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테라 6 - 완결
후루야 미노루 지음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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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온통 11월의 암울하고 절망적인 기운으로 가득 찼다고 외치는 <두더지>를 그리던 와중에 작가 후루야 미노루는 잠시 봄날 오후의 산책이라도 필요했던가 보다. <두더지>의 연재 사이에 시작된 <시가테라>는 학교폭력, 상해, 강간, 청부살인 등 섣불리 접근하기 꺼려지는 힘겨운 이야기를 하면서도 분명 숨막히는 긴장과 절망과는 한발 떨어져 밝은 색조를 띠고 있다.
'시가테라'는 '독어가 몸에 지닌 독'을 의미한다. 독은 공격의 수단이자 동시에 자신을 방어하는 잠재적인 무기가 된다. 고교생 오기노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지닌 시가테라의 힘으로 쉽사리 지나기 힘든 성장의 어두운 터널들을 애써 버텨나간다. 성장기의 거부할 수도 피해갈 수도 없는 고통의 시간을 관통하는 데 필요한 여과장치를 그는 오토바이와 여자친구에게서 찾는다. 그러나 젊음의 시간은 그렇게 알맞게 식은 죽처럼 편하게 넘길 수 있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오기노는 망가지고 배신당하고 좌절한다. 자신이 불행 덩어리가 아닐까 고민하며 악몽을 꾼다. 눈물과 콧물 범벅의 시간들을 보내며 오기노는 강한 어른이 된다. 스스로의 선택으로, 자신이 지닌 독으로 서서히 단련하여 어른이 되어 강해진다. 
'젊음의 푸가'라는 부제가 붙은 <시가테라>, 이나중에서 징글징글하게 귀여운 악동의 시간을 보내고, 그린힐에서 맘껏 오토바이를 타며 일탈을 맛본 작가는 젊음 또한 시가테라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자신을 지키면서 타인을 죽일 수도 있는 독, 이 양날의 힘을 지닌 독을 누구를 향해 어떻게 쓸 것인가는 독을 쥔 자에게 달려 있다. 독을 지닌 모든 것들이 현란한 겉모습으로 주의를 끌어 옭아매듯, 젊음의 어설픈 풋내는 마지막 한 모금을 넘길 때에야 쓴맛의 정체가 무엇인지 드러낸다. 타인을 향했던 독이 자신을 향해 있음을 피를 흘린 후에야 알게 되는 것이다. 오직 지나간 시간에 대해서만 그리워하고 푸념할 수 있으며, 태풍에 몸을 맡긴 그 시간에는 안타깝게도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곁눈질은 허락되지 않는다. 해서 젊음은 모두에게 주어지는 푸르른 열정의 독인 것이다.  
전봇대 뒤에 숨어 목을 길게 빼던 괴물은 벽장에서 얼굴을 내밀고 성장기의 변방에 다다른 오기노에게 마지막 질문을 한다. 정말로 이대로 잘 될 거라고 생각해? 오기노는 말한다. 나도 알아. 공부해서, 대학에 가서, 사회에 나가서, 어른이 돼서, 그래서..

그때 상상하던 것보다 몇 배로 괜찮은 사회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자신을 지나치게 의심하거나 집요하게 따지거나 불행 덩어리라고 저주하는 일은 없어졌다.
불안정함의 결정체였던 나는 이제 존재하지 않아...
난 재미없는 녀석이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점잖은 표정의 어른이 되어 모범답안의 수순을 걷는다면 망상의 폭주가 특기인 사랑스런 오기노가 아니다. 작가는 독자만큼 오기노에게 애정을 갖고 있었나 보다.
'재미없는 어른'이 되었다고 스스로 믿었던 오기노에게는 다행히도 훈풍의 시가테라가 남아 있었다.
예의 그 폭주하는 모습을 보이며 오기노는 이렇게 말한다.

내일... 두카티나...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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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03 2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uperfrog 2005-11-03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네.. 즐겁게 완결되었어요. 아, 그리고 그 잠깐 스치는 생각은 제게 몹시 영광인걸요? 마나마나를 열심히 들여다보긴 했지요..^^

날개 2005-11-03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대한 금붕어님의 리뷰가 올라올걸 기대하고 있었어요..^^*
리뷰 넘 멋집니다..!

superfrog 2005-11-03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오기노 너무 귀엽지요? 어른이 된 오기노도 귀여워요.^^
후루야미노루님의 다음 작품은 뭘지 궁금합니다..!

어룸 2005-11-04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넘 멋집니다, 꼬옥 읽어볼께요!! ^ㅂ^)b
(아...낑깡모가 이작가 좋아하는데 안사려나...^^a)

2005-11-04 0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uperfrog 2005-11-04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oofool님, 아, 낑깡엄마가 후루야미노루님을 좋아하시는군요? ㅎㅎ 아무래도 저랑 친구맺어야겠어요..^^ 시가테라 보세요, 재밌어요..^^
아침 일찍 다녀가신 님, 님이 편협하심 저는 어쩝니까..;; 만화는 긴 시간 감각이 적응할 시간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해요. 익숙해지지 않으면 놓치고 못 보는 부분들이 많거든요. 하긴 책이고 그림이고 음악이고 다 마찬가지죠. 헌데 만화를 너무 쉽고 가볍다고 생각하거든요. 시가테라 같은 만화만 봐도 절대 아닌데 말이죠. 그 책, 보셨군요. 동경만경을 볼 때는 동경만이, 그 책을 볼 때는 히비야공원이 그렇게 그리웠더랬죠. 가본적도 없으면서 말예요..^^

쎈연필 2005-11-04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 벌써 완결인가요 ㅠ.ㅠ

superfrog 2005-11-04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마님,ㅎㅎ 네, 끝났어요. 글고 보니 님과는 시가테라로도 인연이 있군요!^^
저는 맘에 드는 결말이었답니다..! 꼭 보세요..^^

panda78 2005-11-05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저는 후루야미노루님과는 코드가 안 맞아서 안 보지만, 금붕어님의 리뷰는 정말 멋져요. 저도 철썩! ^ㅂ^

panda78 2005-11-05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og in Car-Alex Colville 모모 생각나서 얼른 업어 왔어요. 모모보담 덜 이쁘고 더 꺼멓긴 하지만.. ㅎㅎㅎ

superfrog 2005-11-05 0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 추천 감사드려요..^^;; (옆구리 좀 아프시죠??!)
판다님, 후루야 미노루 놓치기에는 좀 아까운데요.. 시가테라는 다른 작들과는 다르니 한번 다시 시도해보세요.. 아, 저는 참 많이 존경하는 작간데..^^;;;
ㅋㅋ 요즘 모모가 반항기인지 말도 잘 안듣고 그래요.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건가..;; 그림 감사합니다!!^^

플레져 2005-11-10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인을 향해 품었던 독이 곧 자신을 향한 것이라니요..............
이렇게 뼈저린 말은 근래에 첨이야요.
멋진 리뷰여요! ^^

115563


superfrog 2005-11-11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시가테라 제가 좋아하는 작가 작품이에요..^^ 오죽하면 제 서재 소개글에도 나왔겠어요..ㅎㅎ
음, 음전한 님과 맞을지는 좀 우려되어 감히 추천은 못하겠어요..^^;;
독이 가진 의미를 좀 잘 풀어내야 했는데 머릿속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기는 참 어려워요. 그러니 님처럼 글을 잘 쓰시는 분이 어찌나 부러운지..ㅠ.ㅜ

2005-12-07 1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dddpower 2006-04-22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는 천재입니다

superfrog 2006-05-06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ddpower님,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반갑습니다.!
 
내 말 좀 들어봐
줄리안 반즈 지음, 신재실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8월
품절


"인생도 은행일 같았으면 좋겠어." 내가 말했다. "은행일이 쉽고 간단하다는 말은 아냐. 어떤 일은 굉장히 복잡하지. 그러나 열심히 하면 결국 이해할 수 있어. 아니면 어딘가에 그걸 이해하는 누군가가 있지. 설사 일이 다 끝난 뒤, 이미 때가 늦은 뒤라도 말이야. 인생을 사는 데 문제는, 이미 때가 늦은 뒤라도 여전히 알 수 없는 것투성이라는 거야."-55쪽

나도 항상 아이들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을 완전히 이해한 적은 없었다. 나는 아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 왜 아이들은 사소한 일에 그렇게 법석을 떨고, 훨씬 중요한 일은 무시하는 걸까? 아이들은 텔레비전 모서리로 달려가서 부딪치고, 머리가 깨졌구나 싶으면 멀쩡하게 일어난다. 그리고 기저귀 열댓 장은 댄 것 같은 엉덩이로 가만히 주저앉아 그제야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어찌된 일인가? 왜 아이들에겐 균형 감각이 없을까? -77쪽

<사랑, 그리고>. 이 주장은 단순하다. 세상은 두 가지 범주로 나뉜다. 인생의 목적, 기능, 기초, 그리고 주된 선율은 바로 사랑이며, 그리고 다른 모든 것-다른 모든 것-은 그저 <그리고>, 즉 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첫 번째 범주다. 하지만 그 밖의 사람들, 불행한 대다수 사람들은 사랑보다도 주로 인생의 <그리고>를 믿는다. 그들에게 있어 사랑은, 그것이 아무리 기분 좋은 일일지라도 일시적인 젊음의 광풍일 뿐이며, 기저귀를 갈아 주는 의무로 향해 가는 시끄러운 서곡일 뿐이다. 그들은 실내 장식품보다 더 확실하고 불변하며 견고한 것은 없다고 믿는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나누는 유일한 방법이다. -177쪽

올리버의 이야기를 듣고는, 흡혈귀 이빨에 수갑 한 쌍을 가진 인물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작 만나 보니 파이프를 물고 있는 아주 멋진 노인으로만 보였다. 올리버는 분명히 아버지를 미워하지만, 거기엔 어떤 다른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 예를 들면 아버지가 강낭콩을 칼로 찍어 먹는다든지 비제가 '카르멘'을 작곡한 것을 모른다든지. 올리버는, 아마 당신도 눈치 챘을 테지만, 속물이다. -216쪽

내가 얻은 결론은 이겁니다.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면서,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능력은 서서히 상실하는 반면, 상대방에게 상처 입힐 능력은 줄지 않고 그대로라는 것이죠. 그리고 물론, 상대방에게 상처 입힐 능력이 줄면,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능력은 서서히 늘겠지요. -278쪽

단 한 번의 경험만으로도 평생의 진리가 되는 것이 간혹 있답니다. 그런 진리들은 뼈에 사무치도록 당신을 짓누르지도 않아요. 그리고 한 번쯤 과연 그럴까, 하고 의심해 볼 여지도 있고요. 하지만 만약 그런 진리를 두 번 경험한다면, 그 진리는 날 짓눌러 숨 막히게 할 겁니다. 난 <이게 진리다> 따위의 경험을 두 번씩이나 하고 싶진 않아요. 그래서 내가 그런 진리, 바로 결혼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랍니다. 계란은 하나면 족해요. 당신 또 뭐라고 한마디 하고 싶죠? 계란을 깨지 않고는 오믈렛을 만들 수 없다고? 그래요, 하지만 나는 오믈렛을 안 먹어요. -279쪽

물론 올리버는, 대개의 남자들처럼, 본질적으로 게을러. 남자들은 한 가지 큰 결정을 내리고 나면, 그다음 몇 년간은 작은 산봉우리의 사자처럼 일광욕을 즐기며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니까. -3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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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frog 2005-10-28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이카님, 책 아주아주 재밌게 잘 읽었어요..^^
이 책 읽고 줄리안 반즈 책 두 권 더 주문했지요.ㅎㅎ

2005-10-28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10-28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uperfrog 2005-10-28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 보고 고쳤어요..^^;;;
곰왔습니다~~
님도 보시면 재밌을 거에요.^^

superfrog 2005-10-28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3:13 속닥님, 근데요, 진짜 계란은 하나로 족할까요..?^^ 아님 하나도 필요없을까요..? 인생이 은행일이 아니니 알 수가 없겠지요..ㅎㅎㅎ

플레져 2005-10-28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설가, 같은 줄리안 반즈.
내가 그녀를 만나기 전, 도 재밌습니다. 유사품 주의!

Laika 2005-10-28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좋아하실줄 알았어요...^^ 저도 어서 속도를 내서 읽어야하는데...(시작도 안했어요..) 나머지 책은 금붕어님보다 더 늦게 읽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superfrog 2005-10-28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독설가! 아마 작가는 올리버에 더 투영돼 있을 듯.
어라.. <내가 그녀를 만나기 전>은 주문 안 했는데..
<태양을 바라보며>랑 <플로베르의 앵무새> 했거든요.^^
다 읽고 <내가 그녀를 만나기 전>도 읽겠습니다!! 플레져님이 추천하셨는데 덥석 집어들어얍죠.ㅎㅎ

superfrog 2005-10-28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이카님, 제 이 조석으로 변덕을 부리는 취향을 알아보셨군요, 감사!^^
책이야 맘내킬 때 읽으면 되지요..ㅎㅎ 마감이 있는 것도 아닌데.

비로그인 2005-10-28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 공감!! 속이 다 시원하뉑..흐흐..

Volkswagen 2005-10-29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그녀를 만나기 전>흐흐 ^^ 읽다 보면 그 남자를 죽이고 싶은 충동이 큭큭!

panda78 2005-10-29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태양을 바라보며]가 궁금하더라구요. 리뷰 기다립니다. ^^

superfrog 2005-10-29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이님, 어느부분에서 공감이요??? 궁금해요..!
폭스님, 아.. 이거 참, 내가 그녀를 만나기 전을 꼭 읽어야겠네요..^^
판다님, 흐흐.. 저 유연한 움직임! 태양을 바라보며, 리뷰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05-10-29 1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10-29 1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10-29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uperfrog 2005-10-29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3:15 속닥님, 정말이요?? 아.. 이거 참, 받아도 되나요?^^(사실은 입이 귀에 걸렸음^^;;;) '고맙습니다!!'할게요. 아.. 졸지에 줄리안반즈 전집을 구비하게 되는군요.^^ 감사드려요..! p님..ㅋㅋ
13:30 속닥님, 리뷰는.. 음..^^ 기회와 능력이 닿음 노력하겠습니다요. 지난번 님 글 너무 좋아서 콩닥거리며 읽었는데 쉽사리 댓글을 달 수가 없었어요. 그런 글들이 있어요.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서 그냥 조용히 뒤돌아 나오게 되요. 그런 분들이 있어서 이 방을 못 버린답니다.^^
 
불륜과 남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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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에서 기어다니는 수많은 벌레처럼, 수많은 방향으로 뻗쳐 춤을 추듯 지면을 기다가 마침내 모든 물이 한 거대한 틈새로 쏟아져 내린다. 정말 에로틱한 광경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의미를 그대로 재현한 세계가 이 세상에 출현해 있었다. 음과 양, 남과 여, 뭐라 하든 상관없다, 상반되는 두 힘이 부딪치면서 지구를 만들어낸 그 경치의 박력에 나는 그저 압도되어 어질어질하면서도 눈길을 돌릴 수 없었다.

마치 직접 헬기를 타고 눈아래 이과수 폭포를 내려다보고 있는 착각에 빠져 현기증이 인다.
누군가의 말처럼 세상에는 바나나가 먹히는 사람과 바나나가 먹히지 않는 사람이 있다. 다행스럽게도 내게는 바나나가 먹힌다. 먹히는 정도가 아니라 그의 글 속에 늪처럼 빠져 허우적거릴 정도다. 반갑게 새로 만난 요시모토 바나나의 <불륜과 남미>는 '불륜'과 '남미'에 관한 단편집이다. 불륜과 남미를 이야기하며 어둠과 죽음을 말한다. 일상에서 '비일상적'인 불륜은 원시의 힘을 지닌 남미에서 '비일상'의 옷을 벗는다. 일상에서 '비일상적'인 죽음은 강렬한 탱고의 선율이 흐르는 남미에서 일상이 된다. 일상에서 불륜의 사랑을 겪는 기쁨도, 연인의 불륜으로 생겨난 슬픔도 채 몸으로 느끼지 못하던 그들은 이곳 짙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 남미의 거리에서 사소한 것들, 일테면 거리와 나무와 공원 같은 것들을 방아쇠삼아 코피가 흐를 정도로 생생한 일상의 감정을 되찾는다.
바나나는 불륜의 사랑을 아름답다 칭송하거나 혹은 불륜에 빠지지 말라고 어불성설 충고하지 않는다. 그저 감정이 흐르는 곳으로 몸이 가도록 내맡기라 한다. 어느날 내 사랑이 믿음을 잃더라도, 오랜 시간 애써왔던 나날들이 무너져 내리더라도 그는 '우리 삶에 조금이라도 구원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작은 손을 내민다. 사랑이건 불륜이건 다 괜찮아, 이세상에 살아남았건 저세상으로 가버렸건 다 괜찮아, 하고 말하는 것 같다. 괜찮아, 그렇게 안간힘 쓸 필요 없어. 이제까지 잘 해왔잖아. 조금은 발걸음을 늦춰도 돼. 잠시 앉아 쉬어가도 돼,라고 광장 한 귀퉁이에 앉으라 잡아끌며 등 뒤에서 가만히 어깨에 손을 얹어주는 친구같다. 바로 하얀 스카프를 두르고 광장을 돌며 돌아오지 않을 자식을 향한 마음을 표현하는 아르헨티나의 엄마들에게 건네는 하치 하니이다. 뜨거운 물에 꿀을 타서 위스키와 레몬즙을 떨어뜨린 하치 하니를 마시며, 결코 치유할 수 없는 슬픔을 엷게 엷게 희석시켜 나가는 방식인 것이다.
바나나는 못내 누가 알아챌까 숨기며 마음졸였던 마음속 '조그맣고 깊은 어둠'을 더이상 부끄럽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이 '어둠'은 나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성장해 온 나의 일부분이고 함께 나이먹어 성장해가며 다른 모습으로 변할 풍요로운 것이다. 그렇게 그의 글을 읽으면 '조그맣고 깊은 어둠'이 치유되고 치유할 수 없는 슬픔은 그 색을 바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어스름 저녁거리를 걸을지도, 에비타의 묘 앞에 설지도, 이과수 폭포를 발아래 둘지도 모를 더없이 운 좋은 게 분명한 어느날, 나는 바나나의 저 글귀를 떠올리리라. '그 광경을 몇 번밖에 볼 수 없는 생명의 허망함을 저주'하리라. '그 숨막히는 아름다움 속에서' 옆자리의 사랑이 불륜이든, 타인이든, 혹은 죽음의 빈자리든 그게 무슨 상관일까. 살아가는 긴 시간 속의 한 장면일 뿐, 온전한 내 몫의 사랑스런 작은 어둠일 뿐, 옆자리의 그와 함께 길거리 신발가게에서 싸구려 파란 운동화를 똑같이 사서 신고 남미의 거리를 어슬렁거리고 싶다. 탱고의 선율이 어렴풋이 들려온다면 더없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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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ika 2005-09-22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이건 불륜이건 다 괜찮아" - 요즘 이렇게 말하는 책이, 영화가 많은거 같아요....
전 이런 리뷰가 안나와서 글을 못 쓴다니까요..ㅎㅎ
(9월엔 목요일에만 리뷰를 쓰시기로 하셨나요? ^^)

superfrog 2005-09-22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라, 목요일이군요. 그래봐야 아래 책이랑 두 권이에요..ㅎㅎ
오늘 급한불을 끈김에 밀린 숙제 하나 해치웠어요. 읽은 지는 며칠 됐는데 계속 끙끙, 버려두고 뒷마무리 못한 일처럼 말이죠.
책 한 권 읽고 나면 휘리릭 머릿속에서 멋진 리뷰가 생겨나면 얼마나 좋을까요..ㅠ.ㅜ

플레져 2005-09-22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시토모냐, 요시모토냐 혼자 헷갈려 했다는...ㅎ
하치 하니 한 잔 하기 딱 좋은날이네요. 땡스투해요. 당장 사고 싶어졌어요.

superfrog 2005-09-22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요시토모 나라, 요시모토 바나나..ㅋㅋㅋ 아, 헷갈려!
전 예전에 둘이 형젠줄 알았잖아요..ㅋㅋ
아니아니.. 님은 저한테 바람넣으시고 아직 안 읽으셨단 말씀?!
하긴 바람을 안 넣으셨어도 보관함에는 넣어놨던 거랍니다.
요시다슈이치 때문에 덥석 함께 주문했지요.^^

hanicare 2005-09-22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은 것에도 경련하는 마음을 바나나는 부드럽고 대범하면서도 섬세하게 쉬게 해줍니다. 아주 큰 충격을 받았을 때 바나나는 유동식처럼 내게 스며들었고 그녀의 책이 없었다면 나는 더 큰 후유증에 시달렸겠지요. 리뷰, 한숨을 쉬며 읽고 또 읽습니다. 오늘 문득 멜세데스 소사가 떠올랐는데, 아르헨티나와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참, 여러 인물들을 떠올리게 하네요.......

superfrog 2005-09-22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흠.. 저 보잘것없이 감상만 앞선 리뷰에 달린 님의 댓글에 저는 감탄을 해요. 그래, 맞아.. 이 말이 하고 싶었던 거야, 하고 말이죠.
아주 큰 충격을 받았을 때 바나나는 유동식처럼 내게 스며들었고 그녀의 책이 없었다면 나는 더 큰 후유증에 시달렸겠지요.
절대 공감해요. 바나나는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자꾸자꾸 속삭여주는 것 같아요.

비로그인 2005-09-23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그 바나나가 먹히지 않는 사람인데 이 리뷰를 읽으니 꼭 읽고 싶어지네요..^^

'바나나는 못내 누가 알아챌까 숨기며 마음졸였던 마음속 '조그맣고 깊은 어둠'을 더이상 부끄럽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님이 쓰신 이 부분에서 괜히 혼자 아침부터 위로받고 갑니다..

치니 2005-09-23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hanks to 라는게 이런 기능이었군요. 위에 어느 분 땜에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ㅋㅋ 멍청한 치니. 아무튼 이번엔 하고 갑니다.

superfrog 2005-09-23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史野님, 님과 요시다슈이치라는 접점이 있어 바나나도 같을 줄 알았는데 아니셨군요..^^
바나나의 글 속에서 만나는 인물들은 참으로 따뜻해요. 저 '어둠'의 이야기는 제대로 표현됐는지 모르겠지만 읽고 나서 안도감이 들었달까, 그래, 괜찮구나..하는 생각.
치니님, 잘 지내셨지요? 땡수투요?^^ 님도 재미나게 읽으세요. 사진이랑 그림도 느낌이 좋아요. 아, 아르헨티나에 마구마구 가고 싶어진답니다..ㅎㅎ

2005-10-04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uperfrog 2005-10-05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닥님, ㅋㅋ 저도 첨 봤을 때 3초 정도 갸우뚱했지요.^^
마찬가지로 toofool님이 잘난척하라 멍석 깔아주셨는데도 못하고 있다지요..ㅠ.ㅜ

2005-10-06 1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10-06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윌리엄 모리스 세상의 모든 것을 디자인하다 윌리엄 모리스
이광주 지음 / 한길아트 / 2004년 6월
품절


"예술이 낳은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름다운 집이라고 답하리라.
그 다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름다운 책이라고 말하리라."

-시인이자 디자이너, 공예가, 책 제작의 명장(名匠), 사회개혁가로서 모든 분야에서 특출했던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간, 윌리엄 모리스(1834-1896).

미술공예운동의 요람이 된 레드하우스(Red House).
'새로운 예술문화가 낳은 최초의 개인주택'이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이라고 평가되는 레드하우스는 공예가들의 공동작업이 건축예술로 얼마나 훌륭하게 구현되는가를 보여준 최초의 작품이 되었다.

-레드하우스는 또한 운명의 여인인 제인과의 신혼집이기도 했다.

2층에 위치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

레드 하우스의 현관문과 계단실.

모리스의 중세 취향을 느낄 수 있는
고딕 성당 첨탑 모양의 계단 엄지 기둥.

사계절을 상징하는 작은 창과 사선으로 장식된
현관문 안쪽 부분.

모리스 상사에서 제작한, 손으로 직접 만들고 그림으로 장식한 화려한 가구.

모리스가 평생을 숭배한 운명의 여인, 제인.

-모리스는 16세의 제인을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졌으며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제인의 불륜상대인 동료 화가 로제티와 함께 셋이서 기묘한 동거를 하기에 이른다.

모리스는 이상적인 책을 만드는 데도 많은 관심을 갖고 노력을 기울였다. 윌리엄 모리스의 이상적인 판면 구성으로 이루어진 호라티우스의 <송가>.

임종 시 '윌리엄 모리스였던 덫이 주요 사인'이라는 주치의의 말처럼 윌리엄 모리스는 일인분의 인생에 몇 사람 몫의 인생을 살다간, 예술에 대한 식을 줄 모르는 열정을 지닌 천재였다.

"나에게 예술이란 인간의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으로 생겨나는 아름다움이며
인간이 대지 위에서 환경 전체와 더불어 보내는 생활 속에서 얻는 감흥의 표현이다.
삶의 기쁨, 그것이야말로 내가 말하는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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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 2005-09-08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아니..저, 저, 부러운 여인 제인을 보니 갑자기 글루미 선데이가 생각나네요. 정말, 여자는 이쁘고 볼 일이라는 생각이..허허.
저 집을 보면 먼저 청소할 생각에 아득해져 부럽지 않은데 저 의자는 너무 갖고 싶어요. 책보기 정말 편할 거 같은데...우웅. 금붕어님 요번엔 너무 럭셔리한 책을 읽으셨는데요오?

Laika 2005-09-08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그런데, 저 여자 이뻐보이지는 않는데...
집은 확실히 멋지네요...^^

superfrog 2005-09-08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멍든님, 그러게 말예요.. 참 기묘한 여인네에요.ㅎㅎ
이 책을 읽다 보니 윌리엄 모리스는 평생을 화르르 불타오른 인간이더군요.
저렇게 아름다운 집과 책을 만든 고딕취향의 공예가가 사회주의자였다는 것도 놀라워요. 책은 사진 위주로 다뤄지고 윌리엄 모리스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소개되어 좀 아쉬워요. 아, 이 책은요 라이카님이 선물해주셨답니다..^^

superfrog 2005-09-08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댓글 쓰는 사이에..^^
라이카님, 저 여인네가 아마도 예술적인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묘한 분위기를 지녔나봐요. 수식어도 요란해요, 큰키, 파도치는 머리카락, 꿈꾸는듯한 눈동자, 고혹적인 입술과 손, 세기말적 우수와 나르시시즘.. 휴..;;

Phantomlady 2005-09-08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예쁜 책이죠? 저도 도서관에서 잠깐 보고 언젠가 사려고 보관중인데 ^^
윌리엄 모리스의 생애와 사상이 아직도 나오고 있으려나..

superfrog 2005-09-08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노드랍님, 맞아요, 정말 이쁜 책..^^
사진만으로도 책이 이렇게 멋져지다니. 인쇄상태도 좋은 편인데, 좀 얄팍한 게 흠.

실비 2005-09-08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쁘기도 하면서 신기하네요^^ 나중에 기회되면 함 봐야겠어요^^

superfrog 2005-09-09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실비님, 반갑습니다..!^^
혹 디자인이나 공예쪽에 관심이 많으심 훨씬 더 흥미롭게 보실 수 있을 거에요.
뭐 저처럼 문외한도 재밌게 봤어요.^^
 
식객 9 - 홍어를 찾아서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7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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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은 이제 단순한 만화가가 아니다. 허영만이라는 이름 뒤에 붙는 화백이라는 칭호는 이제 어색하거나 부담스럽지 않다. <각시탈>이나 <무당거미>, <비트>에서 함께 떠올릴 수 있는 반항과 일탈의 그림자는 이제 그의 동안의 외모에서나 그 희미한 그림자를 붙잡는 것이 가능하고, 굳이 그의 데뷰 연도인 74년을 끄집어내어 보면 화백이라는 호칭은 그다지 거북살스럽지 않다. 단순하게 데뷰연도뿐만 아니라 그가 지나온 흔적을 살펴보아도 그는 명실공히 한국 만화계의 버팀목이라 할 수 있는 훌륭한 만화가다.
표류하는 청춘을 다룬 <비트>, 잘 짜여진 스토리를 뒷받침으로 한 <미스터 Q> 이후로 방향을 튼 그의 작품 세계는 이제 <사랑해>와 <식객>에서 비로소 화백이라는 칭호에 걸맞는 무게를 갖춘다. 동시에 젊은 시절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었던 반항의 기운과 거친 모습을 식객에서는 볼 수없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모가 난 부분이 둥글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그것이 반드시 예민한 더듬이들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안타깝다. 그만큼 <식객>은 '화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무당거미>나 <세일즈맨>, <타짜>보다는 <사랑해>쪽에 걸맞은 '화백'표 만화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책에 많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는 당위는 바로 취재력에 있다. 
만화는 오로지 만화로 승부해야 한다는 게 지론이지만 식객을 읽으면서 개개의 에피소드 뒤에 붙은 뒷얘기를 읽는 재미는 만만치 않다. 만화의 인프라가 되면서도, 만화의 완성도를 위해 어쩔 수없이 잔가지들을 쳐낼 수밖에 없는, 물 아래 숨은 빙산만큼 커다란 덩어리가 바로 만화 뒤 취재수첩 안에 숨어 있다. 에피소드 하나 하나를 읽어가자면 왜 겉으로 보여지는 만화가 원초적이고 감각적인 즐거움은 그다지 크지 않은가 이해할 수 있다. 뭉긋하고 따뜻한, 옆집 아줌마나 아저씨 같은 우리네 이웃의 성정은 느껴지지만 가슴을 후벼파거나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전율은 느낄 수 없다. 대신 슬그머니 코끝이 찡해지는 정도의 감동은 느낄 수 있다. 해서 읽으면서 조금은 안타까움을 느꼈다. 아.. 그는 이제 화백이 되었구나, 아무리 취재력이 뒷받침된다고 해도 그에게서는 예전의 애끓는 젊음의 감각을 느낄 수 없구나, 했더랬다.
그러나 에피소드 뒤에 많은 공간을 할애한 공들인 페이지들은 그(의 팀)가 하나의, 더 버릴 것도 더할 것도 없는 완전하게 짜여진 에피소드를 위해 포기해야 했던 무수한 정보들은 얼마나 많았을 것이며, 아쉽게도 제자식을 놓아버리듯 게재할 수 없었던, 극화할 수 없었던 무수한 정보들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에 생각이 미쳤다. 그러자 그 밋밋하게 여겨졌던 에피소드들은 정제 중에 정제만을 모아 놓은 보석같은 존재들로 여겨졌다. 그렇다. 그는 그렇게 만만한 만화가가 아닌 것이다. 그가 취재를 하면서 자가용이 아닌 시골버스만을 이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은 것은 바로 그의 만화에 보이지 않는 완성도의 밑받침이 되었던 것이다. 말초적인 감각이 아닌 가슴 깊은 곳, 발끝에서부터 온몸으로 전해지는 감동을 그는 찾아나섰던 것이다.  

바다에서의 취재는 긴장의 연속입니다. 날카로운 어구와 거친 날씨. 무엇 하나 만만한 것이 없습니다. 여기에 꼬박 열세 시간 동안 전해지는 바다의 리듬은 극도의 피곤을 동반합니다. 육지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풍경이지만 고기잡이배를 타고 바다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치열한 삶의 현장입니다.

9권 '홍어를찾아서'를 취재하며 겪었던 경험에 대한 내용이다. 드러나지 않는 물 아래 잠긴 거대한 얼음덩어리인 취재의 노력은, 물밖의 짐짓 허술해 보이는 에피소드를 비춰 주는 거대한 조명이다. 제 자신은 스포트라이트 뒤 어둠 속에 있지만, 그림을 보는 독자로 하여금 경험하지 못한 음식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신비의 힘, 도봉산 초입의 봄동겉절이와 김밥을 먹고 싶게 만드는, 고추장굴비를 담가 보고 싶게 만드는, 흑산도로 홍어여행을 떠나게 만드는, 세상 떠난 어머니의 김장김치맛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난생 처음 듣는 옻나무 순의 맛을 궁금하게 여기게 하는 마법의 힘이 바로 그림에 빛을 주는 글자의 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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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8 00: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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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frog 2005-08-28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 속닥님.. 날이 선선해져서 모모는 물론이고 저도 한시름 놓았어요.
이젠 저녁나절 산책길이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아요. 예전에는 가관이었죠..
강쥐는 구둣주걱같은 분홍혀를 내놓고 헉헉대고 주인은 땀범벅이 되어 끌려다니고..ㅎㅎ
안부 물어봐주셔서 감사해요. 님, 제 새 집도 아시면서..^^

superfrog 2005-08-28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그림 속 알록달록 금붕어들이 이뻐요..! 감사합니다요^^

2005-08-28 00: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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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8 00: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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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8 00: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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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frog 2005-08-28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00:30 속닥님, 오세요!! 오세요!! 언제나 환영이에요! 제가 날개님보다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상시 만화방 운영중입니다.. 게다가 필살기인 모모도 있잖아요..ㅎㅎ
00:32 속닥님, ㅎㅎ 저도 허영만 아주 많이 좋아해요..! 약간 나이 먹은 분위기가 안타깝기는 하지만서도 도리안그레이가 아닌 이상 나이먹으며 변하는 부분도 있어야잖아요.ㅎㅎ 저랑 많은 부분이 일치해요! 이 책 읽으며 다시 한번 허영만 작가에게 반했지요.. 장인정신을 고수한 2등이 더 값지게 느껴져요.^^

superfrog 2005-08-28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00:34님, 그러게 말예요..ㅋㅋ 모모가 요즘 유명세를 탄다니깐요..ㅎㅎㅎ

2005-08-28 00: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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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frog 2005-08-28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00:40님, 공항에서 김포시내로 들어오셔야 하는데요, 오신다면 제가 덥썩 물으러 갈게요..^^

superfrog 2005-08-28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 그 사이 새벽별님.. 그다지 속닥글일 게 없는데요.. ㅎㅎㅎ 그게 말이죠, ㅍ 님과 ㄲ님이 워낙에 부끄럼을 타시는지라..ㅋㅋㅋ 저도 식객 좋아요. 빌려서 봤는데요, 조만간 사려구요.ㅎㅎ

2005-08-28 00: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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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frog 2005-08-28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00:45님, 님 서재로 갈게요..^^

2005-08-28 00: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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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 2005-08-28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 금붕어님 리뷰를 읽고 나니 마치 한국어를 배운 지 얼마 안된 외국인이 쓴 것마냥 어설픈 언어로 가득 찬 제 리뷰가 부끄러워질 정도예요. *.* 뒤늦게 읽은 만화에서 느꼈던 '어른 허영만'이 아닌 청년 허영만의 모습까지도 보셨더랬구만요. 아, 역시 독서의 길은 멀고도 멀어요..허허..아무튼 단숨에 9권까지 읽어버린 님의 독서열에 감탄, 또 감탄하고 갑니다 ^-^

superfrog 2005-08-28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멍든님, 그런 말씀 마시어요..ㅠ.ㅜ 다시 읽고 나니 창피스러워서 고치고 싶은데 고칠 재간도 안 되어 그냥 민망해하고 있다구요..;;; 여튼 님 덕에 식객 찾아서 봤어요.^^ 대여점에다 갖다놓으라고 호령해서 봤답니다.ㅎㅎ 이제 구입하려고 해요. 잘 만든 만화는 사야 한다,라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능력이 닿는 데까지..;;

날개 2005-08-28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앗~ 여기는 속닥거려야 하는 곳? +.+
저 아직 이 책 못봤어요... 사실은 안봤다는 쪽에 가까워요.. 별로라는 평을 제법 들어서...^^;;;
하지만 금붕어님 리뷰에 넘어가고야 맙니다.. 보겠습니다..! 불끈~

superfrog 2005-08-28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저도 사실 만화 자체는 좀 민숭민숭해요. 그래서 제멋대로 화백표 만화라고 이름지었는데요, 그게 또 무시할 수 없는 뒷배경이 있단 말씀이죠. 책을 정성들여 만들었어요.^^ 만화도 만화지만 솔직히 작가인 허영만에게 많이 반했답니다. 인간적으로요.. 휴지를 안 쓰기 위해서 손수건을 들고 다니고 꼭 시골버스로 취재를 간다고 하네요. 더 많이 사람들과 접하기 위해서요. 9시 출근, 6시 퇴근. 점심먹고 낮잠. 이런 식으로 자기관리가 철저한 작가니 취재력은 오죽하겠어요.^^ 더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구입하기로 맘먹었지요.ㅎㅎ 님도 어여 보세요!!

Laika 2005-08-28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식객" - 이거야 말로 라이카가 봐야할 책 아니겠습니까? 음~ 오랫만에 함 사볼까요? (이제 지를 시기가 온거군요..^^)

2005-08-28 14: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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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8 15: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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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5-08-28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을지로의 리브로... 서점에 갔는데 그 앞에서 식객 시리즈를 한꺼번에 구입하는 어떤 부부를 보았습니다. ^^ 저는 지름신을 멀리하고 있는 중이라. -.-

superfrog 2005-08-28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이카님, 식객 보세요.. 정말 님의 관심분야와 잘 맞아떨어지는데요?^^ 지르세욧!
15:15 속닥님, 그렇지않아도 저 숫자를 잡을까 말까 했었는데..ㅎㅎㅎ 와, 님이 잡아주셨네요! 헤헤, 감사합니다! 추천두요.^^ 허영만, 좋아요..
낡은구두님, 어맛, 반갑습니다..! 아니, 서점에서 그렇게 바람직한 부부를 만나셨군요! 저희 부부도 서점에 가서 한꺼번에 확 지를까요..? 지름신 조금만 멀리하시고 좀 지나 또 친해지세요!^^;;;

Laika 2005-08-28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요...전체를 다 살수도 없고(형편상,...) 잠시 고민중이랍니다...

superfrog 2005-08-28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구입했으면 대여해드리는 건데.. 저도 아직 구입을 못했답니다.^^
한두 권씩 글자책이랑 같이 구입해서 모으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요?
한권 읽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거든요..ㅎㅎ

비로그인 2005-08-29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트>는 영화화된 작품, 맞는 거죠? 허영만 원작이었구나. 식객..글쿤요. 보기보단 성숙한 작품인가 봅니다.

superfrog 2005-08-29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이님, 맞아요..^^ 정우성이랑 고소영이 나왔던.. 아, 유오성이랑 임창정도 나왔던. 근데요, 만화가 훨씬 재밌어요. 글고 식객은 만화도 재밌지만 작가의 글이 더 매력적이었어요.^^

sayonara 2005-09-30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식객'의 감동은 글 몇 줄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깊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님의 글에는 감동이... 이런 리뷰가 올라올 줄 알았더라면 9권의 리뷰는 쓰지 않았으련만... 왠지 밑에서 초라해 보이는 나의... 울컥~ -_-#

영화 '비트'가 청춘의 환상이었다면, 만화 '비트'는 청순의 삶을 다룬 작품이죠.
마지막 눈물을 흘리며 헤어지는 로미와 민이의 결말 때문에 허영만씨가 욕을 엄청 먹었다는데, 사실 그게 왜 불행한 결말이겠습니까. 대한민국에서 못배우고 가진 것 없는 청년이 그 정도라면 나름대로 행복한 것이 아닐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