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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로 산다는 것
시사저널 전.현직 기자 23명 지음 / 호미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가슴으로 쓰는 리뷰
- 1. 서문
사실 이 글의 제목은 ‘가슴으로 쓰고 싶은 리뷰’이다.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시사모’)의 행사가 있던 날, 지각한 나는 빈자리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몇몇 사람들이 참여하는 조촐한 모임이라 생각하였는데, 대부분의 시사저널 기자들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시사모 회원 즉 독자들도 모여 있었다.
공식 행사 중 복학을 앞둔 독자의 편지 낭독이 진행 중이었다. 상처받은 사람들은 순수한 걸까. 저마다 눈시울이 젖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나에게 인사를 건네 달라고 권했다. 준비된 멘트가 없이 나는 ‘내가 안일했다’는 말만 반복하며 우리들의 만남을 근사하게 만들어 가자고 제안했다. 뒤이은 술자리에서 문정우 기자님이 나에게 ‘가슴에서 우러난 이야기’를 잘 들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사실 가슴이 콱콱 막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이번 시사저널 사태에 대한 나의 분노와 우리 언론의 처지에 대한 슬픔이 교차되어 숨을 고르며 이야기했던 것 같다.
사실 이 책은 일독했지만, 시사모 모임 이후 자세를 곧추어 잡고 다시 읽게 되었다. 덕분에 나는 이 책을 가슴으로 읽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가슴으로 쓰는 리뷰’의 ‘서문’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리뷰 형태로 만들어진 ‘긴 서문’이다.
이 글은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써보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리뷰’의 첫 장이다. 나는 이 글을 완성하기 위해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하나하나 만나볼 요량이다. 만나서 그들의 심사와 그간의 사정을 묻고 이를 생생히 기록하고 싶다.
그 전에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짚어보고자 한다.
1. 반성의 기록
반성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는 ‘명백한 잘못에 대한 회한’이며, 다른 하나는 ‘냉철한 성찰로 인한 자아의 발견’이다. ‘반성’이라는 것은 ‘용기’와 ‘성찰’의 절정이다. 보라. ‘명백한 잘못’에도 반성할 줄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으냐. ‘기자로 사는 법’은 ‘반성의 기록’이다. 이것은 ‘반성문’과는 구별된다. 차라리 시사저널의 역사와 정신을 잊지 않기 위한 ‘묵시록’이다. 이 책의 한 기자는 ‘시인 김수영’을 반성의 거울로 삼았다.
그의 산문은 원고지 네댓 장짜리 조각 글 하나도 허투루 쓴 것이 없는데 스스로에게는 ‘글을 팔아먹지 말자’고 채찍질하고 있다. 치열한 시인의 문학 정신과 오죽한 기사 문장 따위를 비교하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하겠냐마는 어쨌든 그 날로 당장 나는 원고 장사를 마감했다.
- 김상익 전 편집장, 21~22쪽
이들은 왜 반성의 글을 남겼을까. 이들이 무엇을 잘못했을까, 아니면 냉정히 성찰할 것이 있을까. 나는 그 이유를 모른다. 다만 시사저널의 한 기자가 복잡한 심사를 기탁한 칼럼의 조각으로나마 반추해볼 뿐이다.
“내몰려 본 자는 안다. 그 황량한 무력감과 들끓는 분노와 어이없음과 수시로 떠오르는 회한들을. 정치적 올바름과 윤리적 정당성과는 무관하게 역시 한 세상이 돌고 또 돌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의 실현. 모난 돌이 정 맞는다거나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패배주의적이면서도 냉소적인 처세담화의 절정을.”
- 문학평론가 이명원, 한겨레 칼럼(기자가 시사모 사이트에 인용함)
언제 끝날지 모르는 파업의 현재 상황에서 그들이 두려운 것은 바로 스스로의 마음이다. 가슴의 열정은 식지 않았지만, 뛰어다니고 정신없이 마감을 해야 하는 터전에서 내몰려 고독하고 피로한 싸움을 하다가 혹시나 현실에 굴복해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파고들 때 이들이 부여잡을 수 있는 ‘부적’이란 바로 열정과 정신이 보존되어 있는 이 기록일 것이다.
사람은 목마를 땐 목을 축이고, 눈앞이 막막할 때는 영감을 주는 ‘뿌리’가 필요하다. 시사저널 기자들에게 이 책은 온전한 ‘뿌리’의 역할을 할 것이다.
2. 대간(臺諫)이라는 자의 사명과 언론의 매너리즘
사간원(司諫院) : 조선 시대에, 삼사 가운데 임금에게 간(諫)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 태종 원년(1401)에 설치하여 연산군 때 없앴다가 중종 때 다시 설치하였다.
대사간(大司諫) : 조선 시대에 둔, 사간원의 으뜸 벼슬. 품계는 정삼품으로, 임금에게 정사의 잘못을 간(諫)하는 일을 맡았다. <표준국어대사전>
이들이 하는 일은 주로 임금이나 웃어른에게 잘못된 일에 대하여 직접 말하는 일, 즉 직간(直諫)이었다. 때문에 신변의 위협은 물론 멸문지화를 당할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는 것이 이들의 운명이었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관직이 사라졌지만, 이들과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직론직필(直論直筆)을 일삼는 사람들, 바로 기자들이다.
진실은 때로 매우 큰 위험을 동반한다. 소송이 빈번하고 살해 위협이 상존하고, 실제로 살해되기도 하는 이들이 바로 기자이다. 유럽에서 코소보 사태가 발발했을 때 공항이 폐쇄되었는데, 수십 시간 대기해야 하는 탑승 순서를 기다리지 않고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사람은 단 둘밖에 없었다고 한다. 바로 작가와 기자이다. 그만큼 유럽인들이 이들에게 가지는 존경심은 대단하다.
민주주의 사회의 일원, 즉 기자가 모시고 받드는 왕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머뭇거리지 않고 이들에게 대사간이라는 관직을 허락한다. 다만 나 같은 왕이 수천만은 된다는 것. 이 관직이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많은 왕들의 관심과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문제다.
나는 실은 경향신문의 애독자이자 열독자이다. 직론직필(直論直筆)은 다름 아닌 경향신문의 사시(社是)이기도 한데, 2~3년 전부터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사를 서캐훑이하고 스크랩을 해놓은 것이 1만개가 넘는다. 신자유주의와 천민자본주의가 사회의 모든 영역을 지배한 척박한 환경에서 비판적이고 균형적인 논조를 유지하고 있는 얼마 안 되는 매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자들만큼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직업이 없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시사모 뒤풀이에서 만난 한 기자에게 ‘매너리즘에 가장 어울리는 직업이 바로 기자’라고 서슴지 않고 얘기했던 것이다.
기자님들이여, 신문의 독자와 함께 옛일을 돌이켜보자. 마감에 쫓겨 설익은 기사를 송고하다 못해 그런 일에 무감한 적이 없었는가. ‘~라고 밝혔다’, ‘~한 대목이다’, ‘~라고 회고했다’와 같은 상투적인 표현 안에 무책임을 감춘 적이 없었는가. 독자들은 안다. 이 기사가 발로 뛰면서 만들어낸 기사인지, 기자의 타성에서 배설된 것인지. 대다수의 언중은 속일지언정, 한 사람의 독자는 속일 수 없다. ‘정부 당국자에 의하면’,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과 같이 익명의 취재원을 남용한 적이 없었나. 혹은 스스로 그 익명의 취재원이 된 적은 없었나. 금창태 사장이 말한 ‘익명 취재원 불가론’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익명의 취재원에 대한 남용은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다.
이보다 더 심각한 매너리즘은 기자가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태도이다. 이에 대한 한 기자의 고백을 들어보자.
돌이켜보면 언론의 무관심이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CBS 사태 혹은 ‘경인일보’ 사태 때 나는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그 사태에 대해서 알아보았나? 아니면 시사저널 사태와 비슷한 시기에 발발한 ‘시민의 신문’ 사태와 ‘인천일보’ 사태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나? 그렇지 못했다. 그러므로 다른 언론사 기자들이 시사저널 사태에 무관심한 것도 이해할 수 있다.
- 고재열 기자, 237쪽
기자들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이유는 또 있다. ‘새로움’을 보여주지 않아도 살아남을 수 있는 ‘관료적 특성’을 다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예인이나 작가는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시장에서 또는 독서계에서 도태된다. 하지만 기자들은 무심한 시청자, 관객, 독자들의 새로운 취향을 좇으면 그만이다. 구조적으로 기자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에 대해서 면역성이 취약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성찰을 통해 매너리즘을 극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고통스러운 이야기이지만, 나는 시사저널의 기자들이 대한민국 언론의 ‘매너리즘’에 대한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3. 진실은 자수하는 법이 없다.
김훈, 아니 김국은 시사저널 기자들의 ‘비빌 언덕’이다. 김국은 고백한다.
오늘 시사저널의 사태는 저 개인의 삶과 관련된 것입니다. 30년 전 내가 젊은 기자였던 시절에 우리나라 언론들이 바로 이 자리에서 무너졌습니다. 그 때는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 정권 시절이었고 대부분의 언론이 이 자리에서 무너졌던 것입니다. 저도 그 때 무너진 기자 중 하나입니다. 오늘 이 사태에 대해 아무런 할 말이 없어야 마땅한 사람이죠. 그러나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내 후배들이 다시 같은 자리에서 무너진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30년의 세월을 무효화하는 것이고 인간의 진화와 발전을 부정하는 사태이기 때문에, 나는 내 후배들이 여기서 무너지지 않고 이 사태에 책임을 지고 끝없이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 김훈의 인터뷰, 223쪽
김훈은 1995년 후배 기자에게 하나의 지시를 내린다. 때는 김영삼 대통령이 5.18 특별법 제정을 명하고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했던 시기였다.
“5.18 당시 언론이 얼마나 웃기는 보도 행태를 보였는지 되짚을 때가 됐으니 관련 내용을 취재하라”는 그 요지였다.
‘새 역사 창조의 선도자 전두환 장군’(경향신문), ‘역사의 혼이 키워 낸 신념과 의지의 30년’(중앙일보), ‘우국충정 30년-군 생활을 통해 본 그의 인생관’(동아일보), ‘전두환 장군 의지의 30년’(한국일보) 같은 기사들을 보며 나는 실소했고 또 분노했다. 기사를 일람한 뒤 당시 언론 상황에 밝은 전현직 언론인들을 취재하고 돌아와 단숨에 기사를 써 내렸다. 나는 의분에 차 기사를 썼고, 실제로 기사가 나간 뒤 반응도 뜨거웠다. 1980년의 언론 행태를 비판적으로 보도한 매체는 당시 시사저널이 거의 유일했다.
그런데 기사가 나가고 난 뒤 김국이 폭탄선언을 했다. 한국일보의 신군부 찬양 기사를 자신이 썼다는 것이었다. 한국일보 기사의 바이라인(기사에 필자 이름을 넣는 일)이 ‘특별취재팀’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김국이 그 일에 연루돼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분노하기보다는 허탈했다. 그 뒤로 나는 김국이 세상에 대해 보이는 ‘위악(僞惡)’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980년 당시 그는 5년차 기자였다고 했다. 편집국 위계에서 5년차 기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이었을까.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이제 막 날개를 펴려던 청년 기자에게 너무도 가혹한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이다.
- 김은남 기자, 111~112쪽
정의와 진실은 항상 뒤늦게 발동한다. 또는 영원히 파묻힐 수도 있다. 하지만 진실과 정의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양에 따라 사회적 성숙도가 결정된다. 진실을 숨기려는 자들은 알아야 한다. 진실을 숨기는 것은 소수에게 이익을 가져다줄지 모르지만 거대다수에게는 좌절을 안겨준다. 때문에 ‘진실’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진실을 ‘감히’ 숨기지 않는다. 진실을 숨기는 사람들은 진실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이 입증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집에 돌아가지 못한 진실과 정의를 집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책무이다. 진실과 정의가 늦게 발동되는 이유는 사람들이 이를 헷갈려 하기 때문이다. 진실 판단에는 시간과 성찰이 필요하다. 만약 당신이 생각보다 일찍 진실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면 다시 성찰할 필요가 있거나, 아주 오래 전부터 진실이 몸에 밴 경우밖에 없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너무 늦게 진실을 알았거나 정의와 너무 멀어졌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고유 특성이므로 머뭇거릴 필요가 없다.
최악의 경우는 지금과 같은 경우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정의가 사라지고, 매체도 기자도 진실과 정의에 불감할 뿐만 아니라 이것이 ‘상식’으로 통할 때이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그것으로 밥을 먹는 언론과 이들의 비즈니스에 존경을 표하는 사회에서 ‘언론정신’이라는 것은 사치에 가깝다. 이때의 진실과 정의는 ‘뒤늦은 것’인지 ‘없는 것’인지 잘 구별되지 않는다.
하지만 진실과 정의는 스스로 자수하는 법이 없다. 위험을 무릅쓰고 이를 잡으려는 사람에 의해 끌려나올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목숨을 걸고 진실을 잡으려다가 진실에 채여 상처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시사모 행사에서 보았던 기자들은 상처받았고, 오랜 시간 시달렸기 때문에 맑은 정신이 눈에 보였다. 나는 이 아름다움이 어떤 아름다움인지 너무나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이 아름다움을 지향하고 싶다. 왜냐하면 진실과 정의는 뒷발로 채이면 몹시 아프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