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첫인상이 시시했음에도 다시 읽기 시작한 건, 처음엔 그저 장난스러운 마음이었어, 그러다가 점점 마치 동굴에 갇힌 원시인 같은 기분이 되고 말았어. 처음엔 재미 삼아, 그러고는 꽤 오랫동안 돌덩이 하나를 자기 동굴의 입구에서 굴리다가, 그 돌덩이가 동굴을 어두컴컴하게 만들고 공기를 차단시키자, 질식된 듯 겁에 질려 놀라운 집중력으로 그 돌을 치우려고 기를 쓰는 사람 같은 기분. 그런데 그 돌은 이제 열 배는 무거워졌고, 그 사람은 공포에 질려 온 힘을 끌어모아야 해, 다시 빛과 공기 속으로 나오기 위해서 말이지. 그래서 나는 이런 날들을 보내는 동안 펜을 손에 쥘 수가 없었어. 빈틈없이 다시, 또다시 더 높은 곳으로 치솟아, 자기가 가진 망원경으로는 도무지 볼 수 없을 만큼. 그렇게 높이 올라간 어떤 삶을 조망할 때면, 의식은 진정되지 못하는 법이잖아. 하지만 그런 의식이 커다란 상처를 받는 것은 다행이기도 해. 그것을 통해 의식은 그 어떤 물림에도 반응할 만큼 예민해질 테니까. 나는 우리를 깨물고 찌르는, 다만 그런 책들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 우리가 읽는 책이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쳐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책을 읽어야 할까? 네가 편지에 쓰고 있는 것처럼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맙소사, 만약 우리에게 책이 아예 없다 해도, 우리는 행복할 수는 있을 거야. 그리고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그런 책들은, 필요하다면 우리 모두 각자 쓸 수도 있을 거야. 우리에게는 마치 불행처럼 다가오는 책들이 필요해, 우리를 매우 고통스럽게 하는 불행, 우리가 자기 자신보다 더 좋아한 어떤 이의 죽음 같은 불행, 모두가 사라져서 아무도 없는 숲속에 홀로 남겨진 불행, 말하자면 스스로 삶을 끝내야 할 것 같은 불행 말이야.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 나는 그렇다고 생각해.
<돌연한 출발>, 프란츠 카프카 - 밀리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