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최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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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읽지 않았다. 왜 그런지 모르게 끌리지 않는 것들이 있는데 어쩌면 이 시집의 제목도 내게는 그런 것들 중 하나였을 게다. 아무튼 읽지 않아서 최영미 시인을 몰랐고, 이 시인이 원래는 미술을 전공한 이였다는 것도 몰랐으며, 이제는 소설이나 산문으로 양식을 바꾸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모른 상태에서 선물 받은 책이라, 그저 가볍지만 시적인 감수성이 충만한 여행기 쯤으로, 산만하거나 정독이 여의치 않을 때에도 읽을 수 있는 책으로 큰 기대 없이 읽었는데도, 아 참으로 난감한 분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에세이는 그 형식상의 특수성 때문에 이러니 저러니 객관성을 견지한다고 해도 어차피 그 글을 쓴 개인의 생각이나 평소 생활방식이 드러나게 마련, 그런데 최영미 시인은 본인이 본문 중에 문단에서 많은 이들이 자신을 '공주병 환자'라고 한다고 언급했던, 바로 그 원인을 나 같은 독자도 충분히 짐작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공주병 환자 정도야 어쩌면 시각의 차이로 치부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말하자면, 시인이라는 직업 자체에서 연유하는 비범함 혹은 에고에 집착하는 경향을 시인이 아닌 사람들이 볼 때 공주병이나 지나친 자의식에 함몰되는 위험인자로 볼 수 있겠다는 거다. 

그렇지만 책 중간에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흑인 택시운전기사의 양심을 운운하며 (줄곧 불친절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예의 양심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자신이 오매불망 존경해 마지 않는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흑인들이 이제 좀 양심적으로 개량되려나'라는 희망을 품었던 스스로가 순진했구나 했다는 대목에서는, 아주 잠시나마 책을 내던지고 싶어졌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녀가 너무나 나이브한 것은 오히려, 오바마가 진정 문학적으로 월등한 재능을 가졌다고 믿는 것이고(대필이나 누군가의 감수가 없었다는 믿음은 대체 어디서 근거하는지, 내가 너무 의심이 많은 걸까) 그의 아내 미셸이 자주 간다는 레스토랑에 가서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미셸의 스타일을 따라하고 싶어하는 철부지 십대 같은 그녀의 요령부득 겉멋 여행이, 그래도 시인이기 때문에 괜찮아보이리라고, 니들이 말하는 공주병이 아니라 자신에게만 있는 개성을 당당히 표현하는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점이다. 어떻게 시인이라는, 혹은 작가라는 사람이, 이렇게 편협한 사고를 그대로 약간의 해명도 없이, 일기장처럼 마음껏 쓰고 마음껏 책으로 내는지, 한번도 작가가 되어 예술가의 고뇌를 겪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갸우뚱해질 수 밖에 없다. 하긴, 안 읽으면 그만이지 독자랍시고 이러쿵저러쿵 하지말라, 고 하면 따로 드릴 말씀은 없어진다. 부디, 이 한 꼭지 때문에 내가 시인 최영미의 모든 것을 곡해하는 게 아니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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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0-03-02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저는 시인의 시가 훨씬 난감합니다. 어째쓰까용^^

치니 2010-03-02 20:13   좋아요 0 | URL
굿바이님은 시를 읽어보셨군요. 저는 시는 안 읽어봐서...^-^;;

Arch 2010-03-02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 이분의 에세이를 읽어본적이 있는데 구체적인 사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뭔가 마뜩치 않은 느낌에 책장을 '확' 덮은적이 있어요. 그러면서 내가 뭔가 오독했겠지, 작가는 다른걸 의도했을지도 모른다며 제 독해력을 탓했어요.
유명해지는건 꼭 그런 것 같아요. 재미없고, 별로인 내용이 무명의 작가의 것이라면 좀 다른 느낌이었겠거니 하는. 무명의 누군가가 쓴 책이 훨씬 좋을 때도 많구요.

치니 2010-03-02 22:11   좋아요 0 | URL
어휴, 살짝 가슴을 쓸어내리는 중입니다. 제가 이렇게 마뜩치 않게 리뷰를 적었는데 잘 아는 알라디너분들이 제 독해력을 탓할까 소심해졌었거든요.
무명의 누군가가 잘 쓴 책을 발견한다면! 오 그건 정말 모래 속 보석 찾은 느낌이니 아치님은 꼭 공유해주셔야 해요. ^-^

하이드 2010-03-02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영미 시인의 미술 에세이들은 좋아요. 이번에 나온 그 일기장 책도 예전 버전으로 가지고 있는데 좋습니다.

실제로 약간 치기 어린듯, 독선적이듯, 멋진 분이에요. 이 책은 좀 짜집기식이라 저도 별로. 그녀는 소녀같고, 말 빠르고, 팔다리 쭉쭉 늘씬하고, 미녀이고, ^^ 말대로 공주병도 있을지도 모르겠고, 그러나 싫지 않고. 제가 아, 이 크록스 미셸 오바마도 신었당- 하며 즐거워 하는 초딩적 마인드의 소지자여서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축구를 무지 좋아해서 축구 에피소드들도 많은데, 저는 귀엽고, 멋져보였는데, 치니님은 들으시면 기겁하시겠네요.

그리고, 오바마는 글 잘 쓰는거 맞지요. 최영미가 감탄한 그 부분이야 어떤지 모르겠고, 대통령이 되었으니 당연히 선수들이 옆에 포진해 있겠지만, 오바마도 콜롬비아와 하버드 시절부터 흑인 최초 편집인 하면서 글과 관련된 일 했고, 그 이후 변호사일 하면서 쓴 글들도 잘 쓴글로 여겨지는데요? 대통령은 자기 혼자 다 글 쓰고 말해야만 명문가라고 생각하시는건 아니지요?

Arch님의 '기억은 안 나지만' '마뜩지 않'아 '확 덮었'다는 댓글은 악플 달릴 때 알지는 못하지만(혹은 기억은 안나지만) 몰아가는 댓글의 전형 같네요. 잘 모르지만 나빴어.

치니 2010-03-03 09:23   좋아요 0 | URL
어이쿠, 위에 아치님 댓글에 가슴 쓸어내렸다가 다시 가슴 벌렁하는데요. ^-^; 네 하이드님의 생각과 같은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아주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치기 어리다는 표현이 아마 맞지 싶어요. 본문에도 썼듯이 제가 최영미 시인 책은 오로지 이거 하나 읽었기에 곡해하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오바마가 글 잘 쓰는지 아닌지 그건 둘째 문제고, 오바마가 모든 미국의 문제를 해결해줄 구세주처럼 표현된 것이 껄끄러웠던 것 뿐이에요.

하이드 2010-03-03 18:07   좋아요 0 | URL
이 책이 나올 당시 오바마가 구세주처럼 보였던건 비단 최영미에게만은 아니였지요.

그런 책들이 있어요. 좋은 저자를 깔아뭉개는 꽤 별로인 책들. 그 책을 가장 먼저 읽으면 좀 그래요. 독자나 저자나 아쉬운. 제가 얼마전 읽은 주경철의 책이 그랬을꺼라고 생각해요.

이 책은 저자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아쉬웠던 책. 그래도 그녀라면.이라고 면죄부를 주지만, 좋아하지 않는다면, 시간도 아깝고, 돈도 아깝고 그럴수도 있겠지요.

gimssim 2010-03-02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습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에서 많이 후퇴한 느낌을 받았고,
근간 <누군가 내 일기장을~>에 대해서도 유감.
뒷부분 자기변명 같은 사설을 너무 많이 할애한 느낌이었구요.
세월 탓인가? 너무 자기연민에 빠져있는 듯 보여져서...

치니 2010-03-03 09:25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자기변명 같은 사설은 저도 '고흐 나처럼 불쌍한 사람' 대목에서 느낀 바 있어요.
예술을 한다고 명명되어 있는 사람들이 쓴 글이 잘못하면 자기변명/자기연민처럼 보이게 되는 수가 많은데, 그건 또 자기검열과 한끗 차이일 지도 모르고. ^-^;;

LAYLA 2010-03-03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흑인들이 양심적으로 개량되었으려나' 부분은 상당히 불편하네요. 오바마 당선 이전까진 흑인들이 양심불량이었단 걸 전제하고 있단 소리라서...

치니 2010-03-03 09:28   좋아요 0 | URL
네, 라일라님. 바로 그 부분이 정말 팍 걸렸어요. 그런 전제를 하는 것도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할 수 없지만, 그런 전제를 했다는 티가 나는 그 마음을 그대로 글로 옮긴다는 게, 저에겐 지나치게 솔직해보였달까요. 작가가 정말로 흑인들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데 그 흑인 때문에 잠시나마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식의 해명이 어딘가에서 다시 나오길 바랬어요.

rainer 2010-03-03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번 읽어보려고 시도는 했는데 그 몇 번 모두 책을 덮고 말았어요. 요즘 통 책읽기가 소홀해서 약간은 죄책감도 느끼는 중이었고, 그래도 읽어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하는 중에 나만 불편했던 건 아니라서 조금 안심되고 그러네요. 죄책감 덜었어요.(왜 사놓고 실패하는 책이나 안 읽은 책들을 보면 슬그머니 외면하게 되는 미안함 같은 게 생기는 걸까요.^^;) 햇살이 봄!

치니 2010-03-03 13:34   좋아요 0 | URL
아, 레이니어님도! 저 그마음 잘 알 것 같아요, 저도 그렇거든요.
사놓고 실패 혹은 읽기 싫어지는 책에 대한 미안함, 나는 왜 책에 대해 괜시리 이렇게 까다로울까 뭐도 모르면서 하는 자책감, 등등.

햇살은 봄, 날씨는 아직 쌀쌀, 감기 조심하세요 ~ ^-^

라로 2010-03-04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 표지부터 쫌 그렇지 않아????ㅎㅎㅎㅎㅎㅎㅎ
암튼 나도 저책을 읽어보려고 생각을 하면서도 선뜻 사게 되지 않았는데
자기 리뷰를 읽어보니 안사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


햇살은 봄, 날씨는 아직 쌀쌀, 감기 조심하시고, 이 봄이 지나기 전에 언제 함 만나야지????ㅎㅎ

치니 2010-03-04 09:25   좋아요 0 | URL
아, 저 책의 표지는 본문에 보면 사연이 있어요. 원래 저런 스타일은 아니신데, 사진 찍는 후배가 코디네이션을 해주는 바람에 저렇게 멋지게 차려입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썩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언니가 안 사길 잘했다고 하시니 출판사에 슬쩍 미안해지는데요. ^-^;;

아유 그러게요, 생각보다 멀지도 않던데, 맘 먹고 나서기가 어려워요. 언니가 올라오시면 언제라도 스탠바이하고 있다가 튀어가겠습니당 ~

토니 2010-03-05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른 잔치는" 시집 읽고 완전 반해서 그 이후 나오는 책마다 열심히 읽고 있는데 뭔가 석연찮은 느낌이 들어요. 이 책도 그렇고.. 뭐랄까 억지로 쓰는 듯한 느낌이랄까... 예전의 강렬함도 자연스러움도 없어요. 저의 어두웠던(?) 대학시절을 그녀의 시집으로 버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개인적으론 참 안타까워요.

치니 2010-03-05 11:39   좋아요 0 | URL
그랬군요, 아무래도 한번 시집을 읽어볼까봐요. 모두들 안타깝다고 하시니 이 책 하나만 읽고 접기에는 죄송한 마음이 드네요.

당고 2010-03-05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시집은 좋아함! 에세이는 별로인 듯? 알라딘 서재 없어도 덧글 달 수 있다는 걸 이제 알았어요ㅠ 제가 좋아하는 최영미 시인의 <선운사에서>를 달고 가도 될까요? 히히-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치니 2010-03-05 16:42   좋아요 0 | URL
오오, 당고님 ~ 방가방가(이 해묵은 표현이 이럴 때 딱 어울리는 듯 ㅋㅋ)
알라딘은 이웃공개 / 일촌 그런 거 없이 걍 쌈박하게 비공개와 공개로 나뉩니다. 자주 놀러오세요 ~ 댓글 대환영. :)

음, 시는 지금 회사에서 읽으니 별 감흥이 안와요. 집에 가서 다시 읽어볼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