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iott Smith - Either/Or (Special Mid Price)
엘리엇 스미스 (Elliott Smith) 노래 / 이엠아이(EMI)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처음에는 좋게 생각하려고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 내가 그림책을 좋아하는데 지금 막 존 버닝햄을 알게 됐다. 내가 장진 감독을 아주 좋아하는데 <킬러들의 수다>를 오늘에야 봤다. 내가 웃기는 소설을 사랑하는데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방금 읽기 시작했다. 얼마나 좋은 일이야? 그들을 처음 만나던 시절을 떠올려본다. 그러기만 해도 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 좋아서. 나이가 들어서도 이렇게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어서 인생은 참 살 만하다, 고 생각하려고 애써 봤다. 실제로 어느정도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했다. 이름을 듣고도 그냥 지나치곤 했던 나의 무지야 당연히 내 탓이지만, 나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물론 내가 우울함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오해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기타연주를 좋아한다는 걸, 부드러운 목소리에 쉽게 홀린다는 걸 아는 사람 중 누군가 한 명은 나에게 말해주었어야 했다. "엘리엇 스미스를 들어보는 게 어때?" 내 둘레의, 음악 좀 듣는다는 사람들은 책임을 통감할 필요가 있다. 어째서 이 네꼬가 이제야 이 앨범을 들어야 하는가? 이 얇고도 둔한 귀를 가진 고양이가 당신들에게 무슨 잘못을 했다고?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는가, 여기에 그가 있다고.

<Ballad of Big Nothing>을 들으면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였다. 단지 멜로디에 마음을 빼앗겨 울기가 얼마만인가. 마지막 곡 <Say yes>가 끝나면 기쁨에 손이 떨린다. 아, 처음부터 다시 들을 수 있어. 그리고 눈을 꼭 감고 <Alameda>를 들으면서 생각한다. 사실 나는 내 생각만큼 좋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엘리엇 스미스를 추천받지 못한 인생이라면 반성할 필요가 있다. 둘레 사람들에게 잘못한 일들이 얼마나 있나 돌아본다. 예술이 종종 그렇듯이 이 앨범도 나를 몽롱한 상태에서 얼떨결에 착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혹시라도 아직 엘리엇 스미스를 모르면서 자기가 쓰고 있는 감각이 자신의 100%라고 믿고 있을지 모를 어느 안쓰러운 영혼을 위해 이 글을 쓴다. 이토록 아름다운 음악을 혼자만 들으면서 내게 권해주지 않았던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려고 애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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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8-08-02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엘리엇 스미스를 모르면서 자기가 쓰고 있는 감각이 자신의 100%라고 믿고 있을지 모를 어느 안쓰러운 영혼, 이 저예요.

당장 들어보겠어요, 당장!!! 불끈!!

네꼬 2008-08-02 16:22   좋아요 0 | URL
아이고, 여기 영혼 하나 건졌네. 리뷰를 쓴 최대의 보람. (싱글벙글)

마노아 2008-08-02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앨리엇 스미스를 소개해주는 네꼬님을 알고 있는 나는 굉장한 행운아로군요! 저도 들어볼게요! 네꼬님 쵝오!

네꼬 2008-08-02 16:23   좋아요 0 | URL
정말 쵝오? (설마 마노아님도 혼자만 엘리엇 스미스를 알고 살던 그런 사람은 아니겠죠?) 꼭 한번 들어보세요. 제가 바로 이런 정서의 고양이라고요.

2008-08-02 1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8-02 16: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8-08-02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리뷰는 확실히 달라~~~ 사람을 꾀는 요망네꼬가 확실해!!^^
내가 고베에서도 네꼬님 생각하며 네꼬캐릭터를 열심히 찍었는데...컴터에 올려보니 흔들렸어~ 엉엉.ㅠㅠ

네꼬 2008-08-02 16:25   좋아요 0 | URL
잘 다녀오셨어요? (^^) 그래, 저 떼놓고 다녀오시니까 좋았어요? 응? 응? (거의 따지는 수준.) -요망은 모르겠고 요괴는 맞는 것 같은 네꼬 드림.

웽스북스 2008-08-04 23:16   좋아요 0 | URL
으하하하 요망네꼬라니, 너무 귀여워요

mong 2008-08-02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가 오바쟁이 네꼬님에게 엘리엇 스미스의 존재를 누설했을꼬-

네꼬 2008-08-02 16:32   좋아요 0 | URL
오바가 나쁜 거예요?

근데 그게.. 누구더라...? 어? 여기 노란 깃털이...? (내 친구는 mong님 하난 거야? ㅠㅠ)

mong 2008-08-02 17:15   좋아요 0 | URL
오바는 구여운 거에요
클클

네꼬 2008-08-03 11:45   좋아요 0 | URL
그럼 그렇지! 클클. (좋댄다.)

도넛공주 2008-08-02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준일이 최고라구요.(엘리엇 스미스를 몰라서 심술부리고 있음)

네꼬 2008-08-03 11:45   좋아요 0 | URL
응? 양준일이 누군데요? (엘리엇 스미스 몰랐던 심술을 부린 네꼬)

치니 2008-08-03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꼬님 , 저 정말 잘못했어요. (진심 진심)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제가 저번에 서전음 추천할 때, 엘리엇스미스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네꼬님이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나쁜 사람, 저에요 저.
자, 그럼 엘리엇의 이 명반과 버금가는 명반,
즉 이 명반이 들국화라면 장미 쯤 되는 웰메이드 유작 앨범 추천 들어갑니다.
"from a basement on the hill"
*저는 이 중에서 king's crossing 젤 좋음, 아니 사실 다 좋음 ^-^

nada 2008-08-04 15:26   좋아요 0 | URL
엇, 저도 네꼬님이 엘리엇 스미스를 모르셨다는 사실에 충격!
근데 사실 깊은 우물 같은 우울함과 네꼬님은 좀 안 어울리긴 해요.
주변 사람들도 그래서 깜빡했던 게 아닐까요?

네꼬 2008-08-10 22:20   좋아요 0 | URL
ㅠㅠ

마늘빵 2008-08-03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희정을 들어보세요. ^^

네꼬 2008-08-10 22:21   좋아요 0 | URL
ㅠㅠ

무스탕 2008-08-04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모르는 뮤지션이니 잘못 없어요!!

..라고 박박 우긴다 =3=3=3

네꼬 2008-08-10 22:21   좋아요 0 | URL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