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내가 시(詩)와는 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먼 산정에 서 있는 마음으로 나의 자식과 나의 아내와
그 주위에 놓인 잡스러운 물건들을 본다

그리고 
나는 이미 정하여진 물체만을 보기로 결심하고 있는데
만약에 또 어느 나의 친구가 와서 나의 꿈을 깨워주고
나의 그릇됨을 꾸짖어주어도 좋다

함부로 흘리는 피가 싫어서
이다지도 낡아빠진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리라
먼지 낀 잡초 위에
잠자는 구름이여
고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에서는
철 늦은 거미같이 존재 없이 살아가기도 어려운 일

방 두 칸과 마루 한 칸과 말쑥한 부엌과 애처로운 처를 거느리고
외양만이라도 남과 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이다지도 쑥스러울 수가 있을까

시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이여
자기의 나체를 더듬어보고 살펴볼 수 없는 시인처럼 비참한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거리에 나와서 집을 보고 집에 앉아서 거리를 그리던 어리석음도 이제는 모두 사라졌나 보다

날아간 제비와 같이

 

날아간 제비와 같이 자국도 꿈도 없이
어디로인지 알 수 없으나
어디로이든 가야 할 반역의 정신

  

나는 지금 산정에 있다 ------
시를 반역한 죄로
이 메마른 산정에서 오랫동안 꿈도 없이 바라보아야 할 구름
그리고 그 구름의 파수병인 나.

 

-김수영, 「구름의 파수병」

-

 

어제 오늘은 이상하게도 구름이 참 예뻤다.
언젠가 여행 중에 아주 예쁜 구름들을 사진 찍은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디지털카메라가 없어서 필름에 담아두었다.

어쩐지 구름은 그렇게 간직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오늘은 예쁜 구름을 보고도 사진을 찍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이 시를 떠올려보았다.
「구름의 파수병」
『김수영 전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 시는
사실은 그 의미를 내가 다 알지 못한다.
다만 어딘가에서 넋을 놓고 구름을 보며

'날아간 제비와 같이 자국도 꿈도 없이' 가버리고 싶어 했을 시인이 생각나

애틋할 뿐.
오늘은 나도 그를 따라서 오랫동안 구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를 따라서, 나 역시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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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름
    from perfect stranger 2008-08-11 12:55 
    8월 7일 -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폭염으로 인해 원망스러웠던 적은 간만에 느끼는 감정이다. 엄청난 기온상승은 에이콘 팡팡 돌아가는 사무실 문 밖으로만 나가도 숨이 턱턱 막힌다. 7년 전 플로리다의 날씨가 이랬었던 기억이 난다. 8월 8일   -아주 가끔 하늘에 그림이 그려진다. 램브란트, 모네는 비교 대상이 아니다. 완벽한 명암과 빛의 대비, 단 두가지와 그에 파생되는 색채만으로도 지극히 아름답다. 오늘 - 비 온다는 기
 
 
2008-08-10 2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8-10 2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da 2008-08-11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쑥스러움. 알 것도 같아요.
우리 동네도 오늘 구름이 예뻤는데. 이런 시를 알고 봤으면 더 예뻤을 거 아니에요.
네꼬님은 좋은 시를 어쩜 그리 많이 아세요?

순오기 2008-08-11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나도 이 시를 본 기억이 나서 열심히 뒤적여 봤어요. 내가 가진 '거대한 뿌리'를...그런데 33쪽에 나왔어요. 이 뿌듯함... ^^

mong 2008-08-11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름이 예뻐서 이런 이쁜 글을 쓸 줄 하는 네꼬님이
자랑스러워요

치니 2008-08-11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하늘, 혹은 구름을 보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죠.
그 마음이 이해는 가는데, 전 몇번 찍어보고 포기했어요.
내가 보는 거랑 사진에 찍힌 거랑 도저히 비교가 안되서요.
담아내지 못할 바에야 관두자 싶었죠.
네꼬님, 요새 살짝 우울해보여요, 더위도 물러가고 네꼬님 우울도(아닐지도 모르지만) 물러가길. ^-^

다락방 2008-08-11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프다 ㅠㅠ




도넛공주 2008-08-11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적으로는 훌륭할지 몰라도 자신의 주변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개인적으로는 없애버리고 싶습니다.진심으로.

2008-08-12 0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라니 2008-08-21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먼지낀 잡초 위에 잠자는 구름'이란 바로 시인 자신을 말하는 걸까요?
비록 시를 배반하는 반역의 삶이라 말 하지만 자신의 구름을 바라볼 수 있는
산정을 마음에 간직하고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또 아름다운 일인지..
부조리한 현실에서 이상향의 흔적을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 애를 쓰는 치열함이
느껴지는 시인 것 같아요. 좋은 시 마음에 담고 갑니다. ^_^



네꼬 2008-08-22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리 위에 구름이 둥둥.. 나를 따라다니면서 비를 뿌렸어요. 만화처럼, 내 머리 위로만 비가 오더라고요 며칠 동안....... 시원하고 좋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