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많은 부분에 있어서 그렇지만 특히 음악에 있어서, 나는 내게 별 취향이랄 게 없다고 생각해왔다. 우워어어 우워어어 소몰이 창법을 구사하는 알앤비만 아니면, 부르면서 울고불고하는 일부 가요만 아니라면 대체로 잘 듣는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앨범 덕분에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 있다. 나는 하우스 비트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아주 끔찍하게.
Daishi Dance - the ジブリ(ghibli) set (더 지브리 셋)
그래, 우선은 내 잘못이다. "지브리"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웃집의 토토로" "원령공주" 이런 절대적인 힘을 가진 명사들, "가장 완성도 높은 수작으로 회자될 작품집!" 이라는 수식어에 그만 덥석 사버린 내가, 내가 일단 잘못했다. 이런 말은 못 보았던 게다. "지브리 사운드의 선명해진 멜로디를 감싸는 가슴 벅찬 하우스 비트". 하우스 비트. 하우스 비트. 그래, 맞다, 하우스 비트. 쿵짝쿵쿵쿵 하는 그 하우스 비트. 앨범 정보에서 보았으되 앨범재킷의 평화로운 분위기에 현혹되어 설마 그 하우스 비트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게다. 한 앨범 내내. 쿵짝쿵쿵쿵 쿵짝 쿵쿵쿵....... 나는 진정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 그들은 하우스 비트로까지 듣고 싶을 만큼 지브리를 사랑한단 말이냐! 이 아름다운 선율들을? '하우스 비트'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 나는 한편 억울하다. 그럼 재킷에 현란한 파동 추상화라도 넣어서 암시를 주었어야지. 저 사슴들이 하우스비트에 맞추어 뛰어다니는 것도 아니고. 억울해 억울해. (발을 쾅쾅 구르며)
망연자실한 데다, 우선 빨리 귀를 씻어야 한다는 강박에 허겁지겁 다른 음반들을 샀다.
The Shins - Wincing The Night Away
이미 앨범도 3장씩이나 내버린 "중년의 미쿡 팝송 밴드"입니다... 라는 보도자료의 표현이 마음에 들어서 샀다. 비트볼뮤직에 대한 막연한 신뢰와 호감이 반영되기도 했고. 멜로디는 (우와, 할 만큼) 아리땁고 아저씨들 목소리는 씩씩하다. Australia, Phantom Limb, Turn On Me 같은 노래들이 좋았다.
[수입] Coldplay -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
명반이라는 소문이 도는 콜드플레이의 신보. 클레어씨의 표현에 따르면 "귀가 뻥 뚫린다". 그런데 역시 클레어씨 말대로 전작들을 듣고 들었으면 더 좋았을까? 내 안목이 앨범 재킷을 보고 지브리 하우스 비트를 사는 수준이니 그간 콜드플레이와 인연이 없었던 터라. 150%짜리를 85%쯤 듣고 있는 것 같다.
♣ 그리고 네꼬 씨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앨범은 이것:
[수입] Sigur Ros - Með suð ? eyrum við spilum endalaust (With a buzz in our ears we play endlessly)
"귓가에 남은 잔향 속에서 우리는 끝없이 연주한다"는 앨범 제목이 꼭 맞다. 아이슬란드의 젊은이들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선율. 나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 본 적이 없는 풍경, 만져본 적 없는 바람을 담아낸 북유럽 음악이 요즘처럼 눅눅한 계절에 듣기 그만이다. 시사IN에서 김작가가 소개한 걸 기억해 두길 잘했지. 하긴 저 앨범 재킷을 보라지. 어떻게 기억을 못하겠어? 앨범 안에 들어 있는 엽서들도 맘에 든다. 화려함과 소박함, 환희와 애수가 조화로운 음반. 가만 눈 감고 들으면 시원한 산 그림자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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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다시 앨범을 쇼핑해야 해요. (저, 언젠가처럼 다시 바쁜 시기가 다가오고 있어요!) 여러분, 도와주세요. 빨리 좋은 앨범들을 추천해주세요. 안 그러면 저 확 이효리 3집을 사버리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