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식객 9 - 홍어를 찾아서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7년 10월
평점 :
허영만은 이제 단순한 만화가가 아니다. 허영만이라는 이름 뒤에 붙는 화백이라는 칭호는 이제 어색하거나 부담스럽지 않다. <각시탈>이나 <무당거미>, <비트>에서 함께 떠올릴 수 있는 반항과 일탈의 그림자는 이제 그의 동안의 외모에서나 그 희미한 그림자를 붙잡는 것이 가능하고, 굳이 그의 데뷰 연도인 74년을 끄집어내어 보면 화백이라는 호칭은 그다지 거북살스럽지 않다. 단순하게 데뷰연도뿐만 아니라 그가 지나온 흔적을 살펴보아도 그는 명실공히 한국 만화계의 버팀목이라 할 수 있는 훌륭한 만화가다.
표류하는 청춘을 다룬 <비트>, 잘 짜여진 스토리를 뒷받침으로 한 <미스터 Q> 이후로 방향을 튼 그의 작품 세계는 이제 <사랑해>와 <식객>에서 비로소 화백이라는 칭호에 걸맞는 무게를 갖춘다. 동시에 젊은 시절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었던 반항의 기운과 거친 모습을 식객에서는 볼 수없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모가 난 부분이 둥글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그것이 반드시 예민한 더듬이들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안타깝다. 그만큼 <식객>은 '화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무당거미>나 <세일즈맨>, <타짜>보다는 <사랑해>쪽에 걸맞은 '화백'표 만화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책에 많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는 당위는 바로 취재력에 있다.
만화는 오로지 만화로 승부해야 한다는 게 지론이지만 식객을 읽으면서 개개의 에피소드 뒤에 붙은 뒷얘기를 읽는 재미는 만만치 않다. 만화의 인프라가 되면서도, 만화의 완성도를 위해 어쩔 수없이 잔가지들을 쳐낼 수밖에 없는, 물 아래 숨은 빙산만큼 커다란 덩어리가 바로 만화 뒤 취재수첩 안에 숨어 있다. 에피소드 하나 하나를 읽어가자면 왜 겉으로 보여지는 만화가 원초적이고 감각적인 즐거움은 그다지 크지 않은가 이해할 수 있다. 뭉긋하고 따뜻한, 옆집 아줌마나 아저씨 같은 우리네 이웃의 성정은 느껴지지만 가슴을 후벼파거나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전율은 느낄 수 없다. 대신 슬그머니 코끝이 찡해지는 정도의 감동은 느낄 수 있다. 해서 읽으면서 조금은 안타까움을 느꼈다. 아.. 그는 이제 화백이 되었구나, 아무리 취재력이 뒷받침된다고 해도 그에게서는 예전의 애끓는 젊음의 감각을 느낄 수 없구나, 했더랬다.
그러나 에피소드 뒤에 많은 공간을 할애한 공들인 페이지들은 그(의 팀)가 하나의, 더 버릴 것도 더할 것도 없는 완전하게 짜여진 에피소드를 위해 포기해야 했던 무수한 정보들은 얼마나 많았을 것이며, 아쉽게도 제자식을 놓아버리듯 게재할 수 없었던, 극화할 수 없었던 무수한 정보들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에 생각이 미쳤다. 그러자 그 밋밋하게 여겨졌던 에피소드들은 정제 중에 정제만을 모아 놓은 보석같은 존재들로 여겨졌다. 그렇다. 그는 그렇게 만만한 만화가가 아닌 것이다. 그가 취재를 하면서 자가용이 아닌 시골버스만을 이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은 것은 바로 그의 만화에 보이지 않는 완성도의 밑받침이 되었던 것이다. 말초적인 감각이 아닌 가슴 깊은 곳, 발끝에서부터 온몸으로 전해지는 감동을 그는 찾아나섰던 것이다.
바다에서의 취재는 긴장의 연속입니다. 날카로운 어구와 거친 날씨. 무엇 하나 만만한 것이 없습니다. 여기에 꼬박 열세 시간 동안 전해지는 바다의 리듬은 극도의 피곤을 동반합니다. 육지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풍경이지만 고기잡이배를 타고 바다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치열한 삶의 현장입니다.
9권 '홍어를찾아서'를 취재하며 겪었던 경험에 대한 내용이다. 드러나지 않는 물 아래 잠긴 거대한 얼음덩어리인 취재의 노력은, 물밖의 짐짓 허술해 보이는 에피소드를 비춰 주는 거대한 조명이다. 제 자신은 스포트라이트 뒤 어둠 속에 있지만, 그림을 보는 독자로 하여금 경험하지 못한 음식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신비의 힘, 도봉산 초입의 봄동겉절이와 김밥을 먹고 싶게 만드는, 고추장굴비를 담가 보고 싶게 만드는, 흑산도로 홍어여행을 떠나게 만드는, 세상 떠난 어머니의 김장김치맛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난생 처음 듣는 옻나무 순의 맛을 궁금하게 여기게 하는 마법의 힘이 바로 그림에 빛을 주는 글자의 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