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내가 굉장히 활발하고 외향적이며 누구하고나 친하게 지내고 그래서 발이 매우 넓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MBTI 검사를 하면 'E'가 아니라 'I'가 나온다는 걸 못 믿겠다고 같은 자리에서 한 다섯번쯤 확인하는 사람도 봤다. 그러니까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는 다른 사람의 일면에 대해서 사람들은 납득하지 못하는 면이 있는 것이지. 사실 나는 상당히 내성적이며 (아 저를 아는 분들이 웃을까봐 걱정..ㅜ) 사람들과 겉으로는 잘 웃고 지내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까칠하다'는 얘기도 듣곤 하는데, 이건 정확할 수도 있다. 업무적으로 까칠한 건 기본이고 (흠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상당히 까칠한 편이다. 까칠하다는 게 공격적이다 이런 건 아니고 내가 싫은 유형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어제 회의가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의 회의였는데, 그다지 기대는 하고 가지 않았다. 그 전에 그 중 한명을 스쳐 지나가듯 본 적이 있었고 상당히 같은 공간에 있기 힘들었던 유형이라 아 그 사람하고만 좀 안 섞였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런데, 나머지 한명도 같은 스타일인 거다. 으악. 나는 회의시간 1시간 반 내내 표정관리가 안 되었다. 웃어야 하는데 안 웃어지는.
그러니까 이런 스타일인 거지. 굉장히 크게 얘기하고 말이 많고 그 내용이 허세가 반 이상이고, 그게 허세가 아니더라도 전혀 맥락 닿지 않는 자기 자랑을 넣고... 그리고 웃음은 왜 그리 작위적으로 크게 웃는 지. 싸구려 영업이나 하는 그런 웃음을 서로 좋다고 웃어대는데,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물론 그들은 소위 말하는 엘리트고 그동안 그다지 거칠 것이 없었고 머리도 좋겠지 아마도. 그렇지만 듣는 사람도 생각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 마음에, 속으로 화까지 났다.
저녁 먹자는 거, 정중히 거절하고 나오면서 드는 생각이, 내가 사회성이 부족한가 라는 자책감이었다. 사람들은 종류가 상당히 많고 나도 뭐 그다지 정상범주 내에 들지 못하는 부류일 수도 있는데 너무 남을 판단하고 싫다고 분류해서 대응을 안 해주는 거 아닌가. 내가 이래서 출세라는 걸 못하는가. 뭐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면 좀 둥글둥글 해져야 하는데 말이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왜 내가 자책을 하고 있나, 이게 내 잘못인가...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나는 그냥 잘났든 못났든 솔직하고 담백하고 너무 시끄럽지 않으면서도 할 말은 하는 사람이 좋은데. 왜 사람들은 말의 대부분이 허세인가. 잘난체인가. 나이들수록 그런 게 다 참 소용이 없더라 절실히 느끼는데 말이다. 잘나봐야 얼마나 잘났으며 심지어 정말 잘났으면 모르겠는데 없는데 있는척, 모르는데 아는척, 호탕하지 않은데 호탕한척 하는 걸 못 참겠다.. 흠. 그래, 사회성 부족 맞는 듯 ㅜ 철푸덕.. 비연... 우째... 참아야지, 사회생활하려면..ㅜ
암튼 난 얌전히 집에 와 조용히 집에 장착된 술들을 보며 주종을 뭘로 할까 잠시 망설이다가 아이스와인이 두 병이나 집에 있길래 (다 선물받은.. 나, 술선물 받는 사람) 하나를 따서 홀짝거리며 책을 읽었다. 내 마음의 평안은 책 뿐인가. 근데 정말 평안이 왔다. INNER PEACE...
<캘리번과 마녀>는 이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인데, 몇 장 읽으면서부터 실비아 페데리치가 좋아져 버렸다. 그래서 이 책과 커플을 이룬다는 <혁명의 영점>도 사려고 보관함에 푱 집어넣은 상태다. 이 책 펼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사람한테는 잘 두근거리지 않는 (이제는 말이다.. 예전엔 나도 안 그랬어!) 내가 책을 보고 두근거린다니. <세상의 봄>은 내가 좋아라 하는 미미여사의 에도시대 책이라 읽고 있다. 근데 원래 에도시대 책은 북스피어라는 출판사에서 처음 소개해서 줄곧 내고 있는데 언제인가부터 비채(김영사)가 새치기를 해서 한두 권씩 내고 있다. 이거 좀 기분이 별로인데 싶은게.. 예전에 <벚꽃 또 벚꽃>이라는 책을 비채에서 낼 때 판권에 돈을 더 얹어서 뺏어왔다는 얘길 들어서이다. 그래서 <세상의 봄> 이 책을 살 때 사실 북스피어 출판사에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었다. 개인적으로 북스피어 출판사 대표나 출간되는 책이나 마음에 들어서 왠만한 건 다 가지고 있는데 말이다. 미미여사의 에도시대 소설은 북스피어에서만 나왔으면 좋겠다. 유명하지 않을 때 소개해서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니 대형 출판사라고 은근슬쩍 돈으로 끼는 모양새는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물론 김영사에서도 할 말은 있겠지만 말이다.
결국 다시.. 책 얘기. ..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밥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