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라도 쓰고 자야겠다.
퇴근 후, 아니 두번 째 퇴근 후 둘째 아이의 생일 케잌을 들고 집에 도착하니 열시 삽십분. 낮엔 은행에서 경비를 서고 저녁엔 스포츠센터에서 일를 하는 투잡 생활도 어느 정도 몸에 익어 체력적인 피곤함을 호소하고자 하는 건 아닌데, 절대적 근로시간 과다로 인한 정신적 피로의 영향은 체력적 문제보다 상위의 것인지 결국 체력저하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원인은 마음의 문제이지만 그 결과로 인해 몸이 견디지 못하는 상황에서 선택한 해법은 아이러니하게도 또 다른 노동인데 늦은 시간 집에와 피곤한 몸을 이불 속에 뉘이는 것이 아니라 차를 마시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어서 짧은 수면시간을 쪼개는 것. 이 방법은 매우 효과가 있어서 다소의 부작용을 감수하고서라도 나는 매일 자정이 훌적 넘은 시간까지 차를 다리고, 음악을 듣고, 책을 보는 생활을 한다.
가뜩이나 부족한 수면 시간이 더 줄어든다는 이야기인데 자가처방에 의한 물리치료 때문에 하루평균 수면 시간이 반토막으로 줄어드는 것은 실제적인 부담이 아닐수 없으나, 그러지 않고서는 단단치 못한 마음이 버티기엔 버거운 피로가 쌓이니 나도 어쩔 수가 없는 생활, 패턴인 것이다..
그러면 주말엔 휴식을 취하는 가, 또 그렇지도 않은 게, 주말만 되면 어디서 기운이 솟는지 산행은 기본에 비박은 옵션, 바위는 진이 빠지도록 기어오르니 개체력이라는 말을 듣고도 스스로 응, 하고 인정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예를 들면, 지난 주 일요일에는 여의도에서 마라톤 대회를 참가했었는데 4시간 21분 기록으로 완주를 하고 바로 북한산에 올라가 절친한 스님을 만나 차를 마시고 노닥거리다가 흥에겨워 결국 불광동에서 심야에 임박한 영화마저 한 편 때리고 심야버스를 갈아타고 갈아타 새벽 두시에 상계동 집에 귀가, 두어시간 수면 후 다시 한주를 맞이하는 체력왕다운 면모를 보이기도 할 정도이다.
하지만 실상은 얼굴이 검어지고 검어진 얼굴보다 더 검은 눈아래 그림자가 점점 영역를 넓혀가는 걸 보면 분명 몸이 부담스러워 하는구나, 인식은 하지만 그래도 어쩌나 마음이 지배하는 몸인지라 그래도 기분이 좋아, 살고 있는 거 같아, 그렇지 않아 몸아, 이렇게 말하는 걸.
알라딘은 또 하나의 처방전이다. 조금 더 피로해진다 하더라도 나는 잘 들어주는 이들이 있는 이곳에 내 이야기를 하러 올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