곧 한 사람 한 사람이 몸 부딪히며 1 대 1로 붙어 싸우기는 하지만 전체로 봐서는 두 패거리가 치고받고 싸우는 경우다.

211쪽
소경을 가리키는 “봉사”를 설명하면서 한자로 奉事라고 썼는데, 소경을 의미하는 봉사는 한자어가 아니다.

248쪽
장안을 설명하면서 “조선시대 중국을 섬기는 모화사상에 물든 양반들”이 중국 한나라의 수도 장안이란 말을 서울을 가리키는 말로 들여왔다고 했는데, 정말 조선시대부터 쓰기 시작했을까? 장안이 마지막으로 중국 왕조의 수도가 된 건 당나라 때인데, 당나라는 조선이 세워지기도 훨씬 전인 907년에 망했다.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건 삼국 시대부터이고, 907년이면 통일신라 때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와서야 “장안”이란 말을 들여왔을까?

258쪽
아우트헤벤(aufheben) → 아우프헤벤(aufheben)

259쪽
“지향”의 한자를 指向이라고 썼는데, 여기서 설명하는 의미(목적, 목표를 가리키는 말)에 맞는 한자는 志向이 옳다. 指向은 작정하거나 지정한 방향으로 나아감을 뜻한다.

261-262쪽
차비(差備)에 대해 설명했는데, 차비란 한자어는 “채비”로 변형되었다. 곧 채비의 원말로서 차비를 설명해야 하는데, 이 책에서는 ‘채비’란 말을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264-265쪽
청서를 설명하면서, 영국에서 정부의 정책안을 기록한 책에 표지를 청색으로 했기 때문에 나온 말이라고 했다. 그런데 203쪽에서는 백서를 설명하면서 “17세기 영국에서는 정부의 보고서 표지에는 흰 표지를 붙이고, 의회의 보고서에는 푸른 표지를 붙였다.”고 했다. 의회의 보고서에 붙이는 ‘푸른 표지’는 청색이 아니고 녹색인가? 아니면 다른 시대 이야기인가?

320쪽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의 유래를 중국 역사책인 [오대사(五代史)] ‘왕언장전’에 나오는 고사에서 찾았다. 전쟁터에서 포로가 된 왕언장이 “표범은 죽어서 아름다운 가죽을 남기는데 하물며 사람이 이름을 가벼이 여겨서야 쓰겠는가. 나는 떳떳하고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겠노라.”라고 말한 것이 일본으로 건너가 표범 대신 호랑이로 바뀐 듯하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왕언장에게 귀순을 권한 적국 임금을 “당나라 황제”라고 했다. ‘당나라’라고 하면 고구려 백제 신라와 싸운 그 당나라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니 오대사 속의 당나라는 ‘후당’이라고 써야 한다.

352쪽
“쌍심지를 켜다”란 말을 설명하면서 “쌍심지는 한 등잔에 있는 두 개의 심지를 말한다. 심지가 두 개나 있는 등잔이니 보통 등잔보다 배는 밝고 뜨겁다.”는 데서 이 말이 왔다고 했다. 글쎄, 내 생각에는 사람 두 눈이 빛날 때, 그 두 눈동자를 심지 두 개로 비유해서 표현한 것 같은데.

353쪽
“쑥밭이 되다”란 말에 대해 설명하면서, “쑥은 키가 크기 때문에 다른 잡초보다 더 무성하게 자란다.”고 했다. 쑥이 키가 크다고? 사전에서 찾아보니 쑥은 뿌리줄기가 옆으로 기면서 자라며, 높이 60~120cm에 이른단다. 그러니까 1미터가 넘게 자라기는 자란다는 말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쑥이 다른 잡초에 비해 크다고?

359쪽
“어안이 벙벙하다”를 설명하면서 어안이란 “정신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했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어안은 “어이없어 말을 못 하고 있는 혀 안”이다.

373쪽
천애고아를 설명하면서 ‘천애’는 ‘천애지각(天涯之角)’의 준말이라고 했는데, 천애지각의 한자 표기는 天涯之角이 아니라 天涯地角이다.

393쪽
부/분(分)을 설명하면서 ‘푼’을 “어떤 것을 10으로 나누었을 때 그것의 10분의 1을 가리키는 말”이라 했다. 그게 10분의 1이란 말인지 100분의 1이란 말인지 표현이 불분명하다. 푼은 1할의 10분의 1, 곧 전체 수량의 100분의 1이다. (단, 길이와 무게의 단위로 쓰였을 때는 한 치의 10분의 1, 한 돈의 10분의 1을 가리킨다고 한다.)

399쪽
“애매모호하다”라는 말에 대해서, 애매(曖昧)는 일본어로서 우리말 모호(模糊)와 같은 뜻이라고 했다. 그러니 “애매하다”, “애매모호하다”는 말은 쓰지 말고 “모호하다”라고 쓰자고 한다. 흔히 이렇게들 알고 있는데, 내가 대학국어 시간에 배웠을 때도 그렇고, 또 표준국어대사전을 보고 생각해봐도, 이건 틀린 설명이다. 애매와 모호는 같은 말이 아니다. 애매하다는 것은 이를테면 A인지 B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잘 구별이 안 된다는 뜻이다. 모호하다는 말은 흐릿하여 파악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애매한 것이나 모호한 것이나 그 정체가 불분명한 점은 같지만, 정확히 같은 뜻은 아니다. 예를 들면,

이게 동그라미를 비뚤게 그린 건지 세모를 두루뭉수리하게 그린 건지 애매하다.
그는 워낙 모호하게 말해서, 그가 정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두 말이 같은 뜻으로 쓰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그의 대답은 긍정인지 부정인지 애매했다.
그는 대답을 모호하게 얼버무렸다.


400쪽
오재미를 놀이주머니를 뜻하는 일본말이라고 했는데, 표준어는 오자미로 우리말이다. 가르쳐준 치카님께 감사!

420쪽
매머드를 “홍적기 시대”에 살던 코끼리과 화석 동물이라고 했는데, 홍적기 시대란 무슨 말인가? 정확히 “홍적세”라고 써야 옳다. 홍적세는 지질학적인 시대 구분으로, ‘-기’는 ‘-세’보다 큰 단위다. 이를테면 신생대의 제4기 중 앞 시대를 홍적세, 그 뒤를 충적세라고 한다.

431쪽
실루엣을 “하나의 색조만을 사용한 도안이나 물체의 윤곽이 뚜렷한 그림자를 가리킨다.”고 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설명이 훨씬 이해하기 쉽다.

실루엣
(&프silhouette)
「명」「1」『미』윤곽의 안을 검게 칠한 사람의 얼굴 그림. 18세기 말에, 프랑스의 재무상 실루엣이 극단적인 절약을 부르짖어 초상화도 검은색만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한 데서 유래한다. 「2」『수3』옷의 전체적인 외형. ¶우아한 실루엣의 드레스. §「3」『연』그림자 그림만으로 표현하는 영화 장면. '음영'으로 순화. ¶실루엣의 기법을 잘 살린 영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437쪽
유럽(Europe)이란 낱말이 아시리아어의 ‘엘레브’에서 유래했으며 그 말은 ‘해지는 곳, 어두운 곳’이란 뜻이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 해지는 곳, 어두운 곳이란 뜻에서 생겨난 말은 Occident이고, 유럽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우로파와 관계가 있다. 정확히 어느 쪽이 옳은지 모르겠다.

442쪽
캉캉(cancan)을 “프랑스의 속어로 ‘욕설’이란 뜻이다.”라고 했는데, 내가 가진 민중 불한사전에 따르면 cancan은 오리 울음소리를 흉내낸 의성어이기도 하고, 또 “험담, 뒷공론”을 뜻하기도 한다. 욕설과 험담은 다르지 않은가.

460쪽
“오라질”이란 말을 설명하면서 “‘질’은 ‘지다’의 원형으로 ‘묶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라고 했다. ‘질’은 ‘지다’의 원형이란 게 무슨 말인지? 게다가 '지다'가 '묶다'는 뜻이라고? 그럼 오라를 진다는 말이 오라를 '묶는다'는 뜻이 되게? 그냥 오라에 묶이는 것을 “오라를 진다”고 할 뿐이다.

465쪽
“화냥년”에 대해서는 http://www.aladin.co.kr/blog/mypaper/792361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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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5-12-30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감탄하면서 읽었습니다...
제가 어떤게 '정확한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없어도 숨은아이님의 한글에 대한 애정은 대단하게 느껴지네용...

瑚璉 2005-12-30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지적입니다.

하늘바람 2005-12-31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세요. 숨은 아이님은 숨어서 다 관찰하시나봐요^^ 멋지십니다.

숨은아이 2005-12-31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하하, 칭찬 고맙습니다. 한글에 대한 애정이라기보다는 그냥 모르던 걸 아는 게 재미있어서 그러지요.
호정무진님/날카롭게 지적해주시는 호정무진님께 인정 받으니 기분 좋군요. ^^
바람구두님/어머나, 아니어요. 글 쓰고 책 내는 분이 있으니까 관찰도 할 수 있는 거지요. 전 누군가의 노고의 결실인 책을 읽고 의견을 낼 뿐인걸요. 이 책에서 많이 배웠어요.
하늘바람님/이렇게 열심히 조사해 책을 낸 분이 더 대단하지요. 제가 모르는 것, 잘못 알고 있는 것도 많구요. ^^

superfrog 2005-12-31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 책 잘 도착했습니다..^^
벌써 4권까지 봤어요. 몰지각한 누군가가 난도질을 했지만 꿋꿋하게 보고 있습니다..^^ 엽서도 잘 받았구요, 옆지기님과 함께 숨은님도 행복하고 건강한 한해 되시길 바랄게요.*^^*

숨은아이 2006-01-01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붕어님/해 안에 들어가서 다행이에요. ^^ 원래 대여점 책이었던 거라 그런 모양이에요. 우리 다 같이 행복하고 건강한 한 해~!
새벽별님/벌써 읽고 계시는군요? ^^
댓글저장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 우리말 속뜻 사전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박숙희 편저 / 책이있는마을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과 함께 하루에 한 장씩, 어느 날은 건너뛰기도 하면서, 1년을 다 채워 읽었다. 참고도서와 찾아보기를 빼고 466쪽이나 되는 이 책을 읽다 보면 때로는 설명이 모자라기도 하고, 미심쩍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명백히 틀린 부분도 있지만, 토박이말, 한자어, 일본어나 다른 외국어에서 온 말, 고사성어와 관용구, 은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 걸쳐 말의 뿌리를 찾아내고 한 권으로 묶어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사근사근하게 말하는 모양을 가리키는 “오사바사하다”, 어금니니 앞니니 하고 작은 것까지 시시콜콜 따지는 모양을 가리키는 “옴니암니”, 사람의 뒤통수나 앞이마에 제비꼬리처럼 뾰족이 난 머리털을 뜻하는 “제비초리” 같은 말은 이 책을 통해 처음 배웠다. 어원사전뿐 아니라 어휘사전 노릇도 해준 셈이다. 앞으로 시간을 두고, 이 책의 자매도서라 할 수 있는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 한자서 사전]과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나이 사전]도 읽을 것이다.

그동안 이 책에서 특히 재미있거나 기억하고 싶은 부분은 따로 페이퍼로 썼는데, 하나 쓰지 않은 것이 있어 여기 적는다. “쾌지나 칭칭 나네”라는 민요의 후렴구가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그 말은 “쾌재라, (가등)청정 (쫓겨)나네”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임진왜란이 끝나 왜장 가등청정(가토 기요마사)이 쫓겨나는 것을 보고, 오랜 전쟁에 시달린 백성들은 기뻐서 춤추며 노래했을 것이다. 신나는 후렴구지만, 말이 생긴 속내가 참 안쓰럽구나.

(하지만 책값은... 1만 8000원 정도만 해줘도 고마울 텐데. -.- 하긴 알라딘 판매가는 20% 할인해서 2만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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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5-12-30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깍두기 2005-12-30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휘력이 부족하야 이런 책이 정말 필요한데!
(뭐라도 쓰려고 하면 단어가 생각이 안나요ㅠ.ㅠ)
그동안 숨은아이님이 이 책에 대해 쓰신 페이퍼 잘 봤어요.
아마 책 낸 사람도 이렇게 꼼꼼히 읽어주는 사람이 있어 감동 먹었을 걸요^^

숨은아이 2005-12-31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쾌지나 칭칭 나네"의 어원, 재미있지요? ^^
깍두기님/저도 어휘가 많이 딸려요. 전에 알았던 말도 까먹고... 새로 배우는 말도 금세 잊고... ㅠ.ㅠ 페이퍼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댓글저장
 

허준영 경찰청장을 보는 다른 시각... | 할 말은 하고 살자
2005.12.30

 

허준영에 대해 많은 경찰들이 애정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국회를 통과하고 공포된 경찰공무원법은 하위간부까지는 자동승진이 가능하도록 하고 그 기간도 단축된 내용이며 이는 비슷한 직종의 공무원(소방직, 교정직 등)과 비교할 때 분명 경찰에게는 반길 만한 일이었을 테고, 다음으로 검찰과 맞짱뜨면서 수사권 조정 문제를 수면 위로 부상시키는 동안 경찰 수뇌부로 할 말 다하고 지낸 인물이 바로 허준영이기 때문이다. 

난 허준영이 농민 시위 때문에 그만두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 역시 그렇다고 말하지 않고 있으니, 다른 이유가 있음이다. 물론 그는 대통령의 통치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뭉뚱그려 말하지만, 난 위에서 말한 두 가지, 특히 뒤의 것이 결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인권 경찰도 바로 뒤의 것을 전면에 내세우기 위한 슬로건이었음이 분명하다. 예전에 비해 경찰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내가 느끼는 체감지수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특히 일반형사 사건이 아닌 특수한 형사 사건 예를 들어 노동형사 사건에 있어서 경찰의 무지함은 정말 한탄스러울 지경이다. 최근 나의 경험을 예로 들면, 퇴거불응죄는 적법하게 다른 사람의 주거에 들어갔더라도 퇴거를 요구받고는 퇴거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 죄가 구성된다는 것이 일반형사 사건이나 노동형사 사건에서 직장점거는 주거침입죄도 퇴거불응죄도 구성되지 않을 수 있음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즉 직장점거는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의 행사 방법 중 하나로서 그것이 적법하다면 당연히 형사책임은 없다 할 것인데(대법원과 학설의 통일된 견해이며 다른 견해를 찾아볼 수 없다), 경찰은 노동3권의 행사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따라서 무조건 퇴거 요구가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퇴거불응죄가 구성된다고 생각한다. 피고소인들의 의견을 들어보지도 않고 예단한다. 얼마나 울화통이 터지면 내가 아는 피고소인들이 경찰조서에다가 공정하고 제대로 된 수사를 바란다고 기재했을까 ? 왜 내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범죄자 취급하냐고 따졌을까 ?

난 그런 면에서 경찰이 인권 경찰 나아가 전문성 있는 경찰이라는 데 쉽게 수긍하지 못한다.

다음으로 난 또 다른 이유에서 허준영이 더 나은 경찰을 만드는 데 노력했다는 점이 있더라도 그리 높은 점수까지는 주고 싶지 않다.

바로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2004년)에 경찰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은 경찰의 자의적 결정과 해석이 가능한 조항이 너무나 많으며, 따라서 헌법이 보장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할 가능성도 많아진다. 경찰은 법을 집행하는 국가기구로서 행정 편의적인 사고에 빠질 우려가 매우 많은 집단이고 나아가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집단이기 때문에 그런 사고가 자칫 매우 불행한 사태를 불러울 가능성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경찰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한 통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항상 시위대와 충돌할 수 있는 경찰에게 자의적 해석이나 집행을 가능하도록 한 집시법은 문제가 있다. 그런데 경찰은 그런 집시법을 만드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따라서 난, 허준영이 퇴임사에서  "국가정책 추진로 인해 표출된 사회적 갈등을 경찰만이 길거리에서 온몸으로 막아내고 그 책임을 끝까지 짊어져야 하는 안타까운 관행이 이 시점에서 끝나기를 소원합니다"고 말하거나, "불법 폭력시위의 구습을 털어내야 한다"며 "돌멩이와 쇠파이프가 난무하고 시위대와 경찰의 피흘리는 모습이 하루속히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한다는 말에 그 말을 듣고 열렬히 박수를 보낸 경찰들과는 달리 별로 그러고 싶지는 않다.

그의 말대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데 경찰을 동원하고 게다가 국방의무를 핑계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시위 진압에 젊은이를 동원하고 나아가 강제노동을 강제하는 전투경찰이나 의무경찰 제도를 바꾸거나 사회적 갈등을 폭력으로 진압하는 것을 경찰의 업무로 규정한 것에 대해 반기를 들기는 커녕,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는데 왜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는가 하는 자조가 그리 곱게 보이지 않는다.

난 그래서 그가 그만둔 것으로 어떤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뒤를 이어 또 다른 그가 자리를 차지할 것이며, 헌법적 기본권과 인권에 대한 새로운 사고가 자리잡기까지는 지금과 같은 일은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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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주보며말하기 2005.12.30 15:11:08

    따라서 경찰에 국한되어서 보면 시위진압 전문 기동단이 해체되어야지 기동단장이 바뀐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마찬가지로 경찰청장이 물러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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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정숙하지 못한 여자를 가리키는 “화냥년”이란 말은
환향녀(還鄕女)에서 왔다고들 한다.
전에 내가 듣기로도 고려 시대 원나라에 공녀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여자를
환향녀라 했던 데서 나온 말이라고 했고,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에서는 고려 시대가 아니라
조선 시대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갔던 여자를 가리키던 말이라고 한다.
고등학교 때인가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만약 여성이 약하고 순결해야 하는 존재라면
남자들은 그 여성들을 지킬 의무가 있지 않은가,
지켜주지도 못했으면서 피해자인 여성에게 “정숙하지 못하다”고 손가락질하는가,
자신들이 지켜주지 못한 걸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나 분하게 여겼다.
그 뒤 생각이 바뀌어,
여성은 약하고 순결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도,
그래서 남성이 여성을 지킬 의무가 없더라도,
지배층의 권력다툼 때문에 전쟁이 나면
무엇보다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이 극에 달하므로,
성폭력 피해를 예방하거나 피해자를 보호하지는 못할망정
집단적으로 배척하는 것은 야비하기 그지없는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에서 21세기 세종계획의 일환으로 연구, 배포한
“2003 한민족 언어 정보화” CD에 국어 어휘의 역사 프로그램이 있어
이 말을 검색해 보았더니, 화냥년은 환향녀가 아니라 “화낭”에서 나온 말이란다.


품사  명사
현대 뜻풀이  화냥년
관련 한자어  화낭(花娘)

종합 설명
중국에서는 송대 <남촌철경록(南村綴耕錄)> 권14에 “창부왈화낭(娼婦曰花娘).”이라 하여 기녀를 ‘화낭(花娘)’이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예문은 <초각박안경기(初刻拍案驚奇)>와 <금병매(金甁梅)>에도 나오는데 예문은 다음과 같다.
“正寅又想道: ‘這花娘吃不得這一棍子.’” <初刻 31>
“這花娘遂羞訕滿面而回.” <金甁 12>

‘화낭(花娘)’이 창녀의 뜻이었음을 지봉(芝峰)은 이미 알고 있었고, 조수삼(趙秀三)의 <송남잡식(松南雜識)>에도 그러한 내용이 실려 있다. 우리나라에서 ‘화냥’이 처음 나타난 것은 조선시대 17세기 역학서 <박통사언해(朴通事諺解)>(1677)에서였다. 여기서는 중국어 ‘양한養漢’을 ‘화냥년’으로 풀었다. 이는 ‘화낭(花娘)’을 중국어 발음을 차용하여 ‘화냥(hu󰐀ni󰐁ng)’으로 읽은 것이다. 참고로 ‘양한’이란 여자가 남자와 눈이 맞아 혼외정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18세기 역학서에는 ‘관가인(慣嫁人)’ ‘양한적(養漢的)’ 등을 ‘화냥이’로 옮겼으며 19세기에는 우리말 한자어로 읽은 듯 ‘화낭’ 또는 ‘화랑’ 등으로 읽고 있다. 특히 중국 통속소설 <홍루몽> 번역본에는 ‘우령(優伶)’을 ‘화랑’으로 옮겼다.


민간 어원은 때로 그럴듯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민간 어원을 보면,
그 시대에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상식이나 가치관을 짐작할 수 있다.
화냥년이 환향녀에서 왔다는 풀이가 널리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상식에 비추어 가히 그럼 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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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5-12-30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정보 감사해요

물만두 2005-12-30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조선인 2005-12-30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그렇군요.

세실 2005-12-30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으로써 참 듣기 거북한 말이죠.......어원이 이렇게 생긴 거군요...

숨은아이 2005-12-30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쓸만한가요? ^^
만두 언니, 조선인님, 드디어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도 다 읽었습니다. 만세~!
세실님, 요즘엔 잘 쓰지 않으니 다행이에요. 그죠?

플레져 2005-12-30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이제라도 알게되서 다행이어요.
고마워요, 숨은아이님!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

숨은아이 2005-12-30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도 새해 복 많이 많이 많이 받으세요!

진주 2005-12-30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을 다 읽고 우리에게 소개해주신 숨은아이님 만세~~~~
환향녀는 아무래도 발음이 좀 억지스런 면이 있었는데 화냥은 자연스럽군요...으음...화냥이 맞는 걸까요?

숨은아이 2005-12-30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 그런데 다 읽었어도 돌아서면 잊어버린다는... ㅠ.ㅠ

숨은아이 2006-01-03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우님/음...?

숨은아이 2006-01-04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생각나는 대로 풀어보시면...?)

숨은아이 2006-01-04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오늘 소주 한 병으로 머리를 푸시기 바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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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부인의 요리사 1 
후카미 린코 (지은이) | 대원씨아이(만화)

요리를 좋아하고, 또 잘한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한 꼭지마다 새로운 요리가 등장하는데,
이것을 이렇게 하고 저것을 저렇게 하고 하는 설명을 읽을 때
머릿속으로 그 맛을 더 잘 상상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요리엔 영 소질도 취미도 없는지라
맛나 보이는 그림을 보면서도
머릿속에 ‘맛이 그려지지 않아’ 쪼오끔 아쉽다.

얄밉지만 귀여운 심부인과 재주가 뛰어나지만 어수룩한 요리사 이삼이
밀고 당기는 게임은 아주 재미있다.
(주로 이삼이 일방적으로 당하지만... 이삼이 불쌍해. ㅠ.ㅠ)
앞으로 심부인이 어디까지 갈지,
이삼은 언제까지 어리버리 성격을 고수할지 기대된다. ㅎㅎ

로드무비님 고맙습니다~

정   가 : 3,800원
출간일 : 2005-12-03 | ISBN : 8959633607
반양장본 | 205쪽 | 188*128mm (B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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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12-28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식 ㅠ.ㅠ;;;

로드무비 2005-12-28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곧 볼 거예요.
궁금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요.
그런데 숨은아이님, 예전에 음식 페이지 보면 장난 아니시던데...^^

숨은아이 2005-12-29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 언니/왜요 왜요?
로드무비님/에엥, 저는 주로 먹는 것만 좋아해요. ^^ 만드는 건 지난번에 올린 김치삼겹살떡볶이 하나뿐이었어요. 게다가 저는 조수 노릇만 하고 주로 옆지기가... ㅎㅎ
새벽별님/이거 올리고 나서 새벽별님 재밌는 리뷰도 봤어요. 딱 제 느낌처럼 쓰셨더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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