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최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 유명한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읽지 않았다. 왜 그런지 모르게 끌리지 않는 것들이 있는데 어쩌면 이 시집의 제목도 내게는 그런 것들 중 하나였을 게다. 아무튼 읽지 않아서 최영미 시인을 몰랐고, 이 시인이 원래는 미술을 전공한 이였다는 것도 몰랐으며, 이제는 소설이나 산문으로 양식을 바꾸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모른 상태에서 선물 받은 책이라, 그저 가볍지만 시적인 감수성이 충만한 여행기 쯤으로, 산만하거나 정독이 여의치 않을 때에도 읽을 수 있는 책으로 큰 기대 없이 읽었는데도, 아 참으로 난감한 분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에세이는 그 형식상의 특수성 때문에 이러니 저러니 객관성을 견지한다고 해도 어차피 그 글을 쓴 개인의 생각이나 평소 생활방식이 드러나게 마련, 그런데 최영미 시인은 본인이 본문 중에 문단에서 많은 이들이 자신을 '공주병 환자'라고 한다고 언급했던, 바로 그 원인을 나 같은 독자도 충분히 짐작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공주병 환자 정도야 어쩌면 시각의 차이로 치부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말하자면, 시인이라는 직업 자체에서 연유하는 비범함 혹은 에고에 집착하는 경향을 시인이 아닌 사람들이 볼 때 공주병이나 지나친 자의식에 함몰되는 위험인자로 볼 수 있겠다는 거다. 

그렇지만 책 중간에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흑인 택시운전기사의 양심을 운운하며 (줄곧 불친절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예의 양심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자신이 오매불망 존경해 마지 않는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흑인들이 이제 좀 양심적으로 개량되려나'라는 희망을 품었던 스스로가 순진했구나 했다는 대목에서는, 아주 잠시나마 책을 내던지고 싶어졌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녀가 너무나 나이브한 것은 오히려, 오바마가 진정 문학적으로 월등한 재능을 가졌다고 믿는 것이고(대필이나 누군가의 감수가 없었다는 믿음은 대체 어디서 근거하는지, 내가 너무 의심이 많은 걸까) 그의 아내 미셸이 자주 간다는 레스토랑에 가서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미셸의 스타일을 따라하고 싶어하는 철부지 십대 같은 그녀의 요령부득 겉멋 여행이, 그래도 시인이기 때문에 괜찮아보이리라고, 니들이 말하는 공주병이 아니라 자신에게만 있는 개성을 당당히 표현하는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점이다. 어떻게 시인이라는, 혹은 작가라는 사람이, 이렇게 편협한 사고를 그대로 약간의 해명도 없이, 일기장처럼 마음껏 쓰고 마음껏 책으로 내는지, 한번도 작가가 되어 예술가의 고뇌를 겪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갸우뚱해질 수 밖에 없다. 하긴, 안 읽으면 그만이지 독자랍시고 이러쿵저러쿵 하지말라, 고 하면 따로 드릴 말씀은 없어진다. 부디, 이 한 꼭지 때문에 내가 시인 최영미의 모든 것을 곡해하는 게 아니기만을 바랄 뿐이다.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굿바이 2010-03-02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저는 시인의 시가 훨씬 난감합니다. 어째쓰까용^^

치니 2010-03-02 20:13   좋아요 0 | URL
굿바이님은 시를 읽어보셨군요. 저는 시는 안 읽어봐서...^-^;;

Arch 2010-03-02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 이분의 에세이를 읽어본적이 있는데 구체적인 사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뭔가 마뜩치 않은 느낌에 책장을 '확' 덮은적이 있어요. 그러면서 내가 뭔가 오독했겠지, 작가는 다른걸 의도했을지도 모른다며 제 독해력을 탓했어요.
유명해지는건 꼭 그런 것 같아요. 재미없고, 별로인 내용이 무명의 작가의 것이라면 좀 다른 느낌이었겠거니 하는. 무명의 누군가가 쓴 책이 훨씬 좋을 때도 많구요.

치니 2010-03-02 22:11   좋아요 0 | URL
어휴, 살짝 가슴을 쓸어내리는 중입니다. 제가 이렇게 마뜩치 않게 리뷰를 적었는데 잘 아는 알라디너분들이 제 독해력을 탓할까 소심해졌었거든요.
무명의 누군가가 잘 쓴 책을 발견한다면! 오 그건 정말 모래 속 보석 찾은 느낌이니 아치님은 꼭 공유해주셔야 해요. ^-^

하이드 2010-03-02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영미 시인의 미술 에세이들은 좋아요. 이번에 나온 그 일기장 책도 예전 버전으로 가지고 있는데 좋습니다.

실제로 약간 치기 어린듯, 독선적이듯, 멋진 분이에요. 이 책은 좀 짜집기식이라 저도 별로. 그녀는 소녀같고, 말 빠르고, 팔다리 쭉쭉 늘씬하고, 미녀이고, ^^ 말대로 공주병도 있을지도 모르겠고, 그러나 싫지 않고. 제가 아, 이 크록스 미셸 오바마도 신었당- 하며 즐거워 하는 초딩적 마인드의 소지자여서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축구를 무지 좋아해서 축구 에피소드들도 많은데, 저는 귀엽고, 멋져보였는데, 치니님은 들으시면 기겁하시겠네요.

그리고, 오바마는 글 잘 쓰는거 맞지요. 최영미가 감탄한 그 부분이야 어떤지 모르겠고, 대통령이 되었으니 당연히 선수들이 옆에 포진해 있겠지만, 오바마도 콜롬비아와 하버드 시절부터 흑인 최초 편집인 하면서 글과 관련된 일 했고, 그 이후 변호사일 하면서 쓴 글들도 잘 쓴글로 여겨지는데요? 대통령은 자기 혼자 다 글 쓰고 말해야만 명문가라고 생각하시는건 아니지요?

Arch님의 '기억은 안 나지만' '마뜩지 않'아 '확 덮었'다는 댓글은 악플 달릴 때 알지는 못하지만(혹은 기억은 안나지만) 몰아가는 댓글의 전형 같네요. 잘 모르지만 나빴어.

치니 2010-03-03 09:23   좋아요 0 | URL
어이쿠, 위에 아치님 댓글에 가슴 쓸어내렸다가 다시 가슴 벌렁하는데요. ^-^; 네 하이드님의 생각과 같은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아주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치기 어리다는 표현이 아마 맞지 싶어요. 본문에도 썼듯이 제가 최영미 시인 책은 오로지 이거 하나 읽었기에 곡해하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오바마가 글 잘 쓰는지 아닌지 그건 둘째 문제고, 오바마가 모든 미국의 문제를 해결해줄 구세주처럼 표현된 것이 껄끄러웠던 것 뿐이에요.

하이드 2010-03-03 18:07   좋아요 0 | URL
이 책이 나올 당시 오바마가 구세주처럼 보였던건 비단 최영미에게만은 아니였지요.

그런 책들이 있어요. 좋은 저자를 깔아뭉개는 꽤 별로인 책들. 그 책을 가장 먼저 읽으면 좀 그래요. 독자나 저자나 아쉬운. 제가 얼마전 읽은 주경철의 책이 그랬을꺼라고 생각해요.

이 책은 저자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아쉬웠던 책. 그래도 그녀라면.이라고 면죄부를 주지만, 좋아하지 않는다면, 시간도 아깝고, 돈도 아깝고 그럴수도 있겠지요.

gimssim 2010-03-02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습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에서 많이 후퇴한 느낌을 받았고,
근간 <누군가 내 일기장을~>에 대해서도 유감.
뒷부분 자기변명 같은 사설을 너무 많이 할애한 느낌이었구요.
세월 탓인가? 너무 자기연민에 빠져있는 듯 보여져서...

치니 2010-03-03 09:25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자기변명 같은 사설은 저도 '고흐 나처럼 불쌍한 사람' 대목에서 느낀 바 있어요.
예술을 한다고 명명되어 있는 사람들이 쓴 글이 잘못하면 자기변명/자기연민처럼 보이게 되는 수가 많은데, 그건 또 자기검열과 한끗 차이일 지도 모르고. ^-^;;

LAYLA 2010-03-03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흑인들이 양심적으로 개량되었으려나' 부분은 상당히 불편하네요. 오바마 당선 이전까진 흑인들이 양심불량이었단 걸 전제하고 있단 소리라서...

치니 2010-03-03 09:28   좋아요 0 | URL
네, 라일라님. 바로 그 부분이 정말 팍 걸렸어요. 그런 전제를 하는 것도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할 수 없지만, 그런 전제를 했다는 티가 나는 그 마음을 그대로 글로 옮긴다는 게, 저에겐 지나치게 솔직해보였달까요. 작가가 정말로 흑인들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데 그 흑인 때문에 잠시나마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식의 해명이 어딘가에서 다시 나오길 바랬어요.

rainer 2010-03-03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번 읽어보려고 시도는 했는데 그 몇 번 모두 책을 덮고 말았어요. 요즘 통 책읽기가 소홀해서 약간은 죄책감도 느끼는 중이었고, 그래도 읽어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하는 중에 나만 불편했던 건 아니라서 조금 안심되고 그러네요. 죄책감 덜었어요.(왜 사놓고 실패하는 책이나 안 읽은 책들을 보면 슬그머니 외면하게 되는 미안함 같은 게 생기는 걸까요.^^;) 햇살이 봄!

치니 2010-03-03 13:34   좋아요 0 | URL
아, 레이니어님도! 저 그마음 잘 알 것 같아요, 저도 그렇거든요.
사놓고 실패 혹은 읽기 싫어지는 책에 대한 미안함, 나는 왜 책에 대해 괜시리 이렇게 까다로울까 뭐도 모르면서 하는 자책감, 등등.

햇살은 봄, 날씨는 아직 쌀쌀, 감기 조심하세요 ~ ^-^

라로 2010-03-04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 표지부터 쫌 그렇지 않아????ㅎㅎㅎㅎㅎㅎㅎ
암튼 나도 저책을 읽어보려고 생각을 하면서도 선뜻 사게 되지 않았는데
자기 리뷰를 읽어보니 안사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


햇살은 봄, 날씨는 아직 쌀쌀, 감기 조심하시고, 이 봄이 지나기 전에 언제 함 만나야지????ㅎㅎ

치니 2010-03-04 09:25   좋아요 0 | URL
아, 저 책의 표지는 본문에 보면 사연이 있어요. 원래 저런 스타일은 아니신데, 사진 찍는 후배가 코디네이션을 해주는 바람에 저렇게 멋지게 차려입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썩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언니가 안 사길 잘했다고 하시니 출판사에 슬쩍 미안해지는데요. ^-^;;

아유 그러게요, 생각보다 멀지도 않던데, 맘 먹고 나서기가 어려워요. 언니가 올라오시면 언제라도 스탠바이하고 있다가 튀어가겠습니당 ~

토니 2010-03-05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른 잔치는" 시집 읽고 완전 반해서 그 이후 나오는 책마다 열심히 읽고 있는데 뭔가 석연찮은 느낌이 들어요. 이 책도 그렇고.. 뭐랄까 억지로 쓰는 듯한 느낌이랄까... 예전의 강렬함도 자연스러움도 없어요. 저의 어두웠던(?) 대학시절을 그녀의 시집으로 버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개인적으론 참 안타까워요.

치니 2010-03-05 11:39   좋아요 0 | URL
그랬군요, 아무래도 한번 시집을 읽어볼까봐요. 모두들 안타깝다고 하시니 이 책 하나만 읽고 접기에는 죄송한 마음이 드네요.

당고 2010-03-05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시집은 좋아함! 에세이는 별로인 듯? 알라딘 서재 없어도 덧글 달 수 있다는 걸 이제 알았어요ㅠ 제가 좋아하는 최영미 시인의 <선운사에서>를 달고 가도 될까요? 히히-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치니 2010-03-05 16:42   좋아요 0 | URL
오오, 당고님 ~ 방가방가(이 해묵은 표현이 이럴 때 딱 어울리는 듯 ㅋㅋ)
알라딘은 이웃공개 / 일촌 그런 거 없이 걍 쌈박하게 비공개와 공개로 나뉩니다. 자주 놀러오세요 ~ 댓글 대환영. :)

음, 시는 지금 회사에서 읽으니 별 감흥이 안와요. 집에 가서 다시 읽어볼래요.
 
밀크 - Milk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 속의 숀펜은 게이 인권운동가이자 정치인.

영화 '밀크'에서 숀펜은 하비밀크이지만 하비밀크는 숀펜이 될 수 없겠지. 숀펜은 이전에 영화 '아이엠샘'에서 장애인이었지만 그 장애인은 역시 숀펜이 될 수 없겠지. 즉, 숀펜은 천의 얼굴, 만의 얼굴, 숀펜이 영화 속에 등장했을 때 우리는 숀펜을 보지 않고 밀크를, 샘을, 그냥 그 사람 그대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특권을 누릴 수 있다. 또한 연기자라면 무조건 그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당연한 교과서적인 바람을 충족시켜(실제로 그 역할에 충실하기 보다는 배우 그 자체로만 보이는 배우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상기해보면) 이 시대 최고의 배우라는, 진부하지만 마음에서 우러나는 찬사를 저절로 내뱉게 되는 것이다.

이런 숀펜이 택한 이번 영화는 마침 거장 '구스 반 산트'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 일찍부터 소문이 난데다가 작년에 아카데미 주연상까지 거머쥔 바, 모두의 기대가 2년이나 지속되어 이제야 개봉한 지라, 극장 안은 숨소리조차 신중한 듯 조용하면서도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보고싶은 영화는 조그만치의 스포일러도 접근하지 않고 감독 혹은 배우의 이름 정도만 알아둔 상태에서 거의 무정보 상태로 보는 걸 고집하는 터에, 나는 이 영화가 동성애 혹은 인권운동을 다루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저 구스반산트 감독의 영화를 모두 다 보았고, 그 중에 나를 실망시킨 영화는 단 한 편도 없었다는 점 때문에, 무조건 궁합이 잘 맞는다는 믿음으로 기다렸던 것이고, 과연, 나무랄데 없는 전기 영화였다.  

그 위대하고도 안타까운 실화가 이미 내포한 내용 자체가 주는 묵직함을 부러 가벼이 하지도 않았고, 인간 밀크에 대해 지나치게 감상적이지도 않았으며, 인권이 얼마나 소중한 지 좀 봐라 이사람들아 라는 식의 강요도 없었으니, 그야말로 객관적인 리얼리티 묘사에 있어서만큼은 독보적인 이 천재 감독이, 광기나 극단 혹은 기이함 등을 내세우지 않고 극도로 차분한 균형에서 벗어나지 않음에 다시 한 번 반가운 마음이다.  

그나저나, 하비밀크는 이미 영웅인데, 우리는 이렇게 수많은 동성애 영화를 접해도 유명한 정치인은 커녕 연예인 홍석천은 여전히 가끔씩 조롱거리가 되는 현실. 참 갈 길이 멀겠구나 싶어서, 내 앞 줄에 중간중간 박수를 치던 어떤 분(아마도 밀크와 같은 정체성을 가졌을)의 심정이 어느 정도는 헤아려지고 이것이 비단 동성애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에, 이토록 잘 만든 영화를 보고도 가슴이 답답한 건 어쩔 수 없더라.


댓글(9)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0-03-02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간 숀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지금도 잘 알지 못하지만)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오! 남우주연상을 타야 했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구스 반 산트는 아, 제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감독이에요. 저는 영화 감독을 잘 모르고 감독 취향이라는 것도 없는데, 구스 반 산트만은 예외에요. 포스터의 느낌과 그 밑에 구스 반 산트라는 이름만 보고 [엘리펀트]와 [파라노이드 파크]를 조건없이 봤어요. 아무런 내용도 모르는채로 말이죠. 아 정말 구스 반 산트 사랑해요. 최고에요. 구스 반 산트 만세 ㅠㅠ

치니 2010-03-02 15:07   좋아요 0 | URL
영화를 같이 본 친구와 저는, 숀펜도 숀펜이지만 그런 숀펜과 결혼까지 했던 마돈나가 더 대단하다! 고 수다를 떨었드랬죠. 뭐랄까 좋아한다 싫어한다 호불호로 말하기 이전에 그냥 대단한 배우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어요.

구스반산트는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에요. 저는 감독 취향이라는게 있고 ^-^ 이 감독이 저에겐 딱이에요. 사랑해요. 최고에요. 만세 ~ 히.

라로 2010-03-04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에 추천이 왜 두개 뿐이야!!!!!!!버럭
저 영화 정말 좋았지!!!!
이 리뷰도 너무 좋고!!!!!!
숀팬은 천의 얼굴,,,또는 유리가면을 쓰고 있는거 아니야???저 영화보고 소름끼쳤다는ㅎㅎ
자야하는데 이러고 있다,,ㅠㅠ
이 댓글을 마지막으로 정말 자러간다!!!!!

치니 2010-03-04 09:35   좋아요 0 | URL
네, 오래 기다렸다 본 보람이 있었어요.
숀펜 같은 남자는 보통 때, 그러니까 연기를 안 할 때는 어떨까요. 영화 속의 인물로 완벽히 변신하니까 원래 그의 모습이 더 짐작이 안되어서 그런지, 자꾸 궁금해져요.

웽스북스 2010-03-08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저도 비슷한 느낌을. ㅎㅎㅎ 저도 전혀 그런 영화인줄 모르고 봤었는데, 그래서 오히려 더 잘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무조건적으로 이봐라, 대단하다, 편들어라, 동성애자도 알고보면 똑같은 인간이다, 뭐 이런 진부한 말 하려고 우격다짐하지 않고, 그냥 흐르듯 연출한 것 같아서 좋더라고요. 숀펜이 이 영화로 아카데미 주연상까지 받았던 건 몰랐어요. 정말 연기라는 느낌 안들게 연기하는 대단한 아저씨.

치니 2010-03-08 09:38   좋아요 0 | URL
웬디님도 봤구나 ~ 제 주변에 보신 분들이 꽤 많아서 왠지 므흣합니다. :)
구스반산트의 그 겉으로는 무심하고 흐르듯이 보이는 연출이 지독하게 세밀한 관찰과 계산 하에 이루어졌으리라, 막연히 짐작해요. 그래서 늘 감탄하고.

쎈연필 2010-03-08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영화 평들이 참 좋더라구요. 못을 박으시는군요. 오늘 집에 가자마자 봐야겠습니다.
^-^

치니 2010-03-08 12:33   좋아요 0 | URL
제랄님, (어릴 때 친구들이랑 지랄이란 말을 차마 못할 때 제랄이라고 했었던 기억 때문에 부르기가 송구스러운 닉네임 ㅋㅋ)
꼭 보시길. 멋진 리뷰도 기대하겠습니다 ~

쎈연필 2010-03-08 18:26   좋아요 0 | URL
저도 지랄과 제랄의 어감을 생각하면서 고민 좀 했었죠. 결론은 그것도 매력이라는... ㅎㅎ
 

고독으로부터 찾은 해답 

당신에게는 단 한가지 길 밖에는 없습니다. 당신의 마음 깊은 곳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가서 당신에게 글을 쓰도록 명하는 그 근거를 캐보십시오. 그 근거가 당신의 심장 가장 깊은 곳까지 뿌리를 뻗고 있는지 확인해보십시오. 글을 쓸 수 없게 되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이것을 무엇보다 당신이 맞이하는 밤 중 가장 조용한 시간에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글을 꼭 써야 하는가?" 깊은 곳에서 나오는 답을 얻으려면 당신의 가슴 깊은 곳으로 파고 들어가십시오. 만약 이에 대한 답이 긍정적으로 나오면, 즉 이 더없이 진지한 질문에 대해 당신이 "나는 써야만 해"라는 강력하고도 짤막한 말로 답할 수 있다면, 당신의 삶을 이 필연성에 의거하여 만들어 가십시오. 당신의 삶은 당신의 정말 무심하고 하찮은 시간까지도 이 같은 열망에 대한 표시요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자연을 향해 다가가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보고 체험하고 사랑하고 잃은 것에 대해서 이 세상의 맨처음 사람처럼 말해보십시오. 사랑 시는 쓰지 마십시오. 이처럼 우리에게 너무 흔하고 평범한 것들은 우선은 피하도록 하십시오. 그것들은 다루기가 아주 힘듭니다. 왜냐하면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훌륭하고 탁월한 작품들이 무진장한 곳에서 당신의 개성을 보여주려면 크고도 완전히 성숙한 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반적인 주제는 피하고 당신의 일상생활이 제공하는 주제들을 구하십시오. 당신의 슬픔과 소망, 스쳐지나가는 생각의 편린들에 아름다운에 대한 당신 나름의 믿음 따위를 모사하도록 해보십시오. 이 모든 것들을 다정하고 차분하고 겸손한 솔직함으로 묘사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당신 주변에 있는 사물들이나 당신의 꿈 속에 나타나는 영상들과 당신의 기억 속의 대상들을 이용하십시오. 

당신의 일상이 너무 보잘것 없어 보인다고 당신의 일상을 탓하지는 마십시오. 오히려 당신 스스로를 질책하십시오. 당신의 일상의 풍요로움을 말로써 불러낼 만큼 아직 당신이 충분한 시인이 되지 못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십시오. 왜냐하면 진정한 창조자에게는 이 세상의 그 무엇도 보잘것없어 보이지 않으며 감흥을 주지 않는 장소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당신의 귀에 세상으로부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감방에 당신이 갇혀 있다고 할 지라도, 당신은 당신의 어린 시절을, 왕이나 가질 수 있는 그 소중한 재산을, 그 기억의 보물창고를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그곳으로 당신의 관심을 돌리십시오. 까마득히 머나먼 옛날의 가라앉아 버린 감동들을 건져 올리려고 애써 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고독은 세상 사람들의 목소리가 멀리 비껴가는, 어둠에 잠기기 시작한 집과 같이 될 것입니다. 

..... 

당신의 내면으로 파고 들어가 당신의 삶의 샘물이 솟아나는 그 깊은 곳을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그 원천에 도달하여 당신은 당신이 꼭 창작을 해야하는 지의 물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에 대한 답이 나오면 더이상 그것을 캐묻지 말고 거기서 들려오는대로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아마도 당신이 예술가의 운명을 타고났다는 답이 나오겠지요. 그러면 그 운명을 받아들여, 그것을 짊어지십시오. 그 운명의 짐과 그 위대함을 말입니다. 그리고 혹시 바깥 세계로부터 무슨 보상이 올까 하는 물음은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창조자는 자체가 하나의 세계가 되어야 하며 모든 것을 자신의 내면에서 그리고 자신과 한 몸이 된 자연에서 구해야 하니까요

어쩌면 당신이 당신의 내면과 당신의 깊은 고독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나온 후 시인이 되겠다는 당신의 소망을 포기해야 될 지도 모릅니다.(앞에서 말씀 드렸듯이 글을 쓰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느낀 것만으로도 성과는 충분합니다. 그러면 글 쓰는 일을 절대 시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내가 당신한테 요구한 이 같은 자기 내면에의 탐구가 전혀 헛되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이후로 어쨌든 당신의 삶은 가야할 나름의 길을 찾아 나설테니까요. 

(토끼피터님 블로그에서 베낌: http://blog.naver.com/sengdal/20099925784

--------------------------------------------------------------------------------------- 

너무나도 중요하기에 반복 또 반복하는 릴케의 간절함이 느껴지는 편지. 살아오면서 나는 뭘 제대로 한 것이 있기는 한 걸까. 에효, 머리를 벽에 찧고 싶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니나 2010-02-10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아하는 글이라 여러번 베껴쓰고, 친구들에게 주기도 하고 그랬던 글!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한다는거... 헤헤...

치니 2010-02-10 19:26   좋아요 0 | URL
역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글이었군요! ^-^ 하린군에게 보내줬더니 이미 국어시간에배워서 암송하고 있다더라구요.

라로 2010-02-10 23:50   좋아요 0 | URL
하린군은 암송,,,까지 하고 있다고!!!!!!!!!와~~~. 대단!!!

치니 2010-02-11 09:08   좋아요 0 | URL
ㅋㅋ 근데 말이 암송이지, 몇 군데 읽어본 것 뿐일 수도 있어요.

chaire 2010-02-11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이 나오면 캐묻지 말아야 하는 건데, 제 경우 답이 나왔다고 하면 그게 답이 맞느냐 하고 자꾸 캐묻는 고질병 때문에 결국 아무것도 못한다는.. 에효.

치니 2010-02-11 13:2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건가 싶으면 저건가 싶고. 우리 범인들은 그래서 뭐 하나 끝장나게 못해내는가봐요. 흑.

rainy 2010-02-11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내게 너무도 시의적절하여라..
(모든 진실. 진리들은 언제 어떠한 경우에도 시의적절하겠지.. ^^)

치니 2010-02-11 16:03   좋아요 0 | URL
흐흐, 눈치 챘지? 베낀 이유 중 50%는 레이니님을 위하여.
 

일요일 오후, 반쯤은 설레이는 마음, 반쯤은 무조건 응원하고 싶은 마음으로 대학로에 있는 한 극장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조금은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연극을 보러 가지 않은 지가 몇 년째인 지 세어 볼 수 없을 정도인 지라, 좋은 연극이 많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는 만큼 열심히 보러 가주어야 한다는 당연한 이치를 너무 멀리 하고 살았다 싶어 뜨끔하기도 했더랍니다. 

우선은 여기 알라딘에서 알게 된 '깜찍하고 귀엽고 발랄하고, 때로는 심각하고 진지하고 성숙한, 알고보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직장생활도 하면서 연극까지 하는 욕심쟁이 우후훗 니나님'이 공연에 출연한다는 정보를 입수했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이래저래 낡고 지친 정신에 환기를 불어 넣어줄, 그러니까 저처럼 딩가딩가 현실에 안주하고 일 벌리는 거 번거로워 하는 사람이 보기에는 신기하기만 한, '꿈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의 현장을 제 눈으로 확인하고 그 에너지와 열기 속에 흠뻑 빠져서 대리만족을 할 셈이었습니다.  

결과부터 말씀드리자면, 그 대리만족은 충분히 실현되었고, 아 글쎄 우리의 니나님, 솔까말, 이 정도일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어요! 제가 아는 사람이라고 점수를 더 주고 그런 게 아니라 정말 객관적인 눈으로 보아도 '가장 빛나고 열정적이며 몰입한 연기'였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짝짝짝! 이 자리를 빌어 다시 축하드려요.  더불어 이 좋은 기회를 놓치신 다른 알라디너들에게는 심심한 위로를, 다음 기회를 꼭, 놓치지 마시길 부탁 드리면서, 제목에 말씀드린대로 알라딘의 음모가 있는지 아니면 버림을 받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즐겨찾는 서재의 브리핑에 죽어도 안 뜨는 니나님 서재의 페이퍼 트랙백 합니다. 이런 기사도 났다고 하더라구요 ~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13164 



(이미지는 예매했던 인터파크 싸이트에서 가져 왔습니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라로 2010-02-08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글은 치니양의 글??????
니나님이 누구신지 모르지만 정말 멋진분이시닷!!!!!열정이 부럽다는~.^^;;;;(추천 했다는~.헤헤)

치니 2010-02-08 10:14   좋아요 0 | URL
네, 이 글은 광고성 글로써 제가 쓴 것이고요, ^-^ 니나님 서재는 트랙백 걸어둔 곳으로 가서 보시면 되겠습니다. 흐, 추천 감사.

니나 2010-02-08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아, 영광이예요
가장 빛나고 열정적이며 몰입한 ... 이라니, 몸둘바를 모르겠어요. 'ㅁ'
비좁은 극장에서 재밌게 잘 봐주셔서 제가 감사합니다 :)

치니 2010-02-08 13:29   좋아요 0 | URL
오홋, 실시간 댓글. 안 그래도 이 글을 제 맘대로 막 이렇게 올리고 정작 본인인 니나님에게 허락도 안 받아서 어쩌지 약간 소심해진 마음이었는데, 이렇게 댓글 달아주셔서 안심. ^-^

다락방 2010-02-08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니나님 서재는 왜 즐찾브리핑에 안뜨는거야요 ㅜㅡ

치니 2010-02-08 17:04   좋아요 0 | URL
사람이 편한 데 익숙해지는 건 참, 끝이 없다 싶어요.
오래전 알라딘에서 즐찾했던 서재들을 하나 하나 클릭하여 보던 기억이 떠오르네요(브리핑은 없었으니 그냥 내가 알아서 찾아가던).
니나님 서재는 그렇게 정성껏 찾아오시는 분들을 위한 서재로 남겨지는 것일까요.ㅋ

라로 2010-02-09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생각해 봤는데 니나님이 서재관리에서 즐찾등록에 체크를 안하셔서 그런거 아닐까요????(왜 안될까 생각해 봤다는,,,;;; 오지랖이 너무 넓은 나비,,ㅠㅠ)

치니 2010-02-09 12:24   좋아요 0 | URL
아, 그런게 있구나, ㅋㅋ 저도 몰랐어요.
근데 첨부터 안 뜬 게 아니라 잘 뜨다가 어느날부터 갑자기 안 되었던 걸 보면, 니나님이 뭔가 서재관리를 해보다가 체크를 지우셨;;; 저야말로 오지랖 상상의 나래 ~

니나 2010-02-10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이런 거루 오지랖상상의 나래를 펼치시게 하다니;;
음... 체크하고 새로 써봤는데. 나오나요?

치니 2010-02-10 13:39   좋아요 0 | URL
올레! 집요한 우리들이 해냈습니다 ~ ㅋㅋ 이제 잘 나오네요.
(근데 한 가지만 더, 대체 왜 체크를 지우신 거야욧!)

니나 2010-02-10 16:32   좋아요 0 | URL
몰랐..어요. 으키키키키키키키킥

치니 2010-02-10 19:27   좋아요 0 | URL
서재지기에게 항의했으면 쪽;; 팔릴 뻔. ㅋㅋ
 
에콜로지카 Ecologica - 정치적 생태주의, 붕괴 직전에 이른 자본주의의 출구를 찾아서
앙드레 고르 지음, 임희근.정혜용 옮김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언젠가부터 유토피아라는 말을 들어도 아무런 감흥이 없고 진부한 책장 한 귀퉁이에 처박혀 있는 사어(死語)처럼 받아들이게 된 사람은 비단 나 뿐일까, 라는 생각을 한다.
어릴 때부터 우리들의 일용할 양식과 교육을 위해, 나아가서는 더 좋은 직업을 구해 돈 잘 벌게 하기 위하여 뼈 빠지게 일한 부모님들을 보고 자란 우리 세대가, 남들보다 특별히 잘난 직업을 갖지는 않더라도 어딘가에 ‘고용’되어 ‘노동’하고 있으면서 제 입에 풀칠을 할 뿐 아니라 ‘나만의 특별한’ 상품을 내 것으로 하는 ‘소비’에서 희열을 느끼고 다시 그 욕망의 사슬에서 쳇바퀴 돌면서도 이 욕망이 우리 본연의 욕망과는 다른 ‘강요된’ 욕망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면서,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는 더욱 더 가열찬 경쟁의 필요성을 아무렇지 않게 들이대놓고 미친듯이 공부하고 일하게 하면서도 정작 그들에 대한 ‘정상적인 고용’ 자체가 불가능한 사회를 만들어 놓은 이 상황을, 모두 ‘체계의 문제’로 돌려버리는 것이 왠지 꺼림직했던 사람 역시 나 외에도 많을 것.

자, 그런데 너무 자책하지 말아라. 아무리 따져보아도 네 탓 내 탓이라기보다는 이놈의 자본주의 탓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그리고 머리를 맞대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조금만 이기심을 버리면, 자본주의의 퇴조에서 나아갈 출구가 조금은 덜 막연하게, 완전한 붕괴 위에 새로운 희망으로, 새로운 사회가 건설될 지도 모른다. 이것은 예의 유토피아를 목표로 하는 이상주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자. 이상주의가 이상적이기는 해도, 굳이 안 될 건 또 뭐람.

지금 자본주의를 욕하는 사람들 역시 인간이고 자본주의를 만들었던 사람들도 당연히 인간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모두가 말 그대로 공범이다. 이 인간들이 자신들이 보다 더 잘 살기 위해 또 다른 노력을 시도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해봐야 어차피 안 될 거라고 예단하는 패배주의로 전락하거나 이런 책들이 주는 자극을 예민하게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나이브 하다고 냉소하는 사람들이 저자의 유토피아 계획에 반대하는 사람들보다 더 위험하다는 점을 뚜렷이 인식하기만 하면 말이다.

저자 앙드레 고르는 살아생전 특유의 통찰력과 예리함으로 자본주의의 부조리를 미리 꿰뚫고 대안을 가열차게 세웠지만 그 끝을 보지 못하고 사랑하는 아내 도린을 따라 저 세상으로 갔다. 하지만 이 책 안에서 그와 생각을 같이 했던 사람들이 있고 분명히 어딘가에는 계승하고자 하는 학자들이 있다. 그가 2007년에 예언한 미국 금융위기로 인한 세계 경제의 거품 붕괴와 위기는 정확히 맞아 들었다. (책 속에서 한국과 일본의 산업주의에 대한 설명이 예를 들기 위해 반 페이지 가량 나오는데, 솔직히 장하준이 길게 쓴 ‘나쁜 사마리아인’의 예들이 굳이 필요했나 싶게 간단명료하면서도 핵심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자본주의는 그 끝을 향해 달리고 아래는 절벽일 것이 예상된다. 뛰어내린다면 이왕이면 더 좋은 자리로 폭신하고 우아하게, 고르의 정치적 생태주의를 받아들여보는 것이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나는 (어떤 이에게는) 무지몽매하게 좌파의 선동에 쥐락펴락되는 대중의 하나로 보일 지도 모른다.
그가 펼쳐보이는 이상적인 사회의 청사진은 일반적인 의미의 유토피아라고 하기엔 무척 구체적인 반면, 실현 가능하거나 예측 가능한 체제라고 하기에는 이상적일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꾸준한 노력이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져야 가능할 것 같아 보인다. 그래도! 될 수만 있다면, 스스로 노동할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누군가의 지시로 일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일한 뒤 자유롭게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며 모두에게 생계수당이 주어지는 사회, 그 사회에 살아보고 싶지 않은가? 라고 자문했을 때 예스!라고 답할 수 밖에 없다면 까짓 한 번 해볼 만 하지 않은가, 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준 이 책은, 흥분되거나 격앙된 어조 하나 없이 단정하게 논리적으로 씌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읽은 책들 중에서 단연코 가장 ‘선동적’이다. 
 

덧. '신자유주의'니, '세계화'니, '탈성장'이니, '정치적 생태주의'니, ...이런 단어들을 이런 저런 기사와 책들 속에서 아무리 읽어봐도 점점 더 혼란스럽기만 하더니만 이 얇은 책 한 권 읽고 나서 머릿 속이 깔끔하게 정리된 기분입니다. 이미 알찬 내용을 떠나서도 문장력 역시 최고인 앙드레고르와, 그것을 정갈하고 자연스럽게 번역해주신 두 분 번역가들의 진지한 자세와 노고 덕분이지 싶네요.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haire 2010-02-01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그런 느낌을 간혹 받아요. '선동'된다는 것, 굉장히 '흥분'되는 거구나... 하고요. 내가 어리석어 행동에 잘 나서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선동이 보여주는 어떤 세상을 생각하는 순간 엑스터시 비슷한 감각을 경험할 수 있겠다 싶은... 그래서 이 세상에는 자주 급진적인 사람이 있어야 한다 싶기도 했어요. 말해놓고 보니 좀 딴소리를 한 듯싶은데, 계속해서 딴소리를 하자면, 대문에 걸린 저 남자는 누구예요? 어디서 본 것 같기는 한데...

치니 2010-02-01 13:35   좋아요 0 | URL
딴소리 아니에요, 카이레님. 제가 하려던 말이 그 말이었던 듯 (문장이 딸려서 저 모양이 되었는데 ^-^;;).

저 남자는, '급진적인 사람'에 의해 선동되는 흥분감과는 다른, 훨씬 책임감이 덜한 그런 설렘과 흥분을 주는 - 팬심만 가지면 되는 - 남자, ^_^; 임주환이라고 제가 꽂힌 배우에요.

무해한모리군 2010-02-01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좋은 건 나눠봐야지요.
이 사람은 어쩌다 이렇게 쉽게 잘 선동을 하게되었는지 ㅎㅎㅎ

치니 2010-02-01 17:40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은 참 부지런하고나 그런 생각도 했어요, 읽으면서.
전 밑줄긋기로 여기다 적기는 커녕 책에다 긋는 것도 귀찮아서 그냥 귀만 접어두었거든요. 하긴 그 귀 접는 것도 하도 많아지니 나중엔 그냥 읽었고. ^-^;

토니 2010-02-02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드뎌 올리셨네요. 궁금했는데...

치니 2010-02-02 11:20   좋아요 0 | URL
네, 좀 미루다 읽었어요. 덕분에 좋은 책, 다시 한번 감사 ~

라로 2010-02-02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선동질이라니!!!ㅠㅠ

치니 2010-02-02 13:42   좋아요 0 | URL
하핫, 언니 걱정 말아요, 제가 책 보내드릴게요 ~

또치 2010-02-02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 보고, 저자 이름 보고, 나는 이미 선동되었음;;

치니 2010-02-02 14:08   좋아요 0 | URL
또치님, 요즘 저는 글 좀 잘 썼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자주 들어요. 이게 다 앙드레 탓인 듯. -_-;

2010-02-02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02 17:4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