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제사 음식을 좋아한다. 특히 전이 좋다. 시댁에서는 감자와 고구마, 연근을 쪄서 식힌 다음 전을 부치기 때문에 겉이 바삭하고 속은 잘 익은 전을 먹을 수 있다. 부추전(현지 명칭은 정구지전)도 고소하고 특히 꼬치전(?맞나?)이 좋다. 맛살과 햄과 단무지와 쪽파를 꼬치에 끼우고 있으면 이건 정말 전통과는 한참 멀구나 싶지만, 여기에 계란물을 입혀 부쳐 놓으면 보기에도 예쁘고 맛도 좋아서 자꾸만 손이 간다. 파뿌리, 양파 껍질, 무 껍질 등과 함께 푹 삶은 수육도 좋다. 특히 문어 숙회는 썰면서 집어먹고 싶은 걸 늘 간신히 참는다. 고사리를 비롯한 각종 나물을 넣고 비빈 제삿밥은 그야말로 정점. 소고기와 무, 두부를 듬뿍 넣고 끓인 탕국과 함께 먹으면 몇 그릇이고 먹을 수 있다. 이렇게 쓰면서도 먹고 싶다. (옆길로 새고 있다...) 사과, 배, 한과로 디저트까지 먹고 나면 염분과 지방에 대한 걱정도 가라앉는다. 오히려 제사상이 사실은 균형잡힌 식단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런 나이므로 음식을 하는 것도, 차리고 나르는 것도, 설거지도, 별로 힘들지 않다. 어머님과 형님이 어려운 걸 다 해주시기도 하고, 남편도 아주버님도 빼지 않고 일하는 덕도 크다. 아버님 제사를 위해서 다른 친척들이 와주시는 것도 보기 좋다. 친척 어른들이 "오느라고 고생했다, 와서 얼굴 보니 좋다."고 말씀해주시면 왠지 어깨가 으쓱하고 마음도 푸근해진다. 제사는 좋다. 다만 나는 나도 절을 하게 해달라는 거다. 왜 여자는 절을 안 시켜주는가! 그것이 불만이다. 나의 경우는 제사 음식을 준비하거나 뒷정리를 할 때보다, 남자들이 절하는 동안 얌전히 물러 서 있는 순간에 확실한 부엌데기가 된다. 나도 절을 하고 싶다. 나도 돌아가신 아버님께 인사 드리고 싶고, 세상을 떠난 가족을 잊지 않는 따뜻함을 다른 가족들과 나누고 싶다. 같이 준비했으니까 나도 그럴 자격이 있다.


같이 일하고 같이 절하자는 것.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의 한 가지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제사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때로는 이런 의견을 내는 것이 주저되었다.


다른 예로 수십 년 전(수십 년 전....) 내가 다닌 대학에서는 '빨간 립스틱은 페미니즘의 적'이라는 식으로 여성의 섹시함을 드러내는 것 자체를 천박하게 여기는 어떤 분위기가 있었다. 나는 짧은 치마가 좋았고 하이힐을 신으면 허리가 잘록한 기분이 들어서 좋아하는 아가씨였으므로 그런 분위기가 싫었다. 그러면서 '어머니 대지'라는 추상적인 명명으로 여성성과 생태주의를 연결하는 것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페미니즘이란 여성의 성을 지우는 것도 아니고, 강조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때는 배우지 못했다. 페미니즘은 모든 성별을 존중하는 것이고,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약자가 없게 만들기 위한 것임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모두가 잘 살아야 되니까 생태주의와 필연적으로 만나게 된다는 걸 수십 년 지나서 깨닫게 된 것은 단지 내가 공부를 못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전혀 아니라고는 못함.) 아마 당시의 여성주의 교육에서는 그게 한계였을 것이다.


그 시절 나에게는 잘 짚어서 가르쳐주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게 이 책인 것 같다.

















나는 제사를 좋아하는 페미니스트다. 그래서 같이 절할 권리를 달라고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다. 나는 쉬폰 드레스를 좋아하고 반짝이는 목걸이를 좋아하고 빨간 색을 좋아하는 페미니스트다. 우리나라의 결식 어린이와 먼 나라의 저체온증 어린이를 위해 세이브더칠드런 캠페인에 동참했지만 '개념녀' 운운하는 홍보에 질려 항의하고 매몰차게 후원을 끊은 페미니스트다. (어린이들에 대한 죄책감은 그들의 몫이므로 나는 주저하지 않는다.) 교육에는 엄격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보수적인 사람으로서 젠더의 평등 역시 확고하게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다. 페미니즘에는 여러 길이 있다. 모든 성별에 공정하고 모두의 행복에 관심이 있으니 당연히 그렇다. 페미니즘에 막연한 불편, 나아가 공포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이 보면 좋겠다. 다정하고 친절하면서도 단호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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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2-18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네꼬 2016-02-18 14:38   좋아요 0 | URL
동지! 덥석

cyrus 2016-02-18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부장 중심 문화가 강한 대가족은 여전히 남자들만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두 다 그런 게 아닙니다. 지역마다 문화가 차이가 있듯이 제사 방식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제 친가에서는 남자 친척 분들만 제사를 지내고요, 외가에서는 오히려 남자 친척 분들이 여자 친척 분들에게 같이 제사 지내자고 말합니다. 처음에 외가 쪽도 남자들만 했는데, 시대가 바뀌니까 같이 지내는 분위기로 형성되어 제사를 지냅니다. 정확히 어느 지역에서 남자와 여자와 같이 제사를 지내는지 잘 모르지만, 시대가 변한만큼 제사를 준비하는 여자들의 입장을 이해해주는 집안은 다 같이 제사를 지내는 곳이 있을 겁니다.

다음 명절 때 제사를 지내기 전에 가족들이 모여 있을 때 여자들도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건의하듯이 말해보면 어떨까요? 저는 외가 친척들이 제사 지내는 풍경을 선호합니다. 모두가 같이 제사상을 준비하고, 제일 중요한 제사는 한 사람 빠짐없이 지내는 것, 정말 보기 좋은 모습이거든요. ^^

네꼬 2016-02-18 17:08   좋아요 0 | URL
네, 저 역시 (가톨릭 식이라 단촐했지만) 함께 제사 준비하고 절하는 집에서 자랐습니다. 지역에 따라서라기보다 집집마다 분위기가 다르겠지요. 저도 그래서 처음에 놀랐고요.

변화의 속도도 집집마다 다르리라 생각합니다. 저희 세대부터 남자들이 장을 봐오고 음식을 만들고 나르고 정리하는 것, 제사 전후로는 외식하면서 피로 푸는 것 등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 같아요. 각 세대에서 할 수 있는 만큼 변하는 것도 의미 있겠지요. 건의로 해결될 만큼 단순하진 않으니까요.

moonnight 2016-02-18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으로 백만번 좋아요를 누릅니다^^ 제 큰집에서도 남자여자 다함께 절해요. 다들 그러면 좋겠어요. 제사음식 준비와 뒷정리가 힘들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네꼬님은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새애기^^

네꼬 2016-02-18 18:06   좋아요 0 | URL
어이쿠 백 만 번이나요. 저는 제가 먹은 거 치운다고 생각하면 억울하지 않거든요;;;; (진짜로 많이 먹음) 그나저나 새애기라고 하기에는 약간.... =_=

꿈꾸는섬 2016-02-18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처럼 `나는 페미니스트다`하고 당당히 외치고 싶은데 요샌 제 정체성조차 혼란스러워서 당당하지 못한 것 같아요. 책을 먼저 읽어봐야겠어요.^^

네꼬 2016-02-19 17:18   좋아요 0 | URL
뭘요. 당당하다기보다는.. 한편으로는 모든 성별이 평등하다는 게 너무 당연한 말이어서 따로 말 안 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랬고요.

무스탕 2016-02-18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사..살롱해요, 고릉고릉고릉~~~♡

네꼬 2016-02-19 17:19   좋아요 0 | URL
살롱이라니, 살롱이라뇨. 사랑아니고? (왜 당당히 말을 못해! ㅋㅋ)

2016-02-18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9 1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별족 2016-02-19 0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음. 과거에 남녀협상같은 데 제가 여성대표로 참석하면, 읭 그래, 니들 그거 해-추상적이고, 모호한 것들-, 나는 밥해서 먹이는 일을 하지,라고 협상을 마쳤을 거 같아요.
처녀 적에는 그게 되게 힘든 일이고, 싫은 일이고, 고생이라고 생각했는데, 결혼하고 얼마 안 있어는 남편에게 `네가 사람노릇하려고 결혼했지? 여자사람 데려가서 일 시켜먹을라고`라고도 했었는데. 지금은 맛없다고 타박하지만 않으면 먹이는 거 너무 즐거워요.

네꼬 2016-02-19 18:17   좋아요 0 | URL
음, 그러니까 뭔가 먹을 것을 만들어 주는 걸 좋아하신다는 거죠?
저도 좋아해요. 누구든 제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면 좋고요.
저 역시 남이 만든 것 엄청 잘 먹고요.
먹는다는 건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삼천포)
 

일이 있어서 집에 사진 작가가 왔다. 함께 온 어시스턴트는 귀여운 아가씨였는데 긴장한 얼굴로 사진 작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면서 심부름을 했다. 조심조심 움직이며 실수를 안 하려고 애쓰는 눈치였고, 화장실 쓰고 싶단 말도 사진 작가가 대신 해주였다. 그런데 일이 끝나고 나가는 길에 이 아가씨가 쭈뼛쭈뼛 나를 보더니 책장 한 구석을 가리키며 개미만한 소리로 뭐라고 뭐라고 한다.  



"저 책들... 저... 진짜 좋아해요."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것.

책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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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6-02-02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귀엽네요

네꼬 2016-02-02 16:28   좋아요 0 | URL
네 귀엽지요. 저도 그래서 그만 어깨를 안았답니다. (아가씨 죄송..)

moonnight 2016-02-02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그 마음 이해가 되네요. 귀여운 아가씨^^ 와 그런데 네꼬님 사진작가도 집으로 찾아오시는 유명인?@_@;

네꼬 2016-02-02 16:27   좋아요 1 | URL
하하하 그러는 문나잇님이 더 귀엽네요 ㅋㅋㅋㅋㅋ 일단 사진 작가는 누구나 (돈을 내면) 모실 수 있습니다... 저는 뭐 일하는 것 때문에... 아무튼 ㅎㅎㅎㅎㅎ 아 웃겨.

(정색) 혹시 제가 유명연인 된다면 이 정도로 하겠습니까. 동네방네.. 문나잇님 서재까지 가서 알릴 테니 그 전엔 걱정 마세요(응?)

하늘바람 2016-02-02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져요 네꼬님

네꼬 2016-02-10 17:10   좋아요 0 | URL
에엣 무슨 그런 말씀을.....!

뽈따구 2016-02-11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들, 저도 사랑해요! ^^
귀여운 어시스트님이시네용. ㅎㅎ

네꼬 2016-02-18 12:32   좋아요 0 | URL
귀여운 사람들이 귀여운 책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하하.
 

어린이들과 책을 읽을 때, 어떤 책을 좋아하는가에 있어서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차이를 별로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책을 어떻게 읽느냐,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어서는 남녀 차이를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이야기 책을 읽을 때보다 사회적 이슈가 담긴 책을 읽을 때 그 차이가 잘 보이는 것 같다. 결론은 같아도 도달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는 뜻이다.











『내가 라면을 먹을 때』를 읽을 때가 그랬다. 책 속에서 한 아이가 라면을 먹는다. 그러는 동안 옆에서 고양이는 하품을 하고 이웃 아이는 텔레비전을 보고 그 이웃 아이는 비데 단추를 누르고 그 이웃 아이는 바이올린을 켠다. 여기까지는 우리나라 보통 아이들의 일상과 다르지 않다. 그저 이 일들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데 흥미를 느낄 때쯤 이웃나라 아이들이 등장한다. 역시 ‘내가 라면을 먹는 동안’ 아기를 보고, 물을 긷고, 소를 몰고, 빵을 파는 아이들. 길에 쓰러진 아이 위로 바람이 불 때, 라면을 먹고 있는 나에게도 바람이 분다.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갖고 모두가 평화로운 ‘진짜 평화’를 추구하자는 메시지가 담긴 책이다.


여자아이들은 책 속의 아이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더 자세히 알고 싶어 한다.

“얘는 왜 아기를 업고 있어요? 엄마 없어요?” (재인)

“어떡해……. 불쌍해요.” (재인)

“얘 다쳤어요? 왜 쓰러져 있지? 배고픈가 봐요.” (은서)

돌봐줄 어른들은 죽거나 다쳤거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더 안타까운 얼굴이 된다. 한 번 더 읽어주겠다고 하면 “너무 슬퍼서” 싫다고 하는 아이도 있다.


남자아이들은 일단 이상하다고 여긴다.

“이거 진짜예요? 어느 나라예요?” (진우)

“어린이한테 일을 시키는 건 불법이라던데.” (규진)

“얘가 파는 빵을 쟤(다른 나라의 쓰러진 아이)한테 사주면 안돼요?” (은호)

실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하면 분한 얼굴로 “나쁜 사람들!” 이라고 주먹을 내리치는 남자 아이도 있다.












아이들 스스로는 남녀의 차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사랑에 빠진 알콩이와 달콩이』는 남녀의 신체, 성향 차이와 연애, 가족의 다양한 형태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다. 3학년 아이들과 이 책을 읽는 날, 각자 생각하는 ‘남자 아이’ ‘여자 아이’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벤다이어그램으로 그려 보았다. 각자 작업을 했는데도 공통된 답이 많다.


남자아이의 특징에 대해 남자아이들은 ‘활발하다/장난을 많이 친다/운동신경이 좋다/물건을 좋아한다/체육을 잘한다/뛰어노는 것을 좋아한다/여자애들을 놀린다’고 했다. 여자아이는 남자아이들이 ‘여자애들을 괴롭힌다/힘이 세다/많이 먹는다/자존심이 세다/힘으로 해결한다/장난이 심하다/꾸미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반대로 여자아이의 특징에 대해 여자아이들 스스로는 ‘미술을 잘한다/남자애들을 싫어한다/인형을 좋아한다/그림을 잘 그린다/자주 싸운다/섬세하다’고 했는데 남자아이들 눈에도 비슷하게 보이는 모양이다. ‘그림을 잘 그린다/예민한 애들이 많다/미술을 좋아한다/운동을 못한다/책을 좋아한다’고 했다. 남자아이 엄마가 보면 서운하시겠지만 ‘공부를 잘한다’는 대답도 있었다. 그렇다면 공통점은? ‘단 것을 좋아한다/음악을 좋아한다/줄넘기를 열심히 한다/친구를 좋아한다/놀기를 좋아한다/사람이다’란다.


“힘이 센 여자아이도 있을 걸? 예민한 남자아이도 있고.”

내가 묻자 재잘재잘 답이 쏟아진다. 얼굴도 예쁘고 말수가 적어서 새침해 보이는 재인이가 구름사다리에서는 제일 무섭게 논단다. 많이 먹기로는 날씬한 은서를 따를 아이가 없다. 은호는 미술학원에 다녀본 적도 없는데 상어를 아주 진짜처럼 그린다. 놀이터의 대장 진우는 반짝이는 귀걸이를 하고 싶어서 양쪽 귓불을 뚫었다. 좋아하는 색이 “핑크”여서 음료수도 꼭 핑크색 빨대로만 마신단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다르다. 그렇지만 현준이, 재인이, 은서, 진우, 규진이, 은호, 현아가 훨씬 더 많이 다르다.




* 비룡소 북클럽 부모님 소식지 <비버맘> 1학년 / 2015년 가을에 쓴 것

* 물론 가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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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6-02-02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잘재잘 아이들과 네꼬님의 책읽기가 그려집니다^^ 네꼬님과 책을 읽으며 아이들은 참 많은 걸 느끼고 배울 것 같아요. 우리 조카아이들도 네꼬님께 보내고 싶어요♡

네꼬 2016-02-02 16:29   좋아요 0 | URL
저는 문나잇님과 만나고 싶군요! 많이 배운다기보다 많이 놀고 가요; 뭐 노는 것도 배우는 거니까. 라고 쓰지만 부모님들은 이 댓글을 안 보시길 바랍니다...

뽈따구 2016-02-11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꼬님. 우리 어린이도 네꼬님께 보내고 싶어요! ♡♡♡

네꼬 2016-02-18 12:3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무엇보다도 하트가..)
 












2학년 은규는 유난히 옛이야기를 좋아한다. 나와 만날 때면 꼭 한두 권씩 옛이야기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하고, 듣는 동안은 아예 양말도 벗고 배를 깔고 누워서 그 시간을 만끽한다. 옛이야기 모음집『살려 줄까 말까?』는 몇 번을 읽었는지 셀 수도 없다. 우리나라의 ‘선녀와 나무꾼’과 비슷한 일본 옛이야기 『두루미 아내』를 읽을 때면 저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앉는다. 고요하고 슬픈 그림에 압도당하는 모양이다. 그림책에 빠진 은규 표정은 대여섯 살 아이 같다. 남다른 느낌이 있어서 은규 엄마에게 말씀 드렸다가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은규가 영어유치원을 다녔어요. 딴 건 몰라도 영어는 꼭 필요하고 일찍 시작하면 아무래도 좋을 테니까요. 그런데 거기서 우리나라 옛이야기 책을 읽어주진 않아서 그런 그림책을 좋아하는가 봐요.”

영어유치원에 이어 해외 캠프까지, 영어 조기교육을 열심히 하는 효과가 있어서 은규는 능숙하게 영어를 구사한다. 그러나 얻는 것이 있으면 놓치는 것도 있게 마련, 영어로 생각하고 말하는 법을 배우는 동안 무의식을 건드리는 옛이야기의 매력을 느낄 사이는 없었던 것이다. 역시 아이들은 자라는 단계에 맞게 채워야 할 것이 있는 모양이다.


진우 엄마는 스포츠 조기교육에 관심이 많다. 진우가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니 일찍부터 재능을 발견해서 선수로 키우겠다는 생각이다. “몸으로 하는 건 일찍 시작할수록 좋다”면서 수영, 야구, 스케이팅 등을 가르치는데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지 1년을 넘기는 종목이 없다. 그만둘 때마다 엄마는 “이제부터 이건 취미로 하면 된다”고 하지만, 진우는 관심이 뚝 끊긴다. “그거 재밌어 보이잖아요. 근데 엄청 힘들어요.” 운동에 대해 얘기할 때 진우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이다.


그런데 진우를 따라 얼떨결에 스피드 스케이팅을 시작한 예준이는 3년째 전문 코칭을 받고 있다. 재미삼아 시작했는데 아이가 좋아하니 우선 좀 더 해보겠다는 게 엄마 생각이다. 예준이는 엄마가 “애가 파이팅이 없어요.” 하고 농담할 정도로 승부에는 관심이 없다. 그런데도 엄마에게 “나갈 수 있는 경기는 다 나가고 싶다”고 하더란다.








예준이와 『피아노를 쳐 줄게』를 읽은 날이었다. 피아노 모양 음악상자를 좋아하는 캐시에게 엄마는 진짜 피아노를 사주고 음악 선생님을 모셔 온다. 음악 선생님은 캐시에게 재능이 있다면서 연주회 참가를 권하는데, 연습을 반복할수록 캐시는 점점 재미를 못 느낀다. 연주회 무대로 나아가는 캐시는 사막의 모래를 걷는 기분이다. 결국 연주회를 망치고 피아노를 멀리하던 캐시는 우는 동생을 달래기 위해 다시 피아노 뚜껑을 열고 정말로 아름다운 연주를 시작한다. ‘좋아서 하는 일’의 소중한 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그림책이다.


“연주회 때 캐시 기분은 어땠을 것 같아?”

“진짜 무섭고요, 하기 싫었을 것 같아요. 엄마가 시켜서 하는 거잖아요.”

“엄마는 캐시를 위해서 그런 건데.”

“캐시한테 물어보지도 않았잖아요.”

물어보지도 않고! 어른으로서 나까지 뜨끔해졌다.


“근데 저도 아이들 앞에서 리코더 불고 그러는 거는 너무 떨려요.”

“그럼 스케이트 대회는 어떻게 나가? 그때는 안 떨려?”

“안 떨려요. 다른 아이들은 얼마나 잘하는지, 제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요.”

그 자세를 칭찬하면서 예준이는 나중에 스케이트 선수가 되어도 좋겠다고 했더니 대답이 신선하다.

“저는 나중에 뭐가 될지 아직 안 정했어요. 오래 살아야 되니까 뭐가 될지는 잘 생각해봐야 될 것 같아요.”


예준이 엄마도 아이의 진로는 아직 모르겠다고 한다. 다만 “운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이 많은 것 같다”고. 예준이는 스케이트를 배운 덕분에 “열심히 연습하면 메달을 딸 수 있다는 것, 무조건 빨리 가면 넘어지고 균형을 잘 잡아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단다. “허벅지가 딴딴해져서” 오래 걸을 수도 있게 됐다고 한다. 예준이는 쉬는 시간에 얼음으로 장난치는 것, 운동 끝나고 컵라면 먹는 게 좋단다. 그래도 제일 좋은 시간은 훈련 시간이다.

“달리면 시원하고 기분이 뻥 뚫려요.”

정말 좋은 조기교육은 그것을 좋아하는 마음을 길러주는 것 아닐까.



* 비룡소 북클럽 부모님 소식지 <비버맘> 2학년 / 2015년 가을에 쓴 것

* 물론 가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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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6-02-02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어보지도 않고! 정말 뜨끔하네요ㅠㅠ 공감합니다. 그것을 좋아하는 마음을 길러주는 것^^

네꼬 2016-02-10 12:29   좋아요 0 | URL
그렇지 않은 경우가 너무 많아요. 물어본다고 하더라도 답 정해놓고 너 이거 좋아하니까 해봐, 하고 밀어붙이는 경우도 많고요. 어쩌면 저도 그렇게 책 권하는지도 몰라요. ㅜㅜ

Mephistopheles 2016-02-03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예로 강남8학군에서 초중고를 나오고

명분대를 졸업 후 미국 아이피리그에서 박사까지 딴

30대 중반의 한국 남자 중년이 박사학위를 딴 후 이런 말을 했다더군요.

˝ 엄마. 나 이제 뭐해? ˝

네꼬 2016-02-10 12:31   좋아요 0 | URL
하하... 네, 웃기지만 어쩌면 당연한(?) 결말이네요. 부모도 불행, 아들도 불행... 알면 알수록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저로선;;

뽈따구 2016-02-11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것을 좋아하는 마음을 길러주기!
정말이지 이게 중요하죠. 저도 그런 엄마가 되고 싶어요. 노력할래요.

네꼬 2016-02-18 12:33   좋아요 0 | URL
저는 잘 모르지만, 옆에서 보니까 그게 쉽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양육자의 마음이 앞서는 경우가 많지요. 뽈따구님은 잘하실 것 같아요.
 











『그래, 책이야』는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에 23주 연속으로 오른 책이다. 노트북은 능숙하게 다루지만 ‘책’은 전혀 모르는 동키와 느긋이 앉아 책을 읽는 몽키의 간결한 대화가 재미있다. 책을 두고 “마우스는 어디 있어?” “스크롤은 어떻게 해?” 엉뚱한 질문을 쏟아내는 동키도, 뚱한 얼굴로 대꾸하다 “책이라니까.” 하고 살짝 성을 내는 몽키도 우습다. 무엇보다 ‘책의 의미’를 곱씹게 하는 점이 인기의 비결이다. 이런 책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니, 스마트기기니 뭐니 해도 아이들에게는 아직 책이 매력을 잃지 않았다는 생각에 안심이 된다. 세준이가 한마디 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니까, 컴퓨터 하지 말고 책 보라는 거죠?”

유머 속에 감춰진 주제를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다니!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아니, 꼭 그렇다기보다…… 책은 책만의…… 좋은 점이 있다는 거지.”

그러고 보면 전 세계 어른들의 걱정은 비슷한 것 같다. 아이들이 첨단기기보다 책의 세계에 머물렀으면 하는 마음이 이 책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만들었을 테니까. 다행히 세준이는 이어서 읽은 『이 작은 책을 펼쳐 봐』에 금세 푹 빠졌다. 책을 펼치면 또 다른 책이, 그 안에 작은 책이 여러 겹 이어지는데, 아름답고 정교한 구성과 독특한 제본 덕분에 말 그대로 책 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무엇이든 만질 수 있을 때 더 잘 받아들이는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스마트기기의 세계와 한편으로는 통한다고 할까.













많은 어린이들이 이미 스마트기기를 가지고 있다. 태인이는 취학 전부터 최고급 스마트폰을 가져서 아이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게임 개발자인 아빠가 ‘어려서부터 감각을 길러야 된다’며 사주신 덕분이다. 3학년 예진이는 스마트폰으로 스케줄을 입력해 스스로 일정을 관리한다. 바쁜 엄마 아빠와 메시지도 자주 주고받는다. 예진이가 스마트폰이 생겨서 제일 괴로운 사람은 단짝 지은이다.

“예진이가 단톡방에서 다른 애들이랑 얘기할 때 정말 정말 저도 갖고 싶어요.”

궁금한 게 있을 때 스마트폰으로 척척 정보를 찾는 것도 부럽단다. 그러나 지은이 엄마는 중학교 입학 전까지는 절대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겠다고 하신다. 남자아이들은 단연 게임 때문에 스마트폰을 원한다. 4학년 윤호는 스마트폰 게임 시간 때문에 엄마와 갈등을 겪고 있다.

“애들 다 학원 다녀서요, 같이 놀 시간이 그때밖에 없어요. 근데 애들이 다 모이는 데만도 30분은 걸리는데 엄마는 한 시간만 하래요.”


2학년 성원이는 스마트폰이 생길 때까지 스마트워치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통화는 할 수 있지만 메시지는 보낼 수 없고 결정적으로 게임을 할 수 없어서 답답하단다.

“그런데 이 시계가 좋은 점도 있어요. 게임이 없다는 점이에요.”

“게임이 없는 게 제일 안 좋은 점이라면서?”

“게임 중독에 안 걸리잖아요.”

스마트폰을 쓰면 게임 중독에 ‘걸리기’ 쉽다는 어른들의 협박 아닌 협박 덕분일까? 아이들은 스마트 기기를 갖고 싶은 만큼 거기 따르는 책임에도 부담을 갖는다. 스마트폰을 갖고 싶어 애가 타는 지은이, 성원이도 “잃어버리지 않고, 망가뜨리지 않고, 게임도 시간 정해서 하려면” 4학년 정도가 스마트폰 갖기 적절한 때라고 한다.












『이게 정말 사과일까?』를 읽은 날이었다. 사과를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이게 사과의 껍질을 쓴 다른 물건은 아닐지, 자라서 집채만 해지는 건 아닐지, 심지어 외계인은 아닐지 등 자유롭게 상상해보도록 하는 책이다. 작가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감탄하면서 책을 읽은 다음, 사과를 모티프로 상상한 것을 그려보았다.

“이 사과는 시한폭탄일지도 몰라.” 세준이는 미운 사람한테 주는 복수용 사과를 그렸다. 사과하는 척하면서 주는 사과가 폭탄인 것이다. “이 사과는 화가일지도 몰라.” 지은이는 정물화 속의 사과가 스스로 화가가 되어 자화상을 근사하게 그리는 상상을 했다. 역시 창의력을 자극하는 데는 책만 한 게 없지. 그건 책 고유의 영역이라고! 나는 싸우지도 않고 이긴 기분이었다. 연우의 그림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 사과는 스마트폰일지도 몰라.”

한입 베어 먹은 사과, A사 로고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에 새겨진 바로 그 사과가 연우의 사과였다. 이번엔 싸워보지도 못하고 진 기분이었다.





* 비룡소 북클럽 부모님 소식지 <비버맘> 2학년 / 2015년 여름에 쓴 것

* 물론 가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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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따구 2016-02-11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마트폰 사과라니 ㅋㅋㅋㅋㅋㅋㅋ. 싸워보지도 못하고 진 네꼬님. 그래도 화이팅이에요!!! ㅎㅎㅎㅎ

네꼬 2016-02-18 12:34   좋아요 0 | URL
망연자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