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으로부터 찾은 해답 

당신에게는 단 한가지 길 밖에는 없습니다. 당신의 마음 깊은 곳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가서 당신에게 글을 쓰도록 명하는 그 근거를 캐보십시오. 그 근거가 당신의 심장 가장 깊은 곳까지 뿌리를 뻗고 있는지 확인해보십시오. 글을 쓸 수 없게 되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이것을 무엇보다 당신이 맞이하는 밤 중 가장 조용한 시간에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글을 꼭 써야 하는가?" 깊은 곳에서 나오는 답을 얻으려면 당신의 가슴 깊은 곳으로 파고 들어가십시오. 만약 이에 대한 답이 긍정적으로 나오면, 즉 이 더없이 진지한 질문에 대해 당신이 "나는 써야만 해"라는 강력하고도 짤막한 말로 답할 수 있다면, 당신의 삶을 이 필연성에 의거하여 만들어 가십시오. 당신의 삶은 당신의 정말 무심하고 하찮은 시간까지도 이 같은 열망에 대한 표시요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자연을 향해 다가가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보고 체험하고 사랑하고 잃은 것에 대해서 이 세상의 맨처음 사람처럼 말해보십시오. 사랑 시는 쓰지 마십시오. 이처럼 우리에게 너무 흔하고 평범한 것들은 우선은 피하도록 하십시오. 그것들은 다루기가 아주 힘듭니다. 왜냐하면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훌륭하고 탁월한 작품들이 무진장한 곳에서 당신의 개성을 보여주려면 크고도 완전히 성숙한 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반적인 주제는 피하고 당신의 일상생활이 제공하는 주제들을 구하십시오. 당신의 슬픔과 소망, 스쳐지나가는 생각의 편린들에 아름다운에 대한 당신 나름의 믿음 따위를 모사하도록 해보십시오. 이 모든 것들을 다정하고 차분하고 겸손한 솔직함으로 묘사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당신 주변에 있는 사물들이나 당신의 꿈 속에 나타나는 영상들과 당신의 기억 속의 대상들을 이용하십시오. 

당신의 일상이 너무 보잘것 없어 보인다고 당신의 일상을 탓하지는 마십시오. 오히려 당신 스스로를 질책하십시오. 당신의 일상의 풍요로움을 말로써 불러낼 만큼 아직 당신이 충분한 시인이 되지 못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십시오. 왜냐하면 진정한 창조자에게는 이 세상의 그 무엇도 보잘것없어 보이지 않으며 감흥을 주지 않는 장소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당신의 귀에 세상으로부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감방에 당신이 갇혀 있다고 할 지라도, 당신은 당신의 어린 시절을, 왕이나 가질 수 있는 그 소중한 재산을, 그 기억의 보물창고를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그곳으로 당신의 관심을 돌리십시오. 까마득히 머나먼 옛날의 가라앉아 버린 감동들을 건져 올리려고 애써 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고독은 세상 사람들의 목소리가 멀리 비껴가는, 어둠에 잠기기 시작한 집과 같이 될 것입니다. 

..... 

당신의 내면으로 파고 들어가 당신의 삶의 샘물이 솟아나는 그 깊은 곳을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그 원천에 도달하여 당신은 당신이 꼭 창작을 해야하는 지의 물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에 대한 답이 나오면 더이상 그것을 캐묻지 말고 거기서 들려오는대로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아마도 당신이 예술가의 운명을 타고났다는 답이 나오겠지요. 그러면 그 운명을 받아들여, 그것을 짊어지십시오. 그 운명의 짐과 그 위대함을 말입니다. 그리고 혹시 바깥 세계로부터 무슨 보상이 올까 하는 물음은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창조자는 자체가 하나의 세계가 되어야 하며 모든 것을 자신의 내면에서 그리고 자신과 한 몸이 된 자연에서 구해야 하니까요

어쩌면 당신이 당신의 내면과 당신의 깊은 고독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나온 후 시인이 되겠다는 당신의 소망을 포기해야 될 지도 모릅니다.(앞에서 말씀 드렸듯이 글을 쓰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느낀 것만으로도 성과는 충분합니다. 그러면 글 쓰는 일을 절대 시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내가 당신한테 요구한 이 같은 자기 내면에의 탐구가 전혀 헛되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이후로 어쨌든 당신의 삶은 가야할 나름의 길을 찾아 나설테니까요. 

(토끼피터님 블로그에서 베낌: http://blog.naver.com/sengdal/20099925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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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중요하기에 반복 또 반복하는 릴케의 간절함이 느껴지는 편지. 살아오면서 나는 뭘 제대로 한 것이 있기는 한 걸까. 에효, 머리를 벽에 찧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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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 2010-02-10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아하는 글이라 여러번 베껴쓰고, 친구들에게 주기도 하고 그랬던 글!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한다는거... 헤헤...

치니 2010-02-10 19:26   좋아요 0 | URL
역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글이었군요! ^-^ 하린군에게 보내줬더니 이미 국어시간에배워서 암송하고 있다더라구요.

라로 2010-02-10 23:50   좋아요 0 | URL
하린군은 암송,,,까지 하고 있다고!!!!!!!!!와~~~. 대단!!!

치니 2010-02-11 09:08   좋아요 0 | URL
ㅋㅋ 근데 말이 암송이지, 몇 군데 읽어본 것 뿐일 수도 있어요.

chaire 2010-02-11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이 나오면 캐묻지 말아야 하는 건데, 제 경우 답이 나왔다고 하면 그게 답이 맞느냐 하고 자꾸 캐묻는 고질병 때문에 결국 아무것도 못한다는.. 에효.

치니 2010-02-11 13:2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건가 싶으면 저건가 싶고. 우리 범인들은 그래서 뭐 하나 끝장나게 못해내는가봐요. 흑.

rainy 2010-02-11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내게 너무도 시의적절하여라..
(모든 진실. 진리들은 언제 어떠한 경우에도 시의적절하겠지.. ^^)

치니 2010-02-11 16:03   좋아요 0 | URL
흐흐, 눈치 챘지? 베낀 이유 중 50%는 레이니님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