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연의 단상들.
1. 코로나 바이러스가 갑자기 확 퍼졌다. 이제 잠잠해지려나보다 라고 잠시 안심한 사이 어느 구석에서는 그게 퍼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젠 접촉자나 여행자만 관리해서는 안되는 단계에 접어든 듯 싶고... 정말 서로 조심하고 바로바로 병원가서 검사받고.. 이렇게 해야만 잠잠해지지 않을까. 이런 일이 있으면 가장 슬픈 건, 병을 빌미삼은 정쟁과, 미움과, 차별이다. 낙인도 포함. 병에 걸린 사람이 죄인이 아닌데, 몰라서 그랬다면 본인도 굉장히 난처할텐데, 신상을 털고 혐오의 눈길을 보내니 아픈 것도 서러운데 갑자기 무슨 벌레가 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될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물론 검사를 회피하고 보균자/확진자라고 하는데 여기저기 사람 만나고 다닌 사람들은, 혼나야 마땅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그들도 피해자다. 이걸 지역으로 묶거나 정치의 도구로 삼거나 하는 자들이 가해자다. 병은 잠잠해질 수 있지만 이런 마음의 상처들은 쉽게 아물지 않는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
난 낙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이 책이 꼭 생각난다. <은유로서의 질병>. 이거 읽고 수전 손택 팬이 되었더랬다. 스스로가 암 환자가 되었을 때 느꼈던 것들을 어떻게 이렇게 사회적이고 철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 라는 점에서 감탄하며 보았던 책이었다.
어떤 특정 질병을 질병이 아니라 처치하기 불가능한 약탈자나 악으로 간주하는 한, 암에 걸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병이 무엇인지 알게 되자마자 사기를 잃을 수밖에 없다 (p18)
권위주의적인 정치 이데올로기는 공포, 가령 외계인들의 지구 점령이 임박했다는 식의 절박한 불안감을 조장하는 데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 실제의 질병들이야말로 이런 일을 벌이는 데 유용한 재료이다. 흔히, 전염성 질병은 외국인들과 이민자들의 출입을 모두 금지시켜야 한다는 요구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또한 외국인 혐오증을 부추기는 허위 선전은 이민자들을 늘 질병(19세기 후반의 예를 들자면, 콜레라나 황열병 또는 장티푸스, 결핵 같은 질병) 보균자로 묘사하곤 한다. (p199)
... 지금 상황에 딱 들어맞는 책 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상기하게 된다. 시간 내서 다시 읽어봐야겠다.
2. <킹콩>의 원작자가 썼다고 해서 그냥 심심풀이로 읽어봤는데, .... 진정 심심풀이였노라는 슬픈 이야기.
나쁘다, 못 썼다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너무 평범한 트릭의 스토리. 다 예상되는... 헐리우드 영화로 만들면 딱 맞을 만한 주인공들의 면면과 내용이 아닌가 ...
"사람의 살은 베어도 아문다오." 카라가 말했다. "채찍으로 맞아도 그 기억은 지나가고 말이오. 하지만 누군가를 겁먹게 만든다면! 불길함과 불안함으로 상대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상대나 상대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떠한 끔찍한 일이 생길 것이라고 믿게 만든다면! 아마 후자가 더 괜챦은 방법일 테지만, 아무튼 그것이야말로 상대에게 절대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길이라오. 고문대보다도 훨씬 끔찍하고, 화형보다도 훨씬 가혹한 게 바로 두려움이오.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보통 사람이 우스운 일로 여기는 것들조차 아주 끔찍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오." (p119)
이 대목에서는 잠시 멈칫. 지금의 상황이랑도 맞는 것 같고... 사람 살면서 맞부딕치는 일들 중에서도 이런 생각 많이 하게 되고. 마음에 뭔가를 남기는 건, 육체적인 고통을 주는 것보다 훨씬 잔인한 일이라는 거. 그래서 마음을 다치게 하면 안 된다는 거. 그것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거.
3. 오늘도 어김없이 고객이 갑질을 했다. 너무 열받아서 육두문자로 입에서 욕이 쏟아져나오는 걸 막을 수 없었다. 갑질을 해도 참 쪼잔하고 구질하고 졸렬하게 한다. 화를 못 이겨 산책을 나가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속에서 온갖 상념이 다 지나간다. 아. 이렇게까지 회사생활을 해야 하나. 내가 그렇게 돈이 아쉽나... 아쉽구나... 젠둥. 그러고는 일어나서 일단 들어와서 가방 챙겨 퇴근해버렸다. 오늘 펄펄 뛰었지만, 내일은 가서 원하는 대로 해주고 있을 나의 비루한 일상이, 정말 몸서리치게 싫은 날이었다. 그냥 확 던지고 나와야 하는데, 사표를. 모든 직장인들은 가슴에 사표를 품고 다닌다고 하지만... 그것도 가끔 위안이 안 될 때가 있다는 게 슬프다. 사표 던지면 누구 손해냐. 고객은 꿈쩍도 안 하겠지. 내가 힘들지 뭐... 이런 생각이 자괴감과 함께 몰아닥쳤던 하루였다.
4. 그러나, 요즘 살이 쪄서 술과 음식을, 특히 저녁의 술과 음식을 멀리 하고 있는 나는, 이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지도 못하고 쿠스미 티 홀짝 거리며 알라딘에 들어와 있다. 아. 빨래했다. 다 빨아버렸다. 탈탈 털어서 널면서 나의 스트레스도 탈탈 털어져나가길 기대했더랬지... 빨래만 털렸다. 내 스트레스는 피부처럼 남아 있네.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하나... 하다가 내일은 금요일. 그래 하루는 날 놓아주자, 라고 나혼자 결정해버렸다. 내일은 집에서 와인과 돈까스 안주라도 먹기로. 기분이 좀 나아지려는 거 보면.. 인간이 갈수록 단순해지는 것 같다. 잠시 슬픔. 아 몰라.
5. <보이지 않는 가슴>은 출퇴근 시간에 짬을 내어 착실히 읽고 있다. 이제 1/3 조금 넘어가고 있다. 사실 경제학자가 '돌봄 경제학'이라는 걸 들고 나올 때부터가 신기방기한 일이다. 주류 경제학을 보면 생산과 효율 이외엔 생각하지 않는데, 역시나 같은 경제학을 전공해도 사람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냐에 따라 이런 책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남성의 행위와는 달리 여성의 행위는 비용과 편익의 합리적 계산에서 비롯되거나 경제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이 하는 일은 본능적이고 도덕적인 일, 자연적이고 신이 부여하는 소명에 따라 행해지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여성이 책임을 받아들이기 거부했을 때 그것은 본성에 배치되고 사악하다고 치부되었다. (p37)
그렇다. 돌봄 행위의 많은 부분들을 여성이 담당하고 있다, 이 사회에서는. 직업도 돌봄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여성들이다. 좋다고 하자. 하지만, 이 행위에 대한 정당한 평가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고, 이걸 뼈저리게 직시하지 않으면 이 돌봄 행위는 영원히 이렇게 본능에 의존하고 마치 원래 그런 사람들이 있었던 양 취급 받으며 행해져야 할 것이다. 심지어, 여성들이 이걸 거부한다거나 보다 인정받기 원할 때, 굉장히 나쁜 사람으로 다루어지는 것.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당하고 있는 현실. 이걸 알아야 한다. 누가 자기희생을 여성의 본능이라고 말한단 말이냐.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이타주의'일 뿐이다.
최소한의 이타주의가 없이는 사회를 재생산할 수 없다. 서로를 돌보는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면 그 책임이 무엇이며 어떻게 강제되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의 본성이나 자비로운 도움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기 때문에 일정 정도의 보상과 처벌이 아마 필요할 것이다. 친절이라는 젖은 마르지 않는 샘에서 자연적으로 솟아 나오는 것도 아니고, 수요와 공급 법칙에 따라서 생산되는 것도 아니다. (p53)
따라서 반드시 필요한 이 이타주의라는 것. 이것의 본질을 보고 어떻게 할당할 것인지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정하는 것은 사회의 몫이다. 보상이라는 것은 돈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업무환경을 제대로 갖춰주는 것도 포함될 것이고 그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한 가치를 높이 사주는 것도 포함될 것이다.
돌봄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훈련, 임금, 노동 조건을 개선하면 이직률은 낮아지고 돌보는 이와 돌봄을 받는 이의 개인적 유대 관계를 더 탄탄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전문가 자질을 향상하고 '내부 고발자'가 고용주의 보복에서 보호받을 수 있게 되면 노동자가 스스로 돌봄의 질을 선도적으로 감시하는 역할을 떠맡을 것이다. (p104)
흥미로운 책이다. 이거 읽다가 지하철 못 내리고 몇 정거장 지나가는 바람에 출근버스 놓칠 뻔 했다. (오 아멘..) 끝까지 읽고 한번 더 페이퍼 혹은 리뷰 쓰는 걸로. 아 배고파. (급반전) .. 이 번잡스러운 세상과 나의 상황 속에서도 유일한 즐거움은 독서라는 것을 얘기하며 휘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