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을 받는 데 나서는 성격은 아닌데,
올해에는 기를 쓰고 사인을 받아냈다.
아직도 사인을 받으려고 줄을 서 있는 내 모습을 보면
낯이 뜨거워진다.
오로지 이 글을 쓰기 위해 그렇게 아득바득 줄을 섰다면
그래도 수지 맞는 일 아닌가.
그보다 사인을 받기 전에 책을 다 읽고 리뷰도 제법 공들여 썼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다.
사인 밑에는 간단한 작품평과 함께 리뷰/인터뷰를 덧붙인다.
사인을 받으면서 느낀 점은 작가 개인에 따라, 또는 직업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집단에 따라 개성이 다르더라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문제이지만, 사인한 날짜를 쓰는 것도 특징이었다. 승주나무는 그래서 사인을 한 사람들의 세 가지 분류로 나누었다. 은둔형, 지식인형, 투사형..이렇게~
1. 은둔형
은둔형의 특징은 좀처럼 메시지를 남기려 하지 않고
사인한 날짜도 모호하게 표시하거나
아예 표시하지 않는 경향이 보인다는 점이다.
은둔형은 아무래도
고독한 작업가들인 문인들이 나타내는 특징이다.
승주나무는 황석영을 '차가운 은둔가형'으로 분류하고자 한다. 사인을 하나 한 것 갖고 평가를 하기는 좀 뭣하지만 황석영의 사인을 받으면서 나는 '독자'라기보다는 그저 길게 늘어선 지네의 한쪽 다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작품 '바리데기'를 읽으면서 황석영에 대해서 쓸쓸한 생각이 들었고, 그의 강연을 들으면서 따뜻한 생각이 들었는데, 최종적인 입장은 '쓸쓸함'이다.
황석영은 강연에서 자신은 형식실험을 멈추지 않는 작가라고 소개했다.
나는 그의 '형식실험'을 두 가지로 구분하고자 한다.
그는 '자기파괴형 실험가'라기보다는 '축적형 실험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의 글쓰기는 고통 그 자체는 아닌 것 같다.
'삼포 가는 길'에서 만난 황석영은 나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는데,
'바리데기'는 읽지 않는 것이었다. 무척 주관적인 평가이지만,
나는 '청년 황석영'에 한해서 그를 받아들이려 한다.
그 전에 모셔둔 장길산이를 완독해야겠다~
황석영의 실험이 자기배신이 아니라 자기파괴가 깃들기를 바라며~
<황석영 관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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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의 소설을 많이 읽어보지 않은 것이 아쉽다. 새의 선물이나 그밖에 초기 작품들을 읽었다면 할 말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의 책보다 책 외적인 일일 것이다. 은희경은 '예비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이라는 나의 질문에 대해 '그것이 반드시 써야 할 것인가 판단하라. 독자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 만약 그것이 정말 써야 할 것이라면, 그것은 반드시 독자와 만나게 된다'는 요지의 말을 전해 주었다. 나중에 등단을 하게 된다면 맛있는 거 사주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내가 그에게 맛있는 것을 사게 되기를 바란다.
<은희경 관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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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는 우연히 발견한 작가다. 지인의 동생인 것 때문이 아니라 최신작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읽으면서 그의 문장이 내 몸을 건드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의 적이며 싸움상대는 자신이며, 등장인물을 악하게 그리지 못했다며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며 괜히 가깝게 느껴졌다. 리얼리즘에는 가깝고 마술적 리얼리즘과는 좀 먼 김연수 무슨무슨 리얼리즘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싶다.
<김연수 관련글>
김연수, 나는 너무 착한 작가다(강연 후기)
2. 지식인형
지식인형이라는 말은 좀 그렇다. 그렇다고 교양인형이라고 하기도 좀 뭣하다. 지식인형부터 투사형은 '절박함'이 매력이다. 나는 한번도 은둔형이나 '작가'를 동경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철이 좀 들어서부터는 거기서 도망치려 했다. 지금으로서는 평생 동안 작품을 하나도 쓰지 않거나 그래서 못할 것 같다. 우리 사회는 말보다 글보다 펜보다 발이 더 바빠야 한다고 언제부턴가 확신했다. 그래서 사회적 인사들과 사회적 투사들의 말이 더 와닿는다. 이들에게 더욱 인간적인 면모가 보이며 따뜻하다. 예술가들이 대인기피 성향을 보이는데, 왜 사람들을 기피하는지 설명을 하거나 설명하지 못한다면 이들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육필에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뭍어난다.
안타깝게도 홍세화 단독의 단행본을 완독해본 일이 없다. 그 흔하다는 '택시운전사'도 목록에서 저만치 뒤로 가 있다. 그래서 나에게 남은 인상은 '강연회'의 모습뿐이다. 홍세화는 웃지 않는다. 웃기지도 않는다. 청중들이 꺼리는 '논리적인 강연'을 한다. 하지만 청중을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논리에서 나온다기보다는 '절박함'에서 나오지 않나 싶다. 논리가 불가능한 영역까지 영향권 안에 포괄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호칭, 메시지, 자필서명, 서명 날짜. 많은 작가들의 사인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홍세화'가 왜 세심한지 알게 될 것이다.
<홍세화 관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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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우석훈 씨와 일잔을 할 기회를 마련해준 지승호 님(인터뷰어, 시비돌이)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우석훈 씨는 일찍이 알게 된 작가다. 일찍이라고 해봐야 한참 FTA 논쟁이 붙었을 때 'FTA, 폭주를 멈춰라'에서 그의 쌈빡한 문장을 확인했다는 말이다. 88만원 세대 이전에는 녹색평론이나 시사인에 가끔 볼 수 있었는데, 88만원 이후로는 시사인에 고정 칼럼니스트를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좋다. 그의 주장은 현실에 닿아 있으면서도 '경제학자'로서의 기질이 좋다. 무덤덤하면서도 현실밀착형 언어를 쓰는 것이 그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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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투사형
2007년에 나를 구원해주었거나 나에게 큰 가르침을 주었던 것은 투사형 그룹들이다. 비로소 나는 내가 급진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 완숙하게 익어야 하겠다는 것도 느꼈다. 투사형들은 절박하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 없다.
사인을 하더라도 뒤에서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지만, 한땀 한땀 정성을 들이고 고민을 하면서 문장을 고르는 모습을 본다면 하루 종일 기다린다고 해도 서운할 것이 없다. 이들은 '투사형'에 새로운 향기를 불어넣었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기존의 '투사형'이라면 '운동권'을 연상하기 쉽고 구호적이고 선언적이고 실현 불가능한 싸움을 벌임으로써 싸움의 국면을 스스로 약화시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어떻게 싸워야 하는 건지 몸소 보여주고 있다.
승주나무가 2007년에 마지막으로 만난 투사형 인사는 박원순 아름다운가게 상임이사다. 그를 투사형으로 분류하는 것에 대해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일례로 블로거뉴스에 올린 박원순 이사에 관한 나의 기사에 네티즌이 달아놓은 댓글에서 "행동하지 않은 박원순에게 무엇을 배우라는 건지"라는 평가가 있었다. 그가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 네티즌은 '자신이 바라는 행동'을 박원순 이사가 하지 않았다는 것을, '행동하지 않은'이라고 표현한 것 같다. 행동의 주체는 박원순 이사이며 그가 선택하는 것이다. 아름다운가게를 운영하면서도 작년 말까지 '야만시대의 기록'이라는 시리즈를 출간할 정도로 정력적으로 행동한다는 점에서 나의 의견과 다른 것은 '행동'이라는 것에 대한 우리들의 가치관 차이 때문인 것 같다. 강연회 때 가장 인상적인 말. '네거티브보다는 포지티브로 미개척 분야를 개척하라. 아직도 우리사회에는 불모지가 많다'이다.
<박원순 관련글>
실패한 진보세력, 박원순에게 해법 구하라(강연 후기)
작게는 2007년, 크게는 나의 인생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 전 시사저널 기자(현 시사IN 기자)들과 시사모 회원 등 시사저널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몸을 던진 사람들이다.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직업을 바꾸는 계기가 시사저널 운동을 하면서 마련되었다. 두 번째 사인 그림에 김은남 기자가 '안일님'이라고 표시한 것은 내가 시사모 활동 당시 '안일(安逸)'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독립문역 사무실을 찾을 때는 모두 '안일이'라고 부른다. 안일이라는 말은 내가 2007년 3월 처음으로 시사저널 사태에 뛰어들었을 때 기자들과 시민들이 모인 자리에서 "기자들도 안일했고, 독자들도 안일했고, 우리 모두 안일했다"고 울면서 퍼부었기 때문이다. 뒤풀이에서 문정우 편집장께서 이제부터 이름을 '안일'로 하라고 제안해서 그때부터 이렇게 써오고 있다. 하지만 다시 거슬러 올라가면 내 인생을 바꾼 것은 바로 이 책일 것이다. '기자로 산다는 것'이라는 단행본을 통해 비로소 문제의 심각성과 내가 몸을 던져서 뛰어들어야만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으므로, 이 책에 그리고 이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시사저널 사직기자 관련글>
가슴으로 쓰는 리뷰 (1)(서문)(리뷰)
작가와의 만남은 정확히는 2007년 여름부터였는데, 매우 우연한 기회에 시작된 것이다. 시작은 그렇게 했는데, 이제는 멈출 수가 없다. 2008년은 1월부터 여러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독대해서 인터뷰를 할 지위와 여건은 되지 않지만, 책을 성실히 읽고 강연이나 인터뷰의 내용을 곁들여 그 사람의 요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뛰어댕기는 승주나무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