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 일요일이라 늘어지게 자다가, 주일이라 교회 끌려 갔다가 11시 예배를 드리고 도망 온 손님 없는 카페 블라. 주인은 내가 오자 도망.
겨울 볕 들이치는 창가 자리에 정성껏 내린 핸드 드립 커피 한 잔과 냉동실의 주인 모를 빵또아 아이스크림을 잘라 예쁘게 접시에 담고 손님 놀이.
'멜론플레이러' ON 시키자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음악이 흐러나온다. 알 만하다 어제 누가 왔었는지ㅋㅋㅋ
혼자도 좋지만. 누군지 모를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도 즐겁다. 안녕하세요, 메뉴판을 드리고 잠시 기다린 후 다시가서 주문하시겠어요?, 카페주인놀이.
맞다. 하고 싶은 이야가 있어 페이퍼 적는거지... 뭣이냐면,
나는 <씨알의 소리> 구독자인데 수령지가 이곳이다. 기다리는 잡지는 아닌데 그래서 받을 때마다 놀라곤 한다. '이게 뭐지?' 잊을만 하면 날라오는 격월간 <씨알의 소리>.
언제 왔는지 모르지만 덩그러니 주인을 기다리는 작은 잡지를 담은 노란 서류봉투를 발견하니 두 가지 감정 동시에 일어난다. 받는 즐거움과 어떤 부담감.
조심스레 뜯어보니 이번에는 <씨알의 소리>가 아니라 <함석헌 연구>라는 논문 모음집이다.
여러 편의 논문중에 <함석헌 평전>을 지으신 이치석님의 글도 있는데 이치석 선생님과 나는 하룻밤, 밤이 지새는 줄 모르고 이아기를 나눈 추억이 있는지라 반가움 마음에 읽기 시작.
하지만 조금 읽다가 책을 덮고 컴퓨터에 앉아 버렸다.
이치석님의 글 때문이 아니라, 함석헌의 정신을 이어가려는 어른들의 마음이 와닿는 게 부담이기 때문이다. 씨알의 소리, 너무나 명징해서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
함석헌을 그리워하는, 기리는 사람들을 만나면 참 좋은 사람들이라는 걸 몸으로 느낄 수 있다. 한 여름에도 긴팔 옷을 입고 수염이 덥수룩한 고요한 할아버지들, 함석헌을 추억하며 깊은 상념에 빠진 눈매를 보고 있노라면 잔잔한 감동마저 느끼곤 했다. .. 그 느낌은 참 좋아, 퀘이커 할어버지, 열정적인 신부님, 그리고 김상봉 선생님도 있고, 김조년 선생님도 만날 수 있고..
나는 씨알의 모임에 나가면 안 되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들... 모르몬교 신자들처럼 선량하고 평온함을 지닌 당신들을 구경하러 가는 거니까. 젋은 청년이 와서 주목을 받기에 눈칫껏 씨알로써의 대화를 나누긴 하나, 삶은 그렇지 못하고 변화하고 싶지도 않은 사람. 그러니까 본의 아니게 속이고 진지한 분들에게 괜한 기대나 갖게 하고는 뒤돌아서서 잊어버리는 그런 사람.
잡지를 받아보고 호기심이나 채우고, 유명 강사나 나오는 날이면 가서 이야기 듣다 오고 그게 내 목적인데 나는 속이려 한 적 없는데 나 때문에 상처 받는 사람이 생기는 건 내게도 상처다.
커피 식었네... 여튼 돌이켜 생각하면 원흉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