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31320173531303.jpg)
영화 속의 숀펜은 게이 인권운동가이자 정치인.
영화 '밀크'에서 숀펜은 하비밀크이지만 하비밀크는 숀펜이 될 수 없겠지. 숀펜은 이전에 영화 '아이엠샘'에서 장애인이었지만 그 장애인은 역시 숀펜이 될 수 없겠지. 즉, 숀펜은 천의 얼굴, 만의 얼굴, 숀펜이 영화 속에 등장했을 때 우리는 숀펜을 보지 않고 밀크를, 샘을, 그냥 그 사람 그대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특권을 누릴 수 있다. 또한 연기자라면 무조건 그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당연한 교과서적인 바람을 충족시켜(실제로 그 역할에 충실하기 보다는 배우 그 자체로만 보이는 배우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상기해보면) 이 시대 최고의 배우라는, 진부하지만 마음에서 우러나는 찬사를 저절로 내뱉게 되는 것이다.
이런 숀펜이 택한 이번 영화는 마침 거장 '구스 반 산트'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 일찍부터 소문이 난데다가 작년에 아카데미 주연상까지 거머쥔 바, 모두의 기대가 2년이나 지속되어 이제야 개봉한 지라, 극장 안은 숨소리조차 신중한 듯 조용하면서도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보고싶은 영화는 조그만치의 스포일러도 접근하지 않고 감독 혹은 배우의 이름 정도만 알아둔 상태에서 거의 무정보 상태로 보는 걸 고집하는 터에, 나는 이 영화가 동성애 혹은 인권운동을 다루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저 구스반산트 감독의 영화를 모두 다 보았고, 그 중에 나를 실망시킨 영화는 단 한 편도 없었다는 점 때문에, 무조건 궁합이 잘 맞는다는 믿음으로 기다렸던 것이고, 과연, 나무랄데 없는 전기 영화였다.
그 위대하고도 안타까운 실화가 이미 내포한 내용 자체가 주는 묵직함을 부러 가벼이 하지도 않았고, 인간 밀크에 대해 지나치게 감상적이지도 않았으며, 인권이 얼마나 소중한 지 좀 봐라 이사람들아 라는 식의 강요도 없었으니, 그야말로 객관적인 리얼리티 묘사에 있어서만큼은 독보적인 이 천재 감독이, 광기나 극단 혹은 기이함 등을 내세우지 않고 극도로 차분한 균형에서 벗어나지 않음에 다시 한 번 반가운 마음이다.
그나저나, 하비밀크는 이미 영웅인데, 우리는 이렇게 수많은 동성애 영화를 접해도 유명한 정치인은 커녕 연예인 홍석천은 여전히 가끔씩 조롱거리가 되는 현실. 참 갈 길이 멀겠구나 싶어서, 내 앞 줄에 중간중간 박수를 치던 어떤 분(아마도 밀크와 같은 정체성을 가졌을)의 심정이 어느 정도는 헤아려지고 이것이 비단 동성애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에, 이토록 잘 만든 영화를 보고도 가슴이 답답한 건 어쩔 수 없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