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어려운 선택이지만, 아북거 아북거의 호피 씨에게 한 표 드립니다.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를 잘 살피고, 그녀(그)가 원하는 것을 알고, 지혜를 총동원하고, 수고와 귀찮음을 감수하고도,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 멋진 주인공입니다. 모든 좋은 동화가 그렇듯이 어린이와 어른이 따로 읽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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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박승우



나무 등에

업혀서도 운다


나뭇잎 품에

안겨서도 운다


이래도 울고

저래도 운다


귀뚜라미 우니

그제야 그친다
















열세 살 소녀가 이 시집에서 제일 마음에 든다고 한 시다.

이유를 물어놓고 나는 '계절이 지나가는 게 잘 느껴진다고?'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소녀의 답은 이랬다.


나무는 아빠 같고요, 나뭇잎은 엄마 같아요.

저는 매미고, 귀뚜라미는 제 동생이고요.


소녀는 아빠와 떨어져 엄마랑 동생이랑 산다.

예쁘고, 잘 웃고, 동생을 귀찮아하는 걸 그다지 숨기지 않는다.

속으로는 이렇게 의젓한 누나이면서.


그런 누나의 마음으로 이 시를 다시 읽는다.

시는 얼마나 커질 수 있을까.

내가 이 마음을 잊고 살까 봐 조마조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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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페미니스트 - 불편하고 두려워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쁜 페미니스트』를 읽었다. 긴 책을 잘 못 읽는 나도 어렵지 않게 읽을 만큼 재미있는 책이었다. 저자는 미국의 영화, 드라마, 쇼, 대중음악 등 다양한 문화 매체에 드러나는 문제들을 지적한다. 미국식 실용적 글쓰기일까? 아주 효율적으로 줄거리와 메시지를 요약하면서도 논지를 잃지 않는 점이 좋았다. 게다가 대중문화에 스며든, 아니 뿌리 박힌 여성 혐오 정서와 피해자를 비난하고 가해자를 걱정하는 성폭력 뉴스 얘기는 우리나라의 상황과 거의 정확하게 일치한다.


인종 차별주의에 대한 자세하고도 진보적인 비판도 밑줄을 그어 가면서 읽었다. 예를 들어 성공한 흑인이 '문화적으로 용인된 방식으로' 성공해 차별을 이겨내야 한다고 설파하는 데 대한 비판,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노예 서사(기록적인 영화)를 넘어선 새로운 이야기 요구 들이 그랬다. 미국에 살고 있는 흑인들의 이슈는 한국인 여성에게도 별다르지 않게 적용된다. 성공한 여성 CEO가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발언권을 얻을 수 있다고 어린 여성을 몰아붙이는 일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완성한 위안부 기록 영화이니 부적절한 강간 장면을 문제 삼지 말자고 하는 일, 우리나라 상황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이 책에 밑줄을 그은 부분은 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은 부분보다 동의를 표시하고 싶은 부분이다.


그런데 나는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저자의 포지셔닝에 의문이 들었다. 추천사에서도 이야기되고 책 전체에서 이해되듯 여기서 '나쁜'은 도덕적으로 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여기에는 몇 겹의 의도가 있는 것 같다.


먼저 저자 자신이 완벽한 이론가 또는 운동가가 아니라는 점을 어필해서 더 많은 논의를 자유롭게 시작할 무대를 만든다. 이것은 좋은 전략이다. 독자들도 기꺼이 가벼운 마음으로 저자의 얘기를 들을 수 있다. 그런데 때로 이 가벼움이 문제 제기 이후 손을 떼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남성 파트너의 폭력을 용인하는 여성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데 그치는 것이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내용의 얼토당토않은 부분을 지적하느라 이 책에 열광한 사람들에 대한 분석이나 비판을 덮는 것 등이 그랬다. 물론 나 역시 저자에게 완벽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오슬로 테러 사건 때 노르웨이 국왕의 기품 있는 성명에 대해 '비극이. 부르면. 연민이. 응답한다.'는 아름다운 문장을 쓴 저자가, 사건 이후 받은 신경을 거스르는 전화에 대해 '비극이. 부르면. 전화벨이. 응답한다.'고 스스로 비튼 것은 별로 재치 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아직 비극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있었으니까. 그 밖에도 더러 꼭 필요하지 않은 재치를 만나곤 했다. 그래도 너무 딱딱하기만 한 책보다는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나쁜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더 중요한 이유는 페미니즘이 완결된 하나의 이념이 아니며 페미니스트에도 다양한 결이 있다는 걸 상기시키기 위함일 것이다. 그래서 '완벽주의 또는 근본주의 페미니스트'라는 게 있다 치고 그걸 공격하는 사람들을 비판한다. 물론 '완벽주의 또는 근본주의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이들도 있으므로 그들도 비판한다. 나도 동의한다. 나도 제사를 좋아하는 페미니스트니까. 문제는 이런 저자가 자신이 왜 '나쁜 페미니스트'인지 설명하는 대목이다. "이런 내가 멋대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고 다니다니 진정 훌륭한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죄송스럽다."라면서 든 이유들. 그것은 자신이 독립적이기 원하면서도 가족에게 의지할 때가 있다는 것, 때로 여성비하적인 노래에 흥이 나고, 재미로 보그 잡지를 읽는다는 것, 차에 대해 모르지만 알고 싶지 않다는 것,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 등이다. 이게 '나쁜/부족한' 일일까? 인간적으로도 그렇지 않고, 페미니즘적으로도 그렇지 않다. 페미니즘은 완벽한 게 아니라고 저자도 말했는데, 완벽하지 않은 자신은 왜 '나쁜/부족한' 페미니스트란 말인가? 아무래도 모순된다.


페미니즘은 모든 지점에서 평등을 지향한다. 이 큰 이념 안에서 대립되는 이념들이 있고, 합의가 되지 않는 대목이 있으며 꼭 합의해야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페미니즘이라는 큰 틀의 합의는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페미니스트 개인은 완벽한 인간이 아니지만,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고 고쳐가는 것은 결국 결국 완벽을 추구하는 길이다. 죽을 때까지 완벽하지 못할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완벽하려고, 즉 모든 점에서 평등을 이루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에서 밝혀진 바, 저자는 '나쁜/부족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한 명의 페미니스트'이다. 심지어 이 책을 쓸 만큼 훌륭한 페미니스트다. 그런 저자 자신을 나쁘다/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 진짜 완벽한 페미니즘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책의 좋은 점에 대해서는 많은 리뷰가 있고, 나 역시 대부분의 평과 생각이 비슷하다. 확실히 좋은 책이다. 더 많이 읽히고 더 많이 얘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가 어지간하게 만든 흑인 영화나 드라마에 만족할 수 없던 것과 비슷한 이유로 이 책에 만족하지 못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나는 이 책을 무척 좋아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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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6-07-07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속이 시원해요, 네꼬님. 읽지도 않고서 평만 보고도 뭔가 이 책이 마뜩치 않았던 부분을 이렇게 속시원하게 써주시다니! 특히 마지막 문단은 달달 외우고 싶을 만큼 제 생각과 일치합니다. (생각은 일치하면서 글은 절대 이렇게 못 쓰는 스스로에게 약간 자괴감 ㅠ)

네꼬 2016-07-08 09:22   좋아요 0 | URL
치니님.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생각할 것도 많이 있는 좋은 독서였어요. 읽으면서 생각한 걸 정리하고 싶어서 (왠지 좋은 책에 토다는 것 같아서 망설이기도 했지만) 적어 봤습니다. 이렇게 늘 격려해주시니 저는 늘 감사합니다. 흑흑.
 















공기를 그릴 수 있을까? 화가 정문주의 그림을 보면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돌봐줄 사람 없이 홀로 끼니를 걱정하며 사는 공주네 집의 곰팡이 냄새 나는 공기도( 이은정 『소나기 밥 공주』), 동생에게 가려져 관심 받지 못한 채로 도벽이 생겨버린 수현이네 널찍한 거실 공기도(방미진 『금이 간 거울』), 우정을 지킬 줄 몰랐던 자신에게 실망한 재희가 서성이는 지하도의 차가운 공기도(최나미 『셋 둘 하나』) 화가는 그려냈다. 축축하거나 말끔하거나 서늘한 푸른색으로 그린 공기는 인물이 처한 환경뿐 아니라 인물의 기분까지 묘사한다. 화가는 특이한 기법을 동원해 강렬한 인상을 만들기보다 이야기의 분위기를 잘 전달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독자 역시 푸른색 공기 속에서 인물의 마음이 되어 보라고 하는 것 같다.


화가는 보이지 않는 공기로 분위기를 보여주듯이 보이지 않는 얼굴로 표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정형외과 출입금지 구역』(신지영)의 진솔이네는 고향인 시골을 떠나 도시의 작은 병원 곁방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병원 허드렛일을 하면서 ‘직원 외 출입금지 구역’에서 살게 된 것이다. 도저히 집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단칸방의 옹색한 삶이 부끄러워서, 진솔이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시 찾아간 시골집이 폐허가 된 걸 보고는 돌아서서 울고, 병원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면 잔뜩 움츠린 채 고개를 들지 않는다. 잘못을 추궁하는 어른들을 피해 ‘출입금지 구역 밖으로’ 뛰쳐나갈 때도 진솔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을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독자가 대신 주인공의 얼굴을 하고 책을 읽게 된다.


정문주의 세심한 그림들은 사춘기 초입 아이들의 불안하고 쓸쓸한 심리를 잘 드러낸다. 그렇다고 마냥 괴롭고 혼란스러운 것은 아니다. 부드러운 선과 차분한 색감, 동글동글한 인체 묘사 덕분이다. 또 『바보 1단』(김영주) 같은 저학년 동화에서는 여기에 유머와 활기를 더한 그림으로 ‘1단 밖에 못 외우는 바보’들을 응원한다. 손발이 큼직하고 움직임도 시원시원해 즐거운 그림이다. 그렇지만 나는 어쩐지 푸른색 공기와 보이지 않는 얼굴들에 더 마음이 간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책 속의 분위기에 젖어, 주인공의 마음을 생각해보는 시간이 좋아서다. 화가의 마음도 비슷할 것 같다.













* 계간 『창비어린이』 2016년 여름호에 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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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6-07-03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기를 그린다,저도 참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 지더군요.비싼 카메라오 유명한 라이카를 쓰는 사람들이 흔히 공기도 찍을수 있다고 자랑(비싼 카메라를 쓰는 이유에 대한 자기변명이긴 한데..)하던데 정말 공기 모습을 어떨지 궁금해 집니다^^

네꼬 2016-07-03 20:4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카스피님. 저도 그림을 보기 전에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보고 나서야, 아 이게 공기구나, 싶더라고요. 화가들은 정말 멋져요. 저는 강아지발(=제 손)을 써서 요새 그려보고 있는데 (이하생략)

기회가 되시면 감상하시면 좋겠네요. (^^)
 















책을 읽다 좋은 문장을 만나면 공책에 옮겨 적고 싶어지는 것처럼, 동화책을 읽다 보면 따라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만나기도 한다. 나처럼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도 왠지 따라 그릴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내 손으로 그려보고 싶을 만큼 정이 가는 그림이다. 이를테면 김유대가 그린 개돌이(『학교에 간 개돌이』)가 그렇다. 빡빡하게 난 짧은 털이며 좀 어벙해 보이는 눈이 영락없는 시골 개다. 만지면 손에 어떤 냄새가 묻을지 알 것만 같은 친근한 개. 그런데도 따라 그리자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친근하면서도 개성 있는 김유대의 그림은 인상적인 ‘캐릭터’를 만들기에 딱 맞다. 『김치는 국물부터 마시자』『떴다 떴다 김치치』는 야채족 마을에서 쫓겨난 김치치가 인간들과 어울려 살면서 겪는 일을 그린 이야기다. 날마다 배추김치 한 통을 먹어야 기운을 쓰는 야채족 김치치를 김유대는 배추 같은 얼굴을 한 낙천적이고 활달한 인물로 형상화했다. 김치치가 이를 다 드러내고 시원하게 웃는 모습은 사진 찍을 때 외치는 “김치”를 연상시킨다. 깍두기를 좋아하는 그의 친구 깍두두 역시 이름에 걸맞게 각진 얼굴에 무 다리다. 동화의 묘사를 그대로 옮긴 것이라 해도 이만큼 친근하게 그려낸 것은 분명 화가의 공로다. 그림 전체의 주조색을 김치를 연상시키는 빨강과 초록으로 한 것도 재미있다. 거의 내내 김치의 우수성을 설파하는데도 이야기가 평면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데는 이런 세심함이 한 몫 했을 것이다.


김유대는 동화, 동시, 그림책, 논픽션 등 다양한 분야의 책에 많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의 그림은 표정과 몸짓이 과장되고 구도가 분방해서 만화 같기도 하고 어린이가 그린 그림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자칫 비슷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상관없다. 그가 아니면 누가 어린이 마음속의 화가 만들어낸 괴물을 그렇게 속 시원하게 그리고(『싸움 괴물 뿔딱』), 태국인 할아버지의 깡마른 몸에 넘치는 힘을 유쾌하게 그리며(『무에타이 할아버지와 태권 손자』), 그가 아니라면 누가 중증장애아의 뒤틀리는 몸을 저렇게 당당하게 그릴 수 있을까(『도토리 사용 설명서』). 인물의 매력을 크게 보는 돋보기를 가진 화가가 앞으로 더 많은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가 그린 동화 캐릭터로 가방도, 수첩도, 스티커도 나왔으면 좋겠다. 곁에 두고 자주 보면서 열심히 따라 그리다 보면 나도 언젠가는 개돌이도 김치치도 비슷하게 그릴 수 있지 않을까?















* 계간 『창비어린이』 2016년 봄호에 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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