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과 책을 읽을 때, 어떤 책을 좋아하는가에 있어서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차이를 별로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책을 어떻게 읽느냐,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어서는 남녀 차이를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이야기 책을 읽을 때보다 사회적 이슈가 담긴 책을 읽을 때 그 차이가 잘 보이는 것 같다. 결론은 같아도 도달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는 뜻이다.
『내가 라면을 먹을 때』를 읽을 때가 그랬다. 책 속에서 한 아이가 라면을 먹는다. 그러는 동안 옆에서 고양이는 하품을 하고 이웃 아이는 텔레비전을 보고 그 이웃 아이는 비데 단추를 누르고 그 이웃 아이는 바이올린을 켠다. 여기까지는 우리나라 보통 아이들의 일상과 다르지 않다. 그저 이 일들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데 흥미를 느낄 때쯤 이웃나라 아이들이 등장한다. 역시 ‘내가 라면을 먹는 동안’ 아기를 보고, 물을 긷고, 소를 몰고, 빵을 파는 아이들. 길에 쓰러진 아이 위로 바람이 불 때, 라면을 먹고 있는 나에게도 바람이 분다.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갖고 모두가 평화로운 ‘진짜 평화’를 추구하자는 메시지가 담긴 책이다.
여자아이들은 책 속의 아이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더 자세히 알고 싶어 한다.
“얘는 왜 아기를 업고 있어요? 엄마 없어요?” (재인)
“어떡해……. 불쌍해요.” (재인)
“얘 다쳤어요? 왜 쓰러져 있지? 배고픈가 봐요.” (은서)
돌봐줄 어른들은 죽거나 다쳤거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더 안타까운 얼굴이 된다. 한 번 더 읽어주겠다고 하면 “너무 슬퍼서” 싫다고 하는 아이도 있다.
남자아이들은 일단 이상하다고 여긴다.
“이거 진짜예요? 어느 나라예요?” (진우)
“어린이한테 일을 시키는 건 불법이라던데.” (규진)
“얘가 파는 빵을 쟤(다른 나라의 쓰러진 아이)한테 사주면 안돼요?” (은호)
실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하면 분한 얼굴로 “나쁜 사람들!” 이라고 주먹을 내리치는 남자 아이도 있다.
아이들 스스로는 남녀의 차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사랑에 빠진 알콩이와 달콩이』는 남녀의 신체, 성향 차이와 연애, 가족의 다양한 형태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다. 3학년 아이들과 이 책을 읽는 날, 각자 생각하는 ‘남자 아이’ ‘여자 아이’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벤다이어그램으로 그려 보았다. 각자 작업을 했는데도 공통된 답이 많다.
남자아이의 특징에 대해 남자아이들은 ‘활발하다/장난을 많이 친다/운동신경이 좋다/물건을 좋아한다/체육을 잘한다/뛰어노는 것을 좋아한다/여자애들을 놀린다’고 했다. 여자아이는 남자아이들이 ‘여자애들을 괴롭힌다/힘이 세다/많이 먹는다/자존심이 세다/힘으로 해결한다/장난이 심하다/꾸미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반대로 여자아이의 특징에 대해 여자아이들 스스로는 ‘미술을 잘한다/남자애들을 싫어한다/인형을 좋아한다/그림을 잘 그린다/자주 싸운다/섬세하다’고 했는데 남자아이들 눈에도 비슷하게 보이는 모양이다. ‘그림을 잘 그린다/예민한 애들이 많다/미술을 좋아한다/운동을 못한다/책을 좋아한다’고 했다. 남자아이 엄마가 보면 서운하시겠지만 ‘공부를 잘한다’는 대답도 있었다. 그렇다면 공통점은? ‘단 것을 좋아한다/음악을 좋아한다/줄넘기를 열심히 한다/친구를 좋아한다/놀기를 좋아한다/사람이다’란다.
“힘이 센 여자아이도 있을 걸? 예민한 남자아이도 있고.”
내가 묻자 재잘재잘 답이 쏟아진다. 얼굴도 예쁘고 말수가 적어서 새침해 보이는 재인이가 구름사다리에서는 제일 무섭게 논단다. 많이 먹기로는 날씬한 은서를 따를 아이가 없다. 은호는 미술학원에 다녀본 적도 없는데 상어를 아주 진짜처럼 그린다. 놀이터의 대장 진우는 반짝이는 귀걸이를 하고 싶어서 양쪽 귓불을 뚫었다. 좋아하는 색이 “핑크”여서 음료수도 꼭 핑크색 빨대로만 마신단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다르다. 그렇지만 현준이, 재인이, 은서, 진우, 규진이, 은호, 현아가 훨씬 더 많이 다르다.
* 비룡소 북클럽 부모님 소식지 <비버맘> 1학년 / 2015년 가을에 쓴 것
* 물론 가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