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록의 홑이불이 먼 들판에 깔린다

모든 고통이 다

병이 되는 건 아니다

창 아래 취해 쓰러진 그림자의

홀쭉한 속을 들여다본다

내장을 훑던 손들

돈과 섹스에 대한 망상까지 다

소화되고 없다

(이해할 수) 없는 것,

(불끈 껴안을 수) 없는 것,

그게 다 마음이다

나는 나을 것이고

이번 봄은,

아주 길(吉)하다

 

-이영광, <입춘대길>

 

 

 

 

 

-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아주아주 약해질 때마다, 나는 그게 궁금했다. 그때 나는 왜 그렇게 무너졌을까. 나는 접착제 없이 만들어진 프라모델일까, 왜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 걸까. 또 그런 순간이 오는 걸까. 이유를 안다면 훨씬 나았을 텐데. 나는 냉장고 문 앞에, 신발장 앞에, 텔레비전 앞에 쪼그려 앉아 잠깐씩 울곤 했다. 아주 긴 새벽이 그때마다 기다리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그때, 왜 그렇게 되었을까, 이유를 안다면 정말 좀 나았을까. 부디 이 독이 빠져나가기를, 이 고통이 상처가 아닌 것으로 내 몸에 남기를 기도하면서, 때로는 오래 울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나는 나에게 말하였다. 나는 나을 것이다, 참 길하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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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8-07-18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일일까.
무슨일인데 우리 네꼬님, 새벽 세시 반에 이런 글을 쓴걸까...




치니 2008-07-18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 살앙해요.

2008-07-18 0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8-07-18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은 나을 거예요. 지금도 참 길해요. 난 잠든 네꼬님 옆에서 부채질을 해주고 싶어요...

2008-07-18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스탕 2008-07-18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건강하신 네꼬님. 제 기운을 나눠드릴께요.
얼마전 따뜻한 볕을 많이 받고 와서 지금 펄펄 끓어요.
나눠드릴께요. 안아드릴께요..

도넛공주 2008-07-18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몇번 그러다 보면 저처럼 재미있는 인간이 됩니다.내 맘 알죠?

순오기 2008-07-19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니임~~~~~

L.SHIN 2008-07-19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 일일까. 왜 나는 제목을 '나는 강하다' 라고 읽었을까.

네꼬 2008-07-24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은 장밋빛이나 검은색만이 아닌 알록달록한 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좋은 사람들과 나쁜 사람들이 있고, 좋은 사람들도 간혹 나쁜 짓을 하고 나쁜 사람들도 때로는 좋은 일을 한다. 우리는 웃을 수도 있고, 울 수도 있고, 때로는 다시는 웃지 못할 것처럼 울거나, 한 번도 울어 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마음껏 웃기도 한다. 우리는 행운을 얻기도 하고 불운을 얻기도 하며 불행한 가운데에 행운이 올 때도 있다. 이보다 더 자세하게 알고 있다고 하는사람은 그저 아느 체하는 사람일 뿐이다. 2곱하기 2는 5라고 우기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그게 전부이다. 그 사람은 스스로를 독창성이라는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꾸밀 수도 있다.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진리들은 독창적이지도 않고 독창적으로 들리지도 않지만, 그래도 진리는 진리이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진리로 남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나는 다시는 웃지 못할 것처럼 울었다. 그래도 한 번도 운 적이 없는 것처럼 다시 웃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이젠 괜찮다"고 했고 정말 괜찮았다. 거의 괜찮아졌다.

-에리히 캐스트너, 『내가 어렸을 때에』 중에서


그러니까 저, 괜찮아요. 으쓱.


순오기 2008-07-24 21:05   좋아요 0 | URL
네꼬님이 괜찮다니~~ 저도 괜찮아요. 불끈 힘을 내서 더위와 맞짱뜨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