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책이야』는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에 23주 연속으로 오른 책이다. 노트북은 능숙하게 다루지만 ‘책’은 전혀 모르는 동키와 느긋이 앉아 책을 읽는 몽키의 간결한 대화가 재미있다. 책을 두고 “마우스는 어디 있어?” “스크롤은 어떻게 해?” 엉뚱한 질문을 쏟아내는 동키도, 뚱한 얼굴로 대꾸하다 “책이라니까.” 하고 살짝 성을 내는 몽키도 우습다. 무엇보다 ‘책의 의미’를 곱씹게 하는 점이 인기의 비결이다. 이런 책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니, 스마트기기니 뭐니 해도 아이들에게는 아직 책이 매력을 잃지 않았다는 생각에 안심이 된다. 세준이가 한마디 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니까, 컴퓨터 하지 말고 책 보라는 거죠?”
유머 속에 감춰진 주제를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다니!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아니, 꼭 그렇다기보다…… 책은 책만의…… 좋은 점이 있다는 거지.”
그러고 보면 전 세계 어른들의 걱정은 비슷한 것 같다. 아이들이 첨단기기보다 책의 세계에 머물렀으면 하는 마음이 이 책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만들었을 테니까. 다행히 세준이는 이어서 읽은 『이 작은 책을 펼쳐 봐』에 금세 푹 빠졌다. 책을 펼치면 또 다른 책이, 그 안에 작은 책이 여러 겹 이어지는데, 아름답고 정교한 구성과 독특한 제본 덕분에 말 그대로 책 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무엇이든 만질 수 있을 때 더 잘 받아들이는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스마트기기의 세계와 한편으로는 통한다고 할까.
많은 어린이들이 이미 스마트기기를 가지고 있다. 태인이는 취학 전부터 최고급 스마트폰을 가져서 아이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게임 개발자인 아빠가 ‘어려서부터 감각을 길러야 된다’며 사주신 덕분이다. 3학년 예진이는 스마트폰으로 스케줄을 입력해 스스로 일정을 관리한다. 바쁜 엄마 아빠와 메시지도 자주 주고받는다. 예진이가 스마트폰이 생겨서 제일 괴로운 사람은 단짝 지은이다.
“예진이가 단톡방에서 다른 애들이랑 얘기할 때 정말 정말 저도 갖고 싶어요.”
궁금한 게 있을 때 스마트폰으로 척척 정보를 찾는 것도 부럽단다. 그러나 지은이 엄마는 중학교 입학 전까지는 절대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겠다고 하신다. 남자아이들은 단연 게임 때문에 스마트폰을 원한다. 4학년 윤호는 스마트폰 게임 시간 때문에 엄마와 갈등을 겪고 있다.
“애들 다 학원 다녀서요, 같이 놀 시간이 그때밖에 없어요. 근데 애들이 다 모이는 데만도 30분은 걸리는데 엄마는 한 시간만 하래요.”
2학년 성원이는 스마트폰이 생길 때까지 스마트워치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통화는 할 수 있지만 메시지는 보낼 수 없고 결정적으로 게임을 할 수 없어서 답답하단다.
“그런데 이 시계가 좋은 점도 있어요. 게임이 없다는 점이에요.”
“게임이 없는 게 제일 안 좋은 점이라면서?”
“게임 중독에 안 걸리잖아요.”
스마트폰을 쓰면 게임 중독에 ‘걸리기’ 쉽다는 어른들의 협박 아닌 협박 덕분일까? 아이들은 스마트 기기를 갖고 싶은 만큼 거기 따르는 책임에도 부담을 갖는다. 스마트폰을 갖고 싶어 애가 타는 지은이, 성원이도 “잃어버리지 않고, 망가뜨리지 않고, 게임도 시간 정해서 하려면” 4학년 정도가 스마트폰 갖기 적절한 때라고 한다.
『이게 정말 사과일까?』를 읽은 날이었다. 사과를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이게 사과의 껍질을 쓴 다른 물건은 아닐지, 자라서 집채만 해지는 건 아닐지, 심지어 외계인은 아닐지 등 자유롭게 상상해보도록 하는 책이다. 작가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감탄하면서 책을 읽은 다음, 사과를 모티프로 상상한 것을 그려보았다.
“이 사과는 시한폭탄일지도 몰라.” 세준이는 미운 사람한테 주는 복수용 사과를 그렸다. 사과하는 척하면서 주는 사과가 폭탄인 것이다. “이 사과는 화가일지도 몰라.” 지은이는 정물화 속의 사과가 스스로 화가가 되어 자화상을 근사하게 그리는 상상을 했다. 역시 창의력을 자극하는 데는 책만 한 게 없지. 그건 책 고유의 영역이라고! 나는 싸우지도 않고 이긴 기분이었다. 연우의 그림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 사과는 스마트폰일지도 몰라.”
한입 베어 먹은 사과, A사 로고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에 새겨진 바로 그 사과가 연우의 사과였다. 이번엔 싸워보지도 못하고 진 기분이었다.
* 비룡소 북클럽 부모님 소식지 <비버맘> 2학년 / 2015년 여름에 쓴 것
* 물론 가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