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본 임진왜란 - 근세 일본의 베스트셀러와 전쟁의 기억
김시덕 지음 / 학고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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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조선시대 (선조 25년) 임진년의 추억은 피로 유전이 되어 이땅의 국민이라면 사무치는 감정의 격함을 느끼는 통한의 역사일 것이다. (냉정히 말하면 학습에 의한 결과이겠지만...)

그 아픈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웅 이순신 장군을 기억하며 임진왜란의 상처를 치유하고 그 이야기는 서기 2012년 (명박 4년) 지금에 이르기까지 변함이 없는 듯하다. 
우리는 많은 매체로 임진왜란을 접한다. 광화문 거리 한복판에 우뚝 선 이순신 장군의 동상은 어쩐지 자랑스럽다. 그리고 드라마로, 책으로, 그 외 수많은 글과 말들이 우리에게 임진년 당시 거북선과 이순신 장군을 영웅적인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배우고 익혀서 알고 있다. 전국 각지의 의병들이 이땅을 지키기 위해 투쟁을 하였던 민족 수난의 역사 임진왜란. 그 임진왜란에 대해 일본인들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임진왜란은 동아시아의 세계대전이었다.(나는 전혀 인식하지 못했었다)
한.중.일 삼국이 크게 한 판 벌인 동아시아판 세계대전. 
역사 인식에 시야를 넓히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은 것 같다. 기존의 사실과 정면배치되는 이야기를 들을때 그것을 인정하기란 쉬운일이 아닐테니까.

거듭 확인한 사실- 어느 누구도 입장에서 다유롭지 못하구나 하는 것.

다만 노력을 할 뿐이다. 관조하는 시선을 가지고 어떤 사건에 대하여서 결론내리기 전에 판단유예하는 마음의 자세.

 

어제 불현듯 쓴 숙적의 리뷰로 인해 밤새 이 책을 읽었다.
어제까지는 고니시 유키나와가 주인공이었고 현명한 인물이었는데 오늘은 그 라이벌 가토가 또 다른 모습으로 내게 모습을 드러낸다. 앎 이라는 것. 너무나 편협한 그 지식의 한계.

 

엔도 슈샤쿠의 <숙적>이라는 역사소설에 새삼 놀랐다. 김시덕 작가의 <그들이 본 임진왜란>에서 전하는 모든 역사적 내용이 <숙적>에 담겨있다. 그리고 더 많은 이야기들이......

그들의 진실-

임진왜란은 정복 전쟁이 아닌 정벌 전쟁이었다.

무고한 이웃나라에 노략질하러 침략한 게 아니라 일본에 두 차례 침공했던 고려,원 에 대한 복수 였다. 흠...... 그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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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 2012-03-27 0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임진왜란이 단순한 '亂'이 아니었군요.

예전에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대망)를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 소설로 인하여 내게 입력된 것은 주로 일본적기질 일본적인물, 일본문화라는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 소설 속 '임진왜란'도 지엽적으로 다루어져 '히데요시'라는 인물의 정략적 상황에 기인한듯 하였고.
'징비록'에서도 '난중일기'에서도 나는 동아시아 의 '세계대전'이라는 시각은 전혀 느끼지 못하였는데.


차좋아 2012-03-28 11:57   좋아요 0 | URL
대망은 1권을 잘 읽다가 어떤 이유에선지 멈칫 하였는데 그 후 다시 잡질 못하고 있어요. 두 번식이나요.
대망도 읽어야 하는데....
올 한해는 책은 계획한 것 이상 읽기가 힘들 것 같아요 ㅎㅎ

대전이나 국지전이나 안에서는 그저 날리일 뿐. 세계사적인 시야를 가질 여유가 없는건 아닐까요 ㅎㅎ
그래서 저도 살짝 놀랐어요 ㅎㅎ 그렇구나~ 하면서요.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1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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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히 부서진 야만인들의 이야기. 존쿳시의 '야만인을 기다리며'를 다시 읽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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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엄마 찬양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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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지만 막 추천하고 싶지는 않아요.ㅎㅎ 노골적인 묘사는 꽤나 신선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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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좋아 2011-12-29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뭔가 했더니 역시 100자평이었구나..(북스토어에 처음 갔어요 ㅋㅋ) 북스토어 재밌다^^

다락방 2011-12-29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요왜요? 전 막 추천하고 싶었는데요? ㅎㅎㅎㅎㅎ

차좋아 2011-12-29 18:09   좋아요 0 | URL
그게요 노골적인 건 좋은데 불필요한 감흥이 전달됐어요 ㅋㅋㅋ

다락방 2011-12-29 18:16   좋아요 0 | URL
전 이거 여름에 읽었는데 막 끈적끈적끈적끈적 ㅎㅎ
 
밤으로의 긴 여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9
유진 오닐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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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오닐이라는 미국의 극작가를 나는 몰랐었다. 퓰리처상을 네 번이나 받았고(홈어드밴티지?) 노벨상(국력에 힘입어?...퍽!)까지 받은 극작가. 나는 희극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과연 이 책을 수월히 읽어낼까, 부담스런 마음으로 읽기 시작.  

희극이나 소설이나 사람 사는 이야기 다를 바 없는 거 알지만, 어쩐지 극작품엔 몰입이 안 된다. 익숙하지 않아서겠지... `밤으로의 긴 여로` 극작품이다. 선입견으로 인한 부담을 덜고자 날림으로 읽기 시작했다.
디테일한 배경은 뭉개버리고 지문은 훌쩍 넘어 대화(스토리)에만 집중했다. 먼저 읽어둔 책 말미의 소개글이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밤으로의 긴 여로`라는 유진 오닐의 대표작을 읽으면서 나는 유진 오닐을 만날 수 있었다(희곡 낯설다며 느닷없다)

희곡에 대한 선입견은 그랬었고, 이 책 `밤으로의 긴 여로`에 나는 흠뻑 빠져 읽고 또 읽었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극은 하루 동안의 긴 대화이다. 어느 가족의 하루 동안의 이야기. 그날의 대화는 여느 날과 달랐다. 주인공들은 거실과 주방에서 서로에 대한 감정과 자신의 상처를 드러낸다. 하루 동안의 에피소드이지만 그날의 대화에 과거가 담겨 있고 미래가 그려져 있었다.
나는 그 대화를 읽었는데 어느 순간 생생히 들리는 듯했다. 희미했던 인물들이 살아나고 복색과 표정이 뚜렷해진다. 거실의 등의 노란 불빛이 주위를 밝히고 탁자 위의 위스키 향이 코끝을 스친다. 인물들간의 갈등이 고조되어 언성이 높아짐에 책장을 넘기는 손길과 시선에 긴박함이 서린다.
책을 보면서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기분, 오랜만에 느꼈다. `잘자요 엄마`가 그랬었는데... '밤으로의 긴 여로' 연극으로 꼭 보고 싶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 인물은 유진 오닐의 아버지(티론), 어머니(메리), 형(제이미) 그리고 유진 오닐(에드먼드). 유진 오닐 분의 에드먼드를 제외하고 모두 실제 이름이다. 에드먼드는 어려서 죽은 둘째 형의 이름이다. 이 극에선 죽은 형의 이름이 유진 오닐로 서로 바뀌어져 있다. 객관적 입장을 견지하기 위한 조치라 생각한다.  책을 읽어가면서 희극이라는 걸 잊을 정도로 빠져들어 읽은 이유는 복합적이겠지만, 역시 감정이입이다. 가정이라는 작은 사회, 네 명의 식구, 때론 한몸같이 살갑지만 사실은 다른 객체들. 책을 읽으며 머릿속에 네 명의 배우가 생겨났다.  전혀 다른 배경이고 나에겐 일어나지 않은 상황이지만, 다르지 않았다. 나의 가족과... 그리고(아마도) 세상의 모든 가족들의 마음 한켠에 있음직한 이기적 속내가 그렇다. 가족 이전에 나(사람)이므로.
이입됐었다 말했다. 누구에게? 대답은 모두에게이다. 나는 모든 등장인물을 동정했고 비웃었다.
나를 보는 듯했기 때문이다. 가슴이 시리고 아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내고 그 잔인함에 스스로 자책하는 그 바보 같은 모습을 관객으로서 바라보며 나는 나를 보았다. 자기미화의 욕구를 참지 못하는 스스로를 조소하고 또 그런 내가 가여워 동정하는 세상 속의 나. 내가 그 거실에 있었다.  
아픔에 서러움에 세상의 상처와 매서운 눈길에 마음이 아파 따뜻한 품을 찾아든다. 가족이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바깥 세상이 무섭다. 그래서 안전한 곳 가족의 품에 스며든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나 아닌 사람들에겐 서로 무장해제되어 아픈 곳을 드러낸다. 나 좀 봐줘, 아파, 안아줘... 애써 의연해질 필요 없는 분신 같은 사람. 
가족은 그렇게 위로받고 싶어 가면을 벗고 맨몸을 드러내지만 서로가 위로만 바란다면, 기대가 큰 만큼 실망과 분노는 커진다. 믿었던 만큼 실망도 큰 법일까, 분노에도 거침이 없다. 폭언과 추궁의 매서운 말의 칼날로 섭섭하고 미운 마음을 담아 휘두른다. 지금 아픈 나를, 내 맘같이 살펴주지 않는 가족에게 섭섭한 마음에 서로에게 상처의 말을 휘두른다. 서로 더 깊이...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낸 상처는 내게 자책으로 돌아온다(어쩌면 그게 목적이었을지도...). 자식들은 부끄러움에 자괴하지만 멈춰지지가 않는다. 최악의 상황에 이른 어느 가정에 희망의 빛은 없어 보인다. 남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중산층의 유명 연극 배우의 집에서.

한때는 아름다웠던 메리, 그녀는 돌팔이 의사에게 에드먼드를 낳은 직후 산후 치료를 잘못 받아 모르핀 중독자가 되었다. 가정의 중심인 어머니의 부재는 에드먼드(오닐)에게도 큰 불행이었으리라.  

아버지 티론은 아일랜드 이민 2세로 갖은 고생을 다하다가 각고의 노력 끝에 연극배우가 되었고, 세익스피어 전문 배우가 되었으나, 결국 부富를 쫒아 통속배우가 되고 만다. 어린시절 사무친 가난에의 극복을, 배우로서 성공하여 이뤘음에도 티론의 삶은 만족스러워 보이지 않고 재물의 축적이 가난했던 어린시절의 보상이라도 되는 듯. 맹목적인 땅 사들이기를 한다. 명예와 교환된 그의 재물(땅)은 가족에게 또다른 상처로 되물림된다. 진정한 꿈을 경제적 가치와 맞바꾼 티론. 그것은 메피스토텔레스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의 심정이었을까? 부와 명성를 얻은 배우 티론에게는 큰 상실이었나보다. 처음 티론이 자신의 진정한 꿈을 놓은 이유는 사랑하는 가족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티론은 자기의 꿈을 버리고 가족의 복락의 근원인 돈을 벌기로 작정한다. 하지만 티론은 돈은 있으나 바로 사용할 줄을 모른다. 수전노, 그럴 수밖에... 돈과 바꾼 꿈,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데 그 귀한 것과 맞바꾼 돈을 함부로 사용할 용기가 티론에겐 없다. 사랑하는... 그래서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가족에게마저도. 
  
티론과 메리의 큰 아들 제이미.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염세주의자. 집안에 꼭 하나씩 있는 철없는 망나니 아들.  

유진 오닐 분의 에드워드. 어린 시절부터 형 제이미를 우상으로 여기고 제이미에게서 세상의 철학을 배움. 하지만 아버지를 닮아 육체적으로 강인한 제이미와는 달리 심약하고 예민한 어머니 메리를 닮은 에드워드는 방탕, 방랑한 생활을 못 이겨 폐병에 걸리고 만다.  

오직 돈으로만 과거 가난의 고통을 치유하려는 티론과 평범한 가정을 꿈꾸었으나 임신 후 돌팔이 의사에게 몰핀 처방을 받은 이후 마약 중독에 빠져 자기를 잃은 메리. 그 가정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삐뚤어진 성정의 제이미와 유약한 에드워드. 사회적으로 성공한 연극배우 가정의 내면의 상처는 치유가 힘들어 보인다. 서로를 탓하며 불행의 원인에서 자기는 벗어나려하지만 모두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 자책에서 벗어나려 마약으로 술로 여자로 냉소로...

돌이킬 수 없는 파탄 가정의 불행. 서로를 할퀴며 불행의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에서 인간의 적나라한 이기심과 속된 모습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 바탕에 서로에 대한 사랑과 이해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이해와 용서를 담아 이 책을 썼다,는 오닐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아프다. 이렇게 적나라하게 사랑하는 사람의 치부를 들추는, 그렇게 해서 자기의 상처를 치유하고 가족의 사랑을 역설적으로 이야기 하려 했던 오닐의 마음이 느껴져 아팠다. 

나는, 우리 가족의 모습은... 물론 책의 배경과 소재는 내 그것과 다르다. 하지만 다르지 않았다. 나의 소중한 가족.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하는 가족도 가정이라는 세상에서는 나와 유리되어 있는 존재다. 가족에게마저 네 탓을 하며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넘사스러워 말 못하는 가족간의 갈등과 미움. 그 상처를 미화 없이 드러냄으로써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오닐의 용기의 고백에 존경을 표한다.

애처로운 메리의 처절한 몸부림을 보며 가족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버티려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무너지는 메리의 의지력에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 있을까?
지난날 가난으로 인한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스스로를 굶주림으로 몰아넣는 티론. 티론이 돈 몇 푼 아끼고자 제대로 된 의사에게 진료를 맡겼었더라면... 메리는 먀약쟁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결국 원인은 구두쇠 티론에게 있는 것인가? 
상처로 자기를 가누기 힘든 부모 아래 성장한 또 다른 아픈 영혼 제이미와 에드워드. 이들은 자신의 상처의 근원을 자기 밖에 있다고 믿으려 한다. 가정이라는 작은 세계에서 자기를 변호하기 위해 죄책감을 벗기 위해 선택한 고통의 원인은 사랑하는 가족이다. 맞다 아버지의 인색함과 어머니의 마약중독이 아니었다면 제이미와 에드워드는 지금 겪는 고통을 몰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모에게 불행의 화살을 돌린다 해도 불행은 해소되지 않는다. 더욱 슬프다. 죄책감에 자책하고... 원인은 너무나 많다. 얽히고 섥힌 불행의 원인들 하나하나 짚어가며 되돌릴 수 없는 불행한 과거로의 여로에 빠져들지만 되돌아 갈 수 없는 과거일 뿐,  

해결 방법은 없다. 서로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은 가족이다.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인정하는 것 밖에. 그래서 가족이다. 나는 살면서 이런 상처를 보지 못했다. 피부가 벗겨지고 살과 힘줄이 헤쳐져 뼈가 드러난 상처. 어느 명의도 치료할 수 없는 사무친 병들.이런 병을 잊게 만드는 건 모르핀 뿐이다. 하지만 잠시 잊는 건 치료일 수가 없다.   

내 가족, 발가벗겨짐이 두려워 애써 왜면하는 가족의 상처, 나도 있겠지,,,  나는 오닐처럼 드러내어 울부짖을 용기가 없다. 큰 불행이 없어서일지도 모르나 희노애락의 감정을 다른 사람과 견줄 수는 없는 법이다.  

오닐의 용기, 내게 필요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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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 2011-12-31 0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두집 살림을 하시니 여기다가도 복사해 놓습니다, ㅎㅎ>

진작 읽었으면서 이제야 답글 씁니다.

향편님, '밤으로의 긴 여로'를 참 꼼꼼하게 읽으셨군요.
그리고 가족에 대하여 매우 적실한 소감을 쓰셨습니다.

그래요, 향편님.
몸부비며 사는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동굴.
한 인간의 기본적인 정체는 그 동굴 속에서 모두 형성되지요.
동굴은 숙명입니다.
사랑과 미움, 위로와 상처, 친밀과 소외, 이해와 외면, 미움과 용서, 부끄러움과 고통.

그리고 그것들은 필경 연민으로 남겨집니다.
향편님은 짐짓 초연한듯 말씀하시지만, 뉘에게나 그런 연민 없지 않을겝니다.

유진 오닐의 용기라고 말씀하셨지만 기실 얼마나 주저주저한 용기였을까요.
공연을 막고, 발표를 미루라는 유언까지 남겼으니.

그리하여 우리는 유진 오닐 가족사의 진실을 들여다 보고, 바로 나의 가족에 대하여 생각에 잠겨보는 시간을 얻은 것일테지요. ㅎㅎㅎ

차좋아 2011-12-31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가족사에 간련한소설에서 제 소회를 느끼는바 대로 적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아직 어린 이제 가정을 이룬 젋은 제가 느끼는 감정이 미숙할까 두려웠고 그 솔직이 덜 여문 인격에 근거함이라면 동우님 보시기에 너무나 어려 보일까 걱정이 되었거든요.
그런 생각끝에 오히려 좀 당당히 써 보자 해서 쓴 독후감이었어요.
나중에 동우님 글 읽으면서 좀 놀라기도 했고, 미리 알았더라면 더 조심히 썼을 것 같아요.

참. 동우님이 지난 제 글에 덧글 달아주셨잖아요 그 거에 대한 답글, 제가 덧글을 비밀글로 올렸더라고요.... 바보 같이. 답글이 길어져서 정리좀 하고 다시 올린다는걸 깜박한 듯 싶습니다. 다시 공개로 해 놓을게요^^
 
[이것이 문화비평이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이것이 문화비평이다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4
이택광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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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야구에 열광하는 나에게 어느 한 형이 이렇게 말했었다. 스포츠는 정치를 정치가들 마음대로 주무르기 위해 만들어 놓은 마약이다. 국민들을 정치에 눈멀게 하려는 음모라는 것이었다. 살기 힘들어 나라에 대한 원망을 감당해낼 수 없을 때 국민들의 분노를 다른 데로 돌리게 하려고 다른 나라와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도 가르쳐주었다.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때는 그 말들이 참으로 놀라운 진실처럼 들렸다. 정치가 무엇인지 배워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불끈 솟아오르고, 야구 중계를 빠짐없이 보는 내가 스포츠라는 마약에 허우적거리는 어리석은 놈인 것 같은 생각도 들고 그랬었던 기억이 난다.


이택광은 서문에서 문화비평이란 말이 널리 퍼져 있지만 문화비평이 무엇인지, 누가 문화비평가인지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진 적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문화좌파, 살롱좌파, 주례사 비평, 연예 칼럼 따위는 문화비평이 아니라고 말한다. 물론 영화비평가나 대중음악비평가도 문화비평가가 아니라고 한다. 문화비평가는 문화를 전체적인 관점에서 뿌리에서, 발본적으로 사유하는 자이며, 문화비평은 주제의식을 다루고 궁극적으로 사회적 문제를 지적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문화비평은 문화를 통해 사회의 구조를 드러내는 작업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것이라고 선언한다.


<개그콘서트>의 “마빡이”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관객은 왜 마빡이를 보고 웃었을까? 문화비평가가 아닌 보통 사람들은 슬랩스틱이기 때문이다, 특정한 외모를 가진 정종철 때문이다, 자학적이기 때문이다 라고들 그 인기 원인을 분석한다. 그러나 문화비평가 이택광은 마빡이를 “전체적인 관점에서 발본적으로 사유하”여 마빡이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의 구조”를 “드러내는 진리”라고 분석한다. 후기 자본주의인 이 사회에서 우리는 신자유주의라는 신화를 먹고 살아간다. 신자유주의 신화는 무한경쟁을 설파하지만 실제로는 불평등한 경쟁을 용인한다. 마빡이는 불평등한 경쟁구조를 드러낸다. 개그라는 행위는 더 높은 시청률을 위한 압박이다. 마빡이는 노동의 압박에 대한 비판이며 노동의 구조를 드러낸다. 우리를 웃기는 것은 이렇게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노동의 구조에 대처하지 못하는 출연자의 무기력이다. 근면 성실이라는 근대적 노동에 대한 대중의 혐오가, 이유 없이 이마를 열심히 치기만 하는 마빡이를 조롱하며 웃고 있다. 근대적 노동과 대별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창조성이다. 창조성에 초점을 맞춘 노동시장의 구조는 대중에 항상 변화에 대한 강박을 강제한다. 이런 강박의 스트레스를 이기기 위한 대중의 무의식적 노력이 문화적 형식으로 표출되었고, 창조성의 시대에 적응하고자 하는 대중의 열망이 마빡이의 인기로 이어졌다.


마빡이에 대한 이택광의 분석을 정리해 보았는데 다른 대부분의 글들도 비슷한 구조와 비슷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 이택광의 <이것이 문화비평이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어릴 적 엄청난 진실을 알려주었던 그 형이 생각난 것은 왜일까. 보통 사람들이 흔히 즐기고 말하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그 속에 무언가가 들어 있다고 가르쳐주는 듯한 어투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단순한 재미와 단순한 지식 속에서 내 나름대로 비평하며 사는 내 모습을 들킨 듯한 기분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이택광의 비평들이 진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의 말들이 참으로 흥미롭게 들렸다. 이런 식으로 문화와 정치와 사회를 분석하고 있는 사람이 있구나 하고. 그러나 책을 내려놓으면서 스쳤던 물음 하나, “그래서?” 문화비평이라는 것이 분석이라고 했으니 그래서 라는 내 물음에 이택광이 대답을 해주지 않아도 따질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면 대답은 내 몫인가. 그러고 보고 어릴 적 그 형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가르쳐주지는 않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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