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 - Milk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 속의 숀펜은 게이 인권운동가이자 정치인.

영화 '밀크'에서 숀펜은 하비밀크이지만 하비밀크는 숀펜이 될 수 없겠지. 숀펜은 이전에 영화 '아이엠샘'에서 장애인이었지만 그 장애인은 역시 숀펜이 될 수 없겠지. 즉, 숀펜은 천의 얼굴, 만의 얼굴, 숀펜이 영화 속에 등장했을 때 우리는 숀펜을 보지 않고 밀크를, 샘을, 그냥 그 사람 그대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특권을 누릴 수 있다. 또한 연기자라면 무조건 그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당연한 교과서적인 바람을 충족시켜(실제로 그 역할에 충실하기 보다는 배우 그 자체로만 보이는 배우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상기해보면) 이 시대 최고의 배우라는, 진부하지만 마음에서 우러나는 찬사를 저절로 내뱉게 되는 것이다.

이런 숀펜이 택한 이번 영화는 마침 거장 '구스 반 산트'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 일찍부터 소문이 난데다가 작년에 아카데미 주연상까지 거머쥔 바, 모두의 기대가 2년이나 지속되어 이제야 개봉한 지라, 극장 안은 숨소리조차 신중한 듯 조용하면서도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보고싶은 영화는 조그만치의 스포일러도 접근하지 않고 감독 혹은 배우의 이름 정도만 알아둔 상태에서 거의 무정보 상태로 보는 걸 고집하는 터에, 나는 이 영화가 동성애 혹은 인권운동을 다루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저 구스반산트 감독의 영화를 모두 다 보았고, 그 중에 나를 실망시킨 영화는 단 한 편도 없었다는 점 때문에, 무조건 궁합이 잘 맞는다는 믿음으로 기다렸던 것이고, 과연, 나무랄데 없는 전기 영화였다.  

그 위대하고도 안타까운 실화가 이미 내포한 내용 자체가 주는 묵직함을 부러 가벼이 하지도 않았고, 인간 밀크에 대해 지나치게 감상적이지도 않았으며, 인권이 얼마나 소중한 지 좀 봐라 이사람들아 라는 식의 강요도 없었으니, 그야말로 객관적인 리얼리티 묘사에 있어서만큼은 독보적인 이 천재 감독이, 광기나 극단 혹은 기이함 등을 내세우지 않고 극도로 차분한 균형에서 벗어나지 않음에 다시 한 번 반가운 마음이다.  

그나저나, 하비밀크는 이미 영웅인데, 우리는 이렇게 수많은 동성애 영화를 접해도 유명한 정치인은 커녕 연예인 홍석천은 여전히 가끔씩 조롱거리가 되는 현실. 참 갈 길이 멀겠구나 싶어서, 내 앞 줄에 중간중간 박수를 치던 어떤 분(아마도 밀크와 같은 정체성을 가졌을)의 심정이 어느 정도는 헤아려지고 이것이 비단 동성애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에, 이토록 잘 만든 영화를 보고도 가슴이 답답한 건 어쩔 수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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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3-02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간 숀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지금도 잘 알지 못하지만)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오! 남우주연상을 타야 했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구스 반 산트는 아, 제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감독이에요. 저는 영화 감독을 잘 모르고 감독 취향이라는 것도 없는데, 구스 반 산트만은 예외에요. 포스터의 느낌과 그 밑에 구스 반 산트라는 이름만 보고 [엘리펀트]와 [파라노이드 파크]를 조건없이 봤어요. 아무런 내용도 모르는채로 말이죠. 아 정말 구스 반 산트 사랑해요. 최고에요. 구스 반 산트 만세 ㅠㅠ

치니 2010-03-02 15:07   좋아요 0 | URL
영화를 같이 본 친구와 저는, 숀펜도 숀펜이지만 그런 숀펜과 결혼까지 했던 마돈나가 더 대단하다! 고 수다를 떨었드랬죠. 뭐랄까 좋아한다 싫어한다 호불호로 말하기 이전에 그냥 대단한 배우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어요.

구스반산트는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에요. 저는 감독 취향이라는게 있고 ^-^ 이 감독이 저에겐 딱이에요. 사랑해요. 최고에요. 만세 ~ 히.

라로 2010-03-04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에 추천이 왜 두개 뿐이야!!!!!!!버럭
저 영화 정말 좋았지!!!!
이 리뷰도 너무 좋고!!!!!!
숀팬은 천의 얼굴,,,또는 유리가면을 쓰고 있는거 아니야???저 영화보고 소름끼쳤다는ㅎㅎ
자야하는데 이러고 있다,,ㅠㅠ
이 댓글을 마지막으로 정말 자러간다!!!!!

치니 2010-03-04 09:35   좋아요 0 | URL
네, 오래 기다렸다 본 보람이 있었어요.
숀펜 같은 남자는 보통 때, 그러니까 연기를 안 할 때는 어떨까요. 영화 속의 인물로 완벽히 변신하니까 원래 그의 모습이 더 짐작이 안되어서 그런지, 자꾸 궁금해져요.

웽스북스 2010-03-08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저도 비슷한 느낌을. ㅎㅎㅎ 저도 전혀 그런 영화인줄 모르고 봤었는데, 그래서 오히려 더 잘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무조건적으로 이봐라, 대단하다, 편들어라, 동성애자도 알고보면 똑같은 인간이다, 뭐 이런 진부한 말 하려고 우격다짐하지 않고, 그냥 흐르듯 연출한 것 같아서 좋더라고요. 숀펜이 이 영화로 아카데미 주연상까지 받았던 건 몰랐어요. 정말 연기라는 느낌 안들게 연기하는 대단한 아저씨.

치니 2010-03-08 09:38   좋아요 0 | URL
웬디님도 봤구나 ~ 제 주변에 보신 분들이 꽤 많아서 왠지 므흣합니다. :)
구스반산트의 그 겉으로는 무심하고 흐르듯이 보이는 연출이 지독하게 세밀한 관찰과 계산 하에 이루어졌으리라, 막연히 짐작해요. 그래서 늘 감탄하고.

쎈연필 2010-03-08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영화 평들이 참 좋더라구요. 못을 박으시는군요. 오늘 집에 가자마자 봐야겠습니다.
^-^

치니 2010-03-08 12:33   좋아요 0 | URL
제랄님, (어릴 때 친구들이랑 지랄이란 말을 차마 못할 때 제랄이라고 했었던 기억 때문에 부르기가 송구스러운 닉네임 ㅋㅋ)
꼭 보시길. 멋진 리뷰도 기대하겠습니다 ~

쎈연필 2010-03-08 18:26   좋아요 0 | URL
저도 지랄과 제랄의 어감을 생각하면서 고민 좀 했었죠. 결론은 그것도 매력이라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